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인장의 기도
선인장의 기도
계절이 바뀌는 동안 웃자란 몸의 가시
모공을 뚫고 나온 첫 동통은 간데없고
맨질한 얼굴의 창끝만 세상으로 향한다.
사막을 건널수록 첨단이 번뜩이는
예리한 침의를 갑주처럼 입고서
허방을 짚을 때마다 군상들이 휘청댄다.
저들이 스러질수록 덧나는 건 나의 자상
정욕과 교만으로 가시가 돋는 날엔
어두운 골방에 들어가 무릎을 꿇는다.
묵상의 채찍에다 종아리를 맡겨두면
돋았던 가시 대신 겸손의 순이 나고
지극히 낮은 무릎에서 낮은 세상이 열린다.
- '거미의 협상술'(고요아침, 2023) 중에서
생육 생장이 왕성하던 때 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불쑥 가시가 돋는 날이 있다.
다 헛되고 헛된 것들인데...
선인장의 가시가 밖으로 향하지 않으려면
지극히 낮은 곳에다 무릎을 두어야 한다.
그런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