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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Oct 10. 2022

권진규 탄생 백주년 기념전, 노실의 천사

2022.3.24 ~ 5.22, 서울시립미술관

2022년은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2021년 (사)권진규기념사업회와 유족이 141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였다. 이번 전시는 기증된 작품과 이건희 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고려대학교 박물관, 리움 등 다른 미술관, 개인이 소장한 작품을 합쳐 173점이 전시됐다. 아마도 <자소상>, <가사를 걸친 자소상>, <지원의 얼굴>은 여러분들도 본 적이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방탄소년단의 RM이 소장한 작품도 나왔는데 작품은 알지만, 그가 누군지 나는 모른다.

권진규는 일본의 유명 미술대학인 무사시노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로댕의 제자인 앙투안 부르델에게 사사한 시미즈 다카시에게 배웠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또한 부르델의 제자였다. 졸업 다음 해인 1953년 일본을 대표하는 미술전람회인 ‘이과전(二科展)’에서 특대 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참고로 이과전에서 상을 받은 우리 작가는 김환기(1935), 이쾌대(1938) 등이 있다.

1959년 개인적인 사정으로 귀국한 그는 성신여대 근처인 동선동에 손수 아틀리에를 짓고 수행자 같은 작품 활동을 했다. 1960년대 중반 조카인 서양화가 권옥연의 조언에 따라 테라코타 작품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이 작업은 1968년 도쿄 니혼바시 화랑에서 <권진규 조각전>에 소개되며 호평받았다. 이러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한국 미술계는 아직 조소를 진지한 미술 분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학연도 없고 숫기가 없던 그는 냉담한 미술계의 반응에 실망했고 시간강사로 전전하며 근근이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가게 된다.

그러던 중 1973년 고려대학교 박물관이 대학박물관 최초로 현대 미술관을 만들면서 작품을 구입하게 된다. 드디어 사회적인 인정을 받기 시작한 그는 개막식에 참석한 후 다음 날 아침에 박물관에서 자기 작품을 돌아본 뒤 아틀리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나이는 51세였다. 사람들은 그를 비운의 조각가로 기억하게 된다.

필자가 가장 관심을 둔 작품은 <기사>이다.


<기사騎士>, 1953, 안산암, 65x64x13cm, 권경숙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이 작품은 권진규가 1953년 ‘이과전’에서 특대 상을 받은 작품 중의 하나이다. 석조 조각으로 암회색을 띤 비현정질의 안산암(安山岩 , andesite)으로 만들어졌다. 상당한 부피감이 있는 작품으로 바닥을 제외한 5면을 작품에 사용했다. 사진은 앞에서 봤을 때 좌측 부분에 해당되는 면이다.

조소는 입체이기 때문에 회화에 비해 정보량이 매우 많다. 이는 사찰에 가서 탱화를 보는 것과 불상을 보는 것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말과 기사가 한 덩어리로 엉겨 붙은 듯하다. 뒷면을 보면 기사의 머리카락이 늘어져 있어 여자임을 알 수 있다. 그럼 그 여자는 누구일까. 평소 권진규는 “모델의 내적 세계가 투영되려면, 인간적으로 모르는 외부 모델을 쓸 수 없으며, 모델+작가=작품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라고 이야기해왔다. 따라서 모델은 아마도 나중에 헤어진 권진규의 아내 ‘오기노 도모’ 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조조각은 당시에도 그리 인기 있던 분야는 아니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도 서양 조각 사조에 휩쓸리며 자신들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권진규의 작품은 동양의 석조조각을 다시금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왕릉에 가면 이러한 석조상을 보게 된다. 봉분 앞에 도열해 있는 문인상, 무인상과 동물상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것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표면의 질감이 이 작품과는 매우 다르다.



<기사>의 측면 확대 사진


안산암은 지질학에서 중성 화산암이라고 불리는 암석이다. 학술적으로는 SiO2 함량비는 57~63%이며 알칼리 성분의 함량은 8 wt % 에 미치지 못한다. 즉 SiO2 함량비가 14~52%인 현무암보다는 더욱 밝은 색을 띤다고 보면 된다. 화산암은 현무암처럼 마그마가 지표에 노출된 후 굳은 암석을 의미한다. 지표에서 급격하게 식기 때문에 구성 광물을 눈으로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 비현정질 조직이라고 한다. 따라서 암석 입자의 굵기가 매우 작아 조각에 알맞다. 확대된 사진을 보면 암석의 입자가 구분되지 않고 한 덩어리로 보인다.

질감은 사암보다도 거칠다. 작품을 전체적으로 보면 분출될 때 주변 암석이 떼어져 들어간 포획암이 포함한 것도 보인다. 특히 화산암 특유의 구조인 공기와 수증기가 빠져나간 공간이 보인다. 아마도 작가는 대강의 모습을 새긴 후 연마작업을 하여 표면을 다듬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주 세밀한 연마는 하지 않고 거친 표면을 의도하여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세립질인 안산암은 조각가에게 매우 매력적인 소재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현무암으로 만든 하루방을 보면 너무 어두워 세밀한 조각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화강암의 경우, 조립질로 광물 입자가 크고 색이 일정하지 않다. 박수근의 그림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회화로서는 암석 패턴이 이용하기 좋으나 광물 입자가 커서 소형 조각에 사용하기는 마땅치 않다. 작가가 이후 화강암으로 제작한 <두상>이라는 작품을 보면 이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두상>, 1960년대, 화강석, 25x15x28 cm ,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우리나라에서 안산암을 사용한 문화유산으로는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이 대표적이다. 신라 선덕여왕 3년(634년)에 세워진 잔존하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탑이다. 현재는 3층이지만 7~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에 사용된 안산암은 울산 당사동 일대에 분포하는 안산암을 이용하여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탑이다. 이곳의 안산암은 유상구조와 판상구조, 주상절리가 나타나 벽돌 모양으로 다듬기 쉬워 모전탑을 만들기 좋은 조건이다. 탑을 장식하는 사자상과 인왕상은 화강암이다.
하나의 문화재에서 다채로운 암석 종류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선조의 예술혼이 느껴진다.

[참고도서]
허경회, 2022,『권진규』, PMKBOOKS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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