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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길 Nov 23. 2022

당신의 감정은 안녕하십니까?

- 감정 노동자

고객님 사랑합니다

꽃잎을 열었다가 


고객님 죄송합니다

꽃잎을 닫습니다 


온종일 태풍을 안고

울며 웃는

민들레꽃.



김진길의 정형시 '감정 노동자' 전문[화석지대](지혜, 2016)




 따뜻한 봄이나 여름철에 들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민들레꽃. 


 민들레는 아침햇살에 꽃잎을 활짝 열었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닫는다.  비가 내려도 절로 오므라든다.

깨진 아스팔트 사이에서 뿌리를 내릴 정도로 그 생명력이 질기며 척박한 땅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은 민초들의 삶에 비유되기도 한다. 지닌 성분이 좋아 다양한 약재로도 쓰인다.


 겨울로 접어드는 이즈음. 이제 들에서는 민들레꽃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밤에도, 흐린 날에도 마치 환한 대낮처럼 꽃을 피운 민들레가 즐비하다. 마트, 식당, 콜센터 등 온갖 사업장에서 고객을 밝은 얼굴과 목소리로 응대하는 바로 그들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다가도 가끔 느닷없이 몰아치는 날벼락에 속울음을 안은 채 꽃을 피워내는 그들. 그만큼 정신적 피로도가 높다.


 감정 노동자를 좌절케 하고 국민의 공분을 샀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감정 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된 지 4년 째다. 2018년 10월에 시행된 ‘산업 안전 보건법 개정안’이 그것인데, 이 법의 시행으로  ‘고객 응대 근로자’는 회사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고 가해 고객을 회피할 권리를 지니게 됐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법적 장치가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장 근로자들은 근로 환경과 진상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보다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때다. 그러기에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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