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길 Nov 12. 2023

가시가 돋는 날에는...

- 선인장의 기도

선인장의 기도



계절이 바뀌는 동안 웃자란 몸의 가시


모공을 뚫고 나온 첫 동통은 간데없고


맨질한 얼굴의 창끝만 세상으로 향한다.



사막을 건널수록 첨단이 번뜩이는


예리한 침의를 갑주처럼 입고서


허방을 짚을 때마다 군상들이 휘청댄다.



저들이 스러질수록 덧나는 건 나의 자상


정욕과 교만으로 가시가 돋는 날엔


어두운 골방에 들어가 무릎을 꿇는다.



묵상의 채찍에다 종아리를 맡겨두면


돋았던 가시 대신 겸손의 순이 나고


지극히 낮은 무릎에서 낮은 세상이 열린다.



 - '거미의 협상술'(고요아침, 2023) 중에서

알라딘: 거미의 협상술 (aladin.co.kr)



생육 생장이 왕성하던 때 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불쑥 가시가 돋는 날이 있다.

다 헛되고 헛된 것들인데...

선인장의 가시가 밖으로 향하지 않으려면

지극히 낮은 곳에다 무릎을 두어야 한다.

그런 아침이다.


이전 11화 봉수대의 릴레이를 기억할 때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