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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Oct 22. 2022

화산지역에 산다는 것은...

영화지질학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奇跡, I Wish, 2011)

“알 수 없네. 왜 모두들 이렇게 태평이지?

화산이 분출하고 있는데”



지금 한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11년 작품. 스페인의 A급 영화제인 산세바스찬 국제영화제(59회) 최우수 각본상, 제3회 타마(TAMA) 영화상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고레에다 감독은 제7회에도 바닷마을 다이어리로 이 상을 수상했다.


가고시마의 온다케 화산을 소재로 아버지의 자유로운 삶 때문에 떨어져 살게 된 형제의 우애를 동심의 세계에 담아 아름답게 그린 작품이다.


실재 형제이기도 한 마에다 코우키, 마에다 오시오가 주연이지만 우리가 잘 아는 오다기리 죠, 오츠카 네네, 키키 키린, 아베 히로시, 나츠카와 유이, 하시즈메 이사로 등 쟁쟁한 배우가 등장해 탄탄하게 영화를 이끈다.


부부싸움 끝에 엄마는 후쿠오카의 집을 나와 친정인 가고시마로 간다. 큰 아들 도이치는 엄마를 따라가지만 아빠를 닮은 작은 아들 류노스케는 아빠와 남는다. 하지만 형제는 자기들끼리 소식을 주고받으며 가족이 함께 살기를 바란다. 


가고시마에는 앞바다 사쿠라지마 섬에 2014년 9월에도 분화한 온다케 산(御嶽山)이 있다.



동생과 떨어져 가고시마에 있는 고이치는 화산이 폭발하면 가족이 같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화산 그림을 보면 기도를 한다. 수업 시간에 친구에게 새로 생긴 신간선이 마주치는 순간 강력한 에너지가 발생하여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각자 소원이 있던 친구들과 꾀병을 부려 상하행선이 마주치는 곳으로 소원여행을 떠난다. 동생과 친구들을 그곳에서 만난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장소에 도착하여 소원을 비는데…


가고시마는 옛날부터 해상무역이 발달한 지역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풍광이 좋은 곳이다. 단지 화산의 나라 일본답게 언제 폭발할지 모를 온다케 화산이 있다는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고이치는 등교하면서 멀리 보이는 분화하는 화산을 보며 “알 수 없네. 왜 모두들 이렇게 태평이지? 화산이 분출하고 있는데”라고 중얼거린다. 마치 위기에 처한 가족을 복구하려는 의지가 없는 주변을 나무라듯이 말이다. 화산재는 장면 장면마다 날리고 사람들은 여기에 익숙해져 다가오는 위험을 잊어버리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지역 사람들에겐 당연한 일인데 외지에서 온 고이치에게는 모든 게 이해가 안 간다. 화산은 주변에서 뭉글뭉글 분출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땅이 없는 것도 아닌데 화산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주변에 몰려서 산다


아침이면 바람 방향을 통해 오늘은 화산재가 날릴지를 확인하는게 아침의 일과다. 화산재는 삶의 곳곳에 앙금처럼 묻어있다. 책상 위에도 가방 위에도 옷에도 털어도 털어도 먼지가 쌓인다. 요즘 우리가 걱정하는 미세먼지와는 비교도 안된다.


화산활동으로 생긴 충격이나 화산가스의 침식 등으로 발생한 부스러기 암편이 방출되는 것을 지질학에서는 화산쇄설물이라고 한다. 이 중 크기가 0.25~4mm 정도의 작은 크기의 것을 화산재라고 한다. 화산 분출 시 압력에 따라 지상 50km의 상층권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화산재는 태양빛을 가려서 지구의 온도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또한 크기가 작고 급격한 냉각으로 표면이 날카로워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다.



베수비오스 산을 배경으로 한 나폴리와 비슷하게 온다케 산을 가지고 있는 가고시마는 동양의 나폴리로 불렸다. 화산의 발생이 해안과 인접한 지역은 예로부터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화산재에서 나오는 미네랄 성분은 식물성장에 유리한 토양을 제공한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모여들고 예전의 분출의 비극을 일부러 또는 무의식적으로 잊고 터전을 잡고 살아간다. 비록 화산 연기가 무럭무럭 분출해도 말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우리는 예전처럼 관성에 따라 살아가는게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이치에게는 심심하기 이를데없는 카루칸(かるかん) 케이크처럼 사람들이 화산 근처에 사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화산재가 떨어져 불편한 곳에 왜 사느냐 하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분출은 산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지. 그래서 이따금 에너지를 밖으로 내보내는 거지. 당장 큰 폭발이 일어나면 모두 이사 가야 겠지”라고 한다. 고이치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소원을 만든다.



주인공들은 이제 아주 어리지만은 않다. 고민하는 문제들이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가족이 모여사는 것, 죽은 애완견을 살리는 것, 배우가 되는 꿈, 야구선수가 되는 것, 아버지의 도박을 멈추는 것. 이것은 기적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기적이 이뤄지는 특별한 장소에 희망을 갖는다.



화산이 폭발하면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그때서야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기 바쁘다. 도망가는 것은 이들 형제에게 가족이 다시 만나는 것이다. 화산 폭발의 기적이 이루어지면 가족은 다시 만나게 된다. 누군가에겐 이별의 상황이지만 누군가에겐 재결합의 기회가 된다.


화산 폭발은 일본이기에 가능한 설정이고 아마도 기적까지도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라면 아마 기적에 가까울 것이다. 실제로 온다케 산은 2014년 9월 26일 정오께 분화하였다.. 1979년, 2007년에도 분화한 이 산은 이날 분화로 7명이 의식불명이고 8명이 중상을 입는 인명피해를 냈다.



꿈은 영글어갈 시간이 필요하다. 밥을 짓는 과정과 마찬가지다. 나름대로의 계기가 쌓이고 형제는 친구들과 뜻을 모아간다. 고이치의 꿈은 동생에게 전해지고 그 친구들에게도 동참하기로 하고 난생처음으로 친구들과의 여행에 나선다.



하지만 약속 장소인 구마모토 역에서 역무원으로부터 주변 화산인 후겐산의 폭발로 인해 50여 명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내년이면 중학교에 들어갈 형 고이치는 마음이 흔들린다. 가족의 재결합을 위해 바라는 분화가 일어난다면 세계의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는 모순으로 고민한다.


하지만 기적은 한순간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고 자신들의 노력으로 하나하나 이루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장소를 찾고 잃어버린 친구를 찾고, 하룻밤 머무를 숙소를 찾는 과정에서 우정과 소원은 점차 모습을 갖춰간다.



우여곡절 끝에 다음날 소원을 빌 수 있는 장소에서 마주치는 기차를 앞에 두고 큰 목소리로 소원을 외친다. 하지만 왠지 고이치는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생각으로는 이미 화산이 분출하지만 목소리로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기적이 이루어져 소원이 성취되면 많은 사람이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난 우리 가족보다 이 세계를 선택했어.” 고이치는 동생 류노스케에게 사실을 이야기하고 아빠를 잘 지킬 것을 부탁한다.




집으로 돌아온 고이치는 여전히 솟아오르는 화산재를 보면서 이제는 소원을 빌지 않는다. 자기의 소원보다 더 큰 소원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대신 바람을 읽고 오늘은 화산재가 쌓일지 아닐지 판단해 보고 하루의 삶을 살아간다.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다. 한 편의 성장 영화로 읽을 수도 있으나 화산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삶의 걸림돌을 어떻게 품고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잘 만든 소설이나 영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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