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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여기 있어요."

호스피스 간호사가 죽기전 환자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by 별빛간호사

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간호사로 일한다. 매일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순간을 마주하며, 환자분들의 마지막 이야기들을 듣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참 많은 걸 배우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나만 알고 있기엔 너무 아깝지 않을까? 이 이야기들을 나누면 누군가의 마음에도 작은 울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렇게 글을 남긴다. 환자분들이 남긴 마지막 말, 그들의 눈빛 속에 담긴 감정, 그리고 그 순간들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을.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처럼 삶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어느 날이었다.

그날의 날씨는 흐리고,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초겨울의 공기가 살짝 차가웠다. 이런 날에는 환자분들이 낮 동안 깊이 잠드는 경우가 많다. 조용한 병실, 적막한 복도, 간호사실에는 간간이 들리는 키보드 소리와 사람들의 나직한 대화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업무에 집중하던 중, 어디선가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단순한 기계음이거나 병원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커지는 그 소리는 어느새 흐느낌으로 변해갔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을 돌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특정 환자분의 침상으로 다가갔다.

“으… 우우… 엄…마….”

흐느낌이 점점 또렷해졌다. 흰 머리카락이 성성한 노인이,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찾으며 울고 계셨다. 그분은 섬망과 치매를 앓고 있어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세계 속을 여행하는 분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OO님, 어머니가 보고 싶으세요?”

그러자 환자분은 더욱 서럽게 흐느끼며, 눈도 뜨지 않은 채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소리는 길을 잃은 아이가 엄마를 애타게 부르는 것 같아 듣는 이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옆자리 환자분들과 보호자들이 깨어날까 걱정이 되었지만, 아무리 달래도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도 그 애절한 울음을 듣고는 차마 불평하지 못하고, 그저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OO야, 엄마 여기 있어.”

나는 살며시 환자분의 이마에 손을 얹고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많이 힘들었지?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걱정 말고 푹 자자.”

손을 잡아주자, 환자분은 한동안 감정이 북받친 듯 눈물을 흘리더니, 이내 내 손을 꼭 잡은 채 서서히 숨소리를 고르게 내며 잠이 들었다.

이불을 정리해드리고 돌아서려던 순간, 옆자리 환자분이 나직이 말을 걸었다.

“간호사야… 엄마한테 잘해라잉… 앞에 저 할매 우는 거 보니까 나도 우리 엄마 생각나서….”

그분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퇴근 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에 전화한 딸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일 없다고, 그냥 전화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언제 한 번 집에 오라고 하셨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아직은 다행으로 느껴진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쉴 곳이 될 수 있겠지. 그날을 기약하며, 누군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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