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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Nov 06. 2023

양평 두물머리 여행, 화가 겸재 정선의 <독백탄>

예술 속 과학 이야기


조선시대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謙齋) 정선(鄭歚:1676~1759)은  운세가 좋았던 만큼 전국 아름다운 곳을 다니며 그림을 남겼다.  보물로 지정된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한강의 교외인 두물머리부터 양천까지의 강변을 그린 그림을 모은 화첩이다.  한강 중에서도 서울 주변의 한강을 일컬어 ‘경강(京江)’이라 불렀다. 특히 조선후기에는 광진에서 양화진까지의 강줄기를 경강이라 하였다. 경강은 한양성 안에 미곡, 목재, 어물, 소금 등을 공급하는 중요한 공급망의 역할을 하였다.


<경교명승첩>은 지금의 양평 양수리 부근에 있는 녹운탄(綠雲灘)과 독백탄(獨栢灘)에서 시작하여, 경강에서 행주산성까지 이르는 한강과 주변 명승지 30여 점의 그림을 담고 있다. 그림을 따라가면 마치 배를 타고 한강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정선은 청하 현감 재임 중인 1735년(60세) 모친상을 당해 관직을 그만두었는데, 영조는 1740년 다시 그를 불렀다. 영조의 총애를 받아 겸재가 양천 현령을 지내던 5년간 사천 이병연과 시와 그림을 교환해 가면서 완성한 서화집 <경교명승첩>이다. 그래서 <시화상간첩(詩畵相看帖)>이라고도 한다.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741년~1742년 사이에 그린 그림으로 구성되는데, 상권 8폭은 76세(1751년) 이후 그린 것으로 겸재가 사망하던 1759년까지 화첩에 부가하여 완성한 것으로 추측된다.


정선 <경교명승첩> 중 ‘독백탄’, 양평 두물머리, 1740~1741, 견본채색, 20.8x31.2 cm, 소장처: 간송미술관


이중 독백탄(獨栢灘)은 족백단(簇栢湍)으로 불리던 곳인데, 겸재가 '족잣여울'을 칭하기 위해 이름을 조금 변경하여 붙인 것이라고 한다. 탄은 여울을 뜻한다. 그림은 양수리 일대인데. 화면 위쪽은 북한강 줄기, 아래쪽은 남한강 줄기이고, 가운데에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 생성된 섬이 있다(현재의 두물머리 위치).


화면 왼쪽에 족자섬이 있는데, 이곳의 물줄기가 거세어 '잣여울'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원경의 왼쪽 산은 수종사가 있는 운길산(606.4m)으로 보이고 우측은 문안산(533.2m)으로 보인다. 족자섬 뒤쪽과 전경 오른쪽에  검은 바위가 있는데, 구도를 잡기 위한 상상의 바위로 보인다. 녹운탄과 마찬가지로 청록담채법을 사용하여 강인한 바위를 표현하였다.


양수리(☆)의 지도, 출처: 네이버지도
경기 광주 팔당물안개공원 전경 및 독백탄의 시야, 출처: 경기관광누리집


진경산수라고 하여 실채를 그대로 그렸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이다. 진경은 화가의 마음에 들어온 경치를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상상한 풍경화가 아니라고 할까. 위의 사진은 양수리 건너편의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에 있는 팔당물안개공원의 드론사진이다. 왼쪽에 나무가 서있는 곳이 족자섬인데, 지금은 팔당댐으로 수몰되고 나무가 우거져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림에 나온 것처럼 암석섬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지과 그림의 원경에 나오는 산을 비교해 보면, 실재보다 상당히 뾰족하고 강하게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은 전형적인 화강암 산지의 모습이다. 하지만 지질도를 보면 양평일대는 화강암이 아니고 선캠브리아기의 편마암지역임을 알 수 있다. 지리산과 같이 편마암 산지는 암괴의 노출이 없고 식생으로 덮여있는 토산이다.


일반적으로 퇴적암이 압력을 받아 변성된 편마암은 퇴적암의 층리에서 기원한 편리를 가지게 된다. 편리는 흰 줄과 검은 줄이 번갈아 나타나는 구조인데, 검은색 부분이 먼저 풍화되면서 표토를 형성한다. 따라서 지표면과 평행하게 발달한 편리는 능선을 부드럽게 만든다. 대체로 산정에서 범람원까지 22도의 경사를 가지는 능선을 이룬다.


두물머리 ⓒ 조한웅

좌측에 보이는 돛단배는 겸재의 <독백탄>에 나오는 배를 재현한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보는 것과 유래를 알고서 보는 것은 이래서 다르다.

두물머리, ⓒ 조한웅
두물머리에서 서쪽 전경, ⓒ 조한웅


두물머리 근처의 지형은 선캠브리아기 편마암의 특징적 모습인 낮은 경사도를 보인다. 변성암이 편마암은 변성과정에서 밝은 색 광물과 어두운 광물이 압력의 수직방향으로 따로 모여 띠모양의 구조를 만든다. 지표면에 평행한 경우, 그 구조가 풍화를 방해하여 표토층의 풍화가 0.5~2m 정도까지만 되어 더디게 진행된다.


이에 비해, 화강암지역은 판상절리와 박리가 발달하고, 수직절리가 발생하면 심부풍화가 발생하게 되어 풍화층이 깊게 형성된다. 특징적인 화강암산은 악자가 붙은 산이고 그외의 화강암지역은 차별침식을 받아 분지가 형성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서울(강북), 춘천, 원주, 제천, 충주, 예산, 거창 등이 이런 화강암 차별침식 분지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편리구조를 따라 표토가 흘러내리기 쉬워 산사태를 일으키기 쉽다. 2014년 7월 18명이 사망한 우면산 산사태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지리산, 소백산이 대표적으로 편마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이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설악산, 북한산, 월악산과는 다른 모습이다.


완만한 경사의 편마암 산인 운길산 전경, ⓒ 조한웅
두물머리에서 분원리쪽을 바라본 전경, ⓒ 조한웅


광주에는 세종(1418~1450) 연간에 사옹원(司饔院) 분원(分院)이 설치되었다. 고종 21년(1884년)에 민영화될 때까지 400여 년 간 관용 백자를 생산하였다. 한강을 이용해 양구, 여주, 이천 등지에서 원료인 백토와 완성품인 자기를 쉽게 옮길 수 있었다. 또한 땔감으로 쓸 수목이 무성한 무갑산과 앵자봉이 가까이 있다. 광주 여러 곳을 전전하던 가마터는 분원리에 영조 28년(1752년)부터 고정되어 운영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도공이 부족해지자 전국의 가마에서 도공을 광주로 차출하여 운영하였다. 하지만 형편없는 대우에 일만 많아 도망치는 자도 속출했다고 한다. 이에 무리하게 도공을 유지하기 위해 대를 이어 도공에 종사하도록 하였고 점점 도자기의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관원들이 사적으로 도자기를 빼돌리는 일도 빈번했다고 한다.


우리의 문화유산이 소중하고 중요하지만, 과거를 알고 정확한 평가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일본에 잡혀간 도공들이 귀환을 거부하고, 일본에서 자리 잡아 이본 도자기가 오늘날의 수준에 오르게 된 것은 우리가 손제주와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제라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잘 돌이켜보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겠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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