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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Nov 15. 2022

보이 후드 - 지질학적 장치들

영화 지질학

그런 말 자주 듣잖아. 이 순간을 붙잡아야 한다 

근데 난 거꾸로 인 것 같아 

우리가 순간을 붙잡는 게 아니라... 순간이 우릴 붙잡는 거야.



<보이 후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2014)는 12년 동안 찍은 예술 영화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그것은 실재 소년이 성장하는 기간 동안 찍은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주연인 메이슨이 6세일 때부터 찍기 시작하여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는 18세까지의 이야기다. 년도로는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찍었다. 1년에 15분 정도의 분량을 찍어 이어 붙였는데 이 기간 동안 감독의 감각과 배우들의 연기가 물 흐르듯 이어진다. 오랜 기간의 촬영으로 배우나 스태프의 변동도 예상되고 촬영 방식이나 기술의 변화도 예상되었으나 깔끔하게 넘어갔다. 마치 한 해에 다 찍은 영화처럼 보인다.


그해,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고 골든 글로브와 뉴욕 비평가협회상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감독상)을 받았다. 2014년 제87회 미국 아카데미에서는 <버드맨>과 경쟁하다가 작품상은 받지 못했다. 패트리샤 아퀘이드가 여우조연상을 받았을 뿐이다. 아카데미가 망신살이 뻗쳤다. 연기파 배우인 에단 호크와 니콜라스 케이지의 전 부인인 패트리샤 아퀘트의 연기가 감독의 딸인 로렐라이 링클레이터의 예쁜 소녀시절 모습을 볼 수 있다. 


6살 메이슨 주니어(엘라 콜트레인 분)는 누나 사만다(로렐라이 링클레이터 분), 싱글 맘인 올리비아(패트리샤 아퀘이드 분)와 텍사스에 살고 있다. 까칠하고 목표 지향적인 올리비아는 전 남편인 메이슨 시니어(에단 호크 분)와 헤어져 독립적인 삶을 살려고 한다. 잠시 떨어져 살던 아버지와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을 만나 영화도 보고 야구장도 가며 친구처럼 지낸다. 철없던 아버지는 점점 철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상적인 삶을 꿈꾸는 올리비아는 거듭되는 재혼에 실패한다. 


영화는 이 과정을 담담히 그리며 외롭게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만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고 겉돌던 메이슨 마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으로 떠난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비로소 자식 둘 낳아 대학 보내 놓으니 이제 죽을 일만 남은 것 같다며 삶의 무의미함을 깨닫게 된다.



사내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흙과 돌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이런 것이 어른 때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보이 후드에서도 메이슨이 처음 수집하는 것은 돌 화살촉이었다. 먼저 엄마가 선생님과 면담을 한 이야기를 아이에게 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야기 중 메이슨이 연필깎이에 돌을 넣어 망가뜨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메이슨은 돌도 연필같이 깎이는지 알아보고자 해서 그랬다고 답한다. 이를 통해 아이는 물질 간의 경도의 차이를 자세히 알아가게 된다. 돌보다 연필깎이의 경도가 작은 것이다. 우리가 아는 모오스 경도 이야기다.


이후 아버지와 만난 아이들은 자기 자랑을 아버지에게 한껏 한다. 이때 메이슨은 자기가 수집한 돌 화살촉을 보여준다. 예전에 거주하던 인디언이 사용했던지 아니면 어딘가 이야기를 얻어들은 것이리라. 돌은 가장 편리한 장난감이다. 


성장영화에서 주로 나오는 장면은 멋진 장소를 찾아가는 일이다. 캠핑이나 하이킹, 아니면 도전적인 등산 등도 좋은 소재가 된다.  보이 후드에서도 당연히 그런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와 하루 밤 남자들만의 캠핑을 가게 된다. 이때 멋진 장소에서 수영도 하고 하루 밤을 지내게 된다. 이런 장소에서 보통 밤하늘의 별 이야기를 하게 되지만 보이 후드에서는 그렇게 나오지는 않는다.


펜더네일스 폭포 주립공원(Pedernales Falls State Park)


여행 중 나오는 곳은 펜더네일스 폭포 주립공원(Pedernales Falls State Park)이다. 공원은 존슨 시티(johnson City)에서 동쪽으로 16km 정도 떨어진 펜더네일스 강(Pedernales River)에 위치한다. 1970년 텍사스 주가 개인 목장의 일부를 구입하여 공원으로 개장했다. 거대한 백악기 석회암 판(Slabs) 위로 강물이 흐르며 판과 판이 떨어진 곳에 수영하기 좋은 자연 수영장을 곳곳에 만들어 놓았다.  백악기층은 하부에 펜실베니안 시기(3억 2천만 년 전)의 석회암층 위에 놓인다. 남동쪽으로 10도 정도 경사져 있어 특이한 풍경을 만든다. 이 층의 하부는 시카모어(Sycamore) 역암층으로 되어 있다. 두 층은 약 2억 년의 시간 차이를 보이는 부정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폭포 부분은 석회암보다 강도가 높은 쳐트로 구성되어 있다. 부자는 공원의 맑은 물에서 수영을 하고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삶에서부터 스타워즈까지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18살이 된 메이슨은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특기인 사진을 살려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기숙사에 들어가던 첫날 처음 만난 룸메이트와 그의 친구들과 오리엔테이션을 빼먹고 하이킹을 떠난다. 이들이 간 곳이 빅 벤드 국립공원(Big Bend National Park)이다. 


빅 벤드 국립공원(Big Bend National Park)


빅 벤드 국립공원은 미국 텍사스주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으로 치와와 사막(Chihuahuan Desert)에 있으며 3,242 km2로 미국에서 가장 넓은 보호 구역이다. 사막에서부터 비옥한 토양에 이르는 지질학적 다양성으로 1,200종 이상의 식물, 450종 이상의 조류, 55종의 파충류, 75종의 포유류, 약 3,600종의 곤충 등의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백악기와 제3기의 화석이 풍부하고 9천 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도구가 발견되기도 했으며 19세기의 역사적 건물과 경관을 포함하고 있다. 국립공원의 경계선 중 393km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이기도 하다 


빅 벤드 국립공원

이 빅 벤드 국립공원은 영화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도 배경으로 나왔다. 같은 장소가 이렇게 다른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지질학적 요소로만 영화를 만들 수는 없지만 적절한 배경은 영화의 깊이와 감동을 더하는 더할 나위 없는 장치이다. 대자연을 앞에 두고 인간의 소소함을 느끼고 미래의 원대함을 표현하기에는 이만한 장치도 없다. 그래서 영화의 감동이 더 해지고 또다시 그 장소를 찾게 된다. 


<보이 후드>는 로튼 토마스 신선도 평가 97%, 관객 점수 80%를 받았다. 평균 평점 9.4를 받아 평단의 압도적인 평가를 받았다. 국내 평단에서도 8명 전문가 평점이 9.5점을 받는 등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감독의 다른 영화로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이 있다. 주제곡인 Family of year의 Hero도 놓칠 수 없다. 아직도 보지 않은 분이 계시면 아직 늦지 않았다.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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