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인 더 스카이(Lucy in the sky, 2019)>는 나탈리 포트만(루시 역)이 출연한 SF, 멜로, 치정 영화다. 이런 장르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만 리사 노왁(Lisa M. Nowak)이라는 우주인의 실화를 기반으로 각색한 영화라 더욱 이색적이다. 루시는 행복하지 못한 결혼 생활을 하던 중 동료 우주 비행사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파트너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기자, 루시는 극심한 우울증, 불면증, 강박장애를 겪게 된다. 새로운 미션에서 탈락한 루시는 강박적인 집착을 보인다. 분노에 휩싸여 남자 친구 커플을 스토킹 해 최루가스를 뿌리는 복수극을 펼치고 경찰에 체포된다. 당연히 NASA에서 쫓겨난다.
스칼렛 요한슨도 루시 이름의 역할을 연기한 영화가 하나 있는데, 2014년에 개봉한 뤽 베송 감독의 <루시(Lucy), 2014>가 그 영화이다. 우리 배우 최민식이 조연으로 출연했다. 그 영화에서는 약물의 힘을 이용하여 뇌의 사용량을 극적으로 높인다. 감독도 루시를 알았겠지만, 요한슨도 배역을 맡으며 분명히 루시라는 호미닌을 의식했을 것이다.
루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사실 ‘루시(Lucy)’라고 하면 당연히 미국의 고고학자 도널드 조핸슨(Donald Johanson)이 1974년 11월 에티오피아 하다르 계곡에서 발견된 320만 년 전 최초의 여성 직립유인원 화석을 떠올려야 한다. 루시는 현장에서 유물 정리 작업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비틀스(Beatles)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는 곡을 듣고 이름이 따왔다. 발견 이후에 루시는 학술적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로 분류되었다.
파리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루시의 골격, Source: Wikimedia commons by 120
루시의 화석은 놀랄 만큼 완벽한 형태가 발견됐는데 몸의 40%에 해당하는 많은 뼈가 발견되었다. 인간은 좌우 대칭이므로 이 정도면 전체를 복원할 수 있을 만큼 큰 수확이었다. 두뇌 용량은 적었으나 허벅지 뼈가 침팬지와는 다르게 비스듬하게 틀어져 종아리뼈와 만나 직립보행과 뜀뛰기를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인류는 지능 발달 전에 직립보행을 한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하지만 키는 1미터 정도였고 몸집이 작은 여자의 골반구조를 가졌고 얼굴은 침팬지였다고 한다.
루시가 발견된 곳은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아파르 삼각지를 지나 지부티로 흐르는 아와시 강 유역이다. 아파렌시스라는 이름은 지역 이름 ‘아파르’에서 딴 것이다. 최초의 호미닌(hominin, 현생인류와 현생인류의 근연종) 화석인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도 이 지역 출신이다. 또한 가장 오래된 석기인 올도완(Oldowan) 석기도 이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이 지역은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북쪽 끝 지역이다. 왜 이 지역에서 많은 고고학적 발견이 이뤄졌을까?
동아프리카 지구대, 파란 별이 루시가 발견된 에티오피아 하다르 계곡, Source: wikimedia commons by Bamse
동아프리카 지구대
동아프리카 지구대(East Africa Rift valley)는 북쪽으로는 아파르 삼각지에서 모잠비크 동부를 거쳐 아프리카 동쪽으로 이어지는 폭 35~60km, 길이 4,000km의 단층으로 함몰된 낮은 협곡지역을 말한다. 지반이 융기하면서 단층이 발생하여 내려앉은 지역으로 아프리카 열곡대라고도 불린다. 신생대 제3기부터 시작되었고 화산과 지진활동이 활발하다. 지구대를 따라 빅토리아 호, 탕가니카 호, 니아사 호 등 대규모 단층호수가 존재한다.
동아프리카 지구대, Source: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지구대 바로 아래에서는 마그마가 상승하고 있고 이 때문에 지각에는 단층과 균열이 생긴다. 그래서 양쪽의 높은 산과 가운데 골짜기 지형이 만들어진다. 이 골짜기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약 300만 년 전부터 골짜기에 큰 분지가 생겨났고 우기에 내린 비가 호수를 이루었다.
루이스 다트넬이 <오리진>에서 이야기 한 바에 따르면 이 호수를 ‘증폭기 호수(amplifier lake)’라고 부르는데 이는 증발률이 유입되는 양에 비해 커서 기후의 변화에 의해 수위가 큰 변동을 보인다고 한다. 기후가 변해 비가 많이 내리면 동식물들이 풍성해져 호미닌의 숫자도 늘고 비가 줄어들게 되면 멸종하거나 다른 종이 나타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런 기록들이 고스란히 협곡대에 묻혀 있는 것이다. 물론 반복되는 지표의 상승은 지층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만들어 조사지로서는 좋은 조건을 형성하였다.
대부분의 문명이 지질학적인 판과 판의 경계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이 흐르는 지질학적 세팅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집트인은 그 결과인 석회암으로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아시아판과 인도의 충돌은 히말라야를 만들었고 몬순기후를 형성해 인더스 문명을 낳았다. 지중해 문명도 유럽판과 아프리카판의 충돌로 만들어졌으며, 키프러스의 구리는 인류를 청동기문명으로 유도했다. 지질학적인 역동성이 문명을 일으킬 자원과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먼 훗날 지질학에 해박한 외계인이 있다면 먼저 판과 판의 경계에서 인류문명의 흔적을 조사할 것이다.
그래도 아직 인간이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면 결론적으로 리사 노왁 사건은 엄청난 돈이 들어간 NASA 우주인이 지상에서의 사건으로 영구 제명 퇴출되는 최초의 사례를 만들었다. 이후 나사는 우주 비행사의 품위 유지에 대한 더욱 명확한 규정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규정의 미비에서 발생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NASA도 알았을 것이다.
여성 이름 루시(lucy)는 빛(light)을 뜻하는 라틴어 'Lux'에서 유래됐다. 루실, 루시아도 같은 어원이다. 어떻게 보면 현재 최후의 인간인 여자 우주비행사에게 최초의 여자이름을 붙인 것은 아이러니 하다. 루시 인 더 스카이는 '하늘의 빛' 정도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적인 재미는 없지만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를 보고 싶은 분에게 추천한다. 인간은 아프리카의 작은 골짜기에서 진화하여 이제 우주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이다. 다시 땅으로 내려온 루시는 평범한 인간이었을 따름이다. 우리는 우주로도 지구에서의 문제를 고스란히 가지고 갈 것이다. 언젠가는 우주선 음주운전 사건도 발생할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