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전시회
‘냉정과 열정 사이’(나카에 이사무 감독, 2003년 개봉)는 피렌체를 배경으로 엇나간 연인의 새로운 사랑이야기를 감미로운 OST와 함께 그려가는 영화입니다.
미술가 집안의 쥰세이는 과거의 사랑을 잊기 위해 피렌체에서 유화 복원사 과정 유학을 하러 가게 됩니다. 뛰어난 재능으로 스승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한 그에게 옛 애인의 소식이 들려오고 명화의 복원작업이 맡겨집니다. 몇 가지 에피소드가 겹치면서 영화는 점점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피렌체 두오모 성당 돔에서의 만남이 이어집니다.
영화에서 쥰세이는 “ 복원사는 죽어가는 걸 되살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리는 유일한 직업이거든요”라고 할아버지에게 말하면서 자신의 삶도 복원하고자 합니다.
간송미술관에서는 22년 4월 16일부터 6월 5일까지 “보화수보寶華修補”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보화는 ‘선조들이 남긴 귀하고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를 의미합니다. 수보는 ‘낡은 것을 고치고 덜 갖춘 곳을 기우다’라는 보존 처리의 옛말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간송미술관 소장품 중 지난 2년간 문화재청의 ‘문화재 다량 소장처 보존관리 지원사업’으로 완성된 8건 32점의 문화재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문화재의 보존에 대해서는 서양과 동양이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고 합니다. 서양에서의 복원은 원본을 처음 그대로 살려내는 것을 말합니다. 색, 점, 선 하나하나를 원래 그렸을 때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동양에서의 보존에는 처음 상태만을 고집하지 않고 문화재가 겪었던 역사도 포함시킵니다. 문화재는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묻어 있는 세월의 흔적, 역사도 중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전시된 작품 중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에 수집한 <석농화원> 중 일부 그림이 있습니다. 이 중 심사정의 ‘삼일포’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고성 지방의 삼일포를 그린 그림으로 전체에 하얀 점이 찍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작가가 직접 그린 것이 아닌 벌레 먹은 자국이라고 합니다. 심미안이 있었던 벌레였는지 그 흔적이 워낙 그림과 어울려 ‘눈 내리는 삼일포’라고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복원 작업에서는 훼손 부분만 복원하고 눈송이 부분은 그대로 남겨 뒀다고 합니다.
또 하나 유명한 그림은 우리 모두 한 장씩은 가지고 있는 그 그림입니다. 현재 오만 원권 지폐 도안에 담긴 그림입니다. 그림은 구석에 전시되어 있네요. 포도는 다산의 상징이었고 신사임당은 당대에 포도를 잘 그려서 유명했다고 합니다.
20여 년 만에 다시 찾아본 간송미술관은 많이 변했습니다. 새로운 교육동과 수장고를 만들면서 고풍스러운 정원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전시 공간인 보화각은 1936년에 새워진 당시 최초의 민간 박물관 건물입니다. 건물 자체도 국가등록문화재입니다. 이번 전시를 마치면 약 1년 6개월간의 개보수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문화재로서의 보화각이 튼튼하고 아름답게 복원되길 기대해 봅니다.
보화각 앞에는 넓은 공간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신축된 수장고의 옥상 부분입니다. 사실 이번 방문에서 저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부분이기도 합니다. 황토 빛깔의 마사토를 넓은 공간에 얇게 깔았습니다. 자세히 보면 직경 3~5mm 정도의 석영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밟을 때마다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는 정말로 근사합니다. 고찰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이유를 학예사에게 물어보니 수장고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가벼운 소재를 찾다가 이렇게 결정했다고 합니다. 석영 모래는 물 빠짐도 좋고 햇살을 고르게 반사해 주기 때문에 보화각을 돋보이게 하고 수장고를 지킬 수 있는 아주 멋진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