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영식 Nov 29. 2022

어 워크 인더 우즈 - 애팔래치아 트레일

영화 지질학

때때로 남자는 한 덩어리 빵을 가방에 찔러 넣고 

울타리를 넘고 싶어질 때가 있지



빌 브라이슨(Bill Bryson)의 데뷔작인 '나를 부르는 숲'(2008, 동아일보사)을 2015년에 영화화한 것이다. 저자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2022. 까치, 개역판 출간)로 과학도서로는 전무후무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를 기록했다. 출판사 책 소개에는 ‘21세기 최고의 자연과학 분야 베스트셀러’라고 되어 있다. 초판은 2003년에 나왔으니 맞는 말이긴 하다. 한때는 ‘거의 모든’이 붙은 책들이 서점 좌판에 무수히 깔리기도 했다. 유머와 함께 성실한 취재가 돋보이는 책인데 서강대 이덕근 교수의 번역도 수준급이었다. 연구하는 학자에게는 이런 번역서로 이름을 날리는 것은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나는 정말 잘하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책 이후 빌 브라이슨의 책의 출간이 줄을 이었다. 


당연 책 속의 주인공은 저자 빌 브라이슨이고 영화의 주연 빌 역은 로버트 레드포드가 맡았다. 동행친구 캐츠 역은 닉 놀테, 레드포드의 아내 역은 엠마 톰슨(무려 케임브리지 나온 배우다)이 출연했다. 이 배우들 모르시는 분은 영화들 좀 더 보셔야 할 분들이다. 아쉽게도 영화는 국내에 정식 개봉되지 않았다. 


어 워크 인더 우즈(A walk in the woods, 2015)의 감독 켄 콰피스는 코미디 전문으로 영화를 만든 당시 중년이 넘은 감독이다. 1957년생이니 영화상의 주인공들 나이와 얼추 비슷하다. 아마도 자기의 이루지 못한 꿈도 생각했을 것이다. 일단 연기는 안심이다. 이런 명배우가 모여 유쾌한 이야기를 찍었다. 부담감 없는 자연스러운 연기가 일상을 찍듯 편안하다. 


노년이 된 두 친구가 세계 10대 트레일 중 하나인 애팔래치안 트레일에 6개월 동안 도전하며 겪는 에피소드를 엮은 영화다. 끊임없는 위트와 유머로 지루하지 않다. 적절한 조연과 풍경이 잘 버무려져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추억과 남자들의 치기, 일탈, 야외생활의 도전을 깔끔하게 그려가고 있다.



10년 동안 영국에서 글을 쓰며 살다가 중년이 되어 뉴 햄프셔로 돌아온 빌은 지인의 장례식에 다녀온 후 우연히 집 뒤에서 애팔래치아 트레일(Appalachian Trail, AT) 안내판을 보게 된다. 10년 동안 거기 있었지만 그날은 유난히 눈에 띈 것이다. 이것저것 정보를 찾아보다 도저히 혼자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빌은 동행을 찾게 되는데 유일하게 따라나선 사람이 캐츠다. 그런데 그게 문제이자 포인트였다. 100kg이 넘는 과거의 술고래였고 티타늄 무릎과 인공관절을 갖은 남자가 캐츠였다. 인생을 살아온 방향, 현재의 상황도 완전히 다른 두 친구가 여행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에 오른 그들은 장관에 경탄하며 자연스럽게 트레일에 끌려 들어간다. 빌은 유명한 작가답게 무식한 친구에게 주변의 암석과 환경을 이용하여 지구과학 설명을 해준다. 암석의 종류, 판구조론 등. 이를 듣는 캐츠의 반응이 재밌다. 자기는 디테일에 얽매이지 않고 큰 그림(big picture)을 본단다. 간간히 자연에 도취되며 때로는 귀찮은 등반객을 만나고 기상변화를 겪으며 그들은 점점 자연과 하나가 되어 간다.




남자 둘이 떠나는 여행을 그린 영화를 버디무비라고 한다. 단짝인 친구들이 콤비로 나와서 활약하는 영화이다. <내일을 향해 쏴라>, <투캅스> 등이 그런 영화이다. 버디무비가 등장하던 초창기에는 비슷한 성향의 주인공들이 나왔으나 이후 이 영화같이 완전히 성향이 다른 주인공들이 나오는 형태로 변화하였다. 


원작이 있는 영화가 다 그렇듯 양쪽 간에 장단점이 있다. 원작은 단순한 두 남자의 여행만이 아니라 지질학, 역사, 생태학 등에 다양한 주제를 위트 있게 소개되어 있다. 영화로 만들기에는 다소 무겁기 때문에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책을 통해 읽어 볼 만하다. 또 영화 분량상 소화하기 힘든 에피소드가 여럿 소개되어 있으니 태백산맥 종주 등을 생각하는 분들은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애팔래치안 트레일 구간 지도


애팔래치아 산맥은 캐나다 뉴펀들랜드에서 미국 남서부 앨라배마와 조지아로 뻗은 총길이 1,800km의 산맥이다. 최고봉의 2,037m의 미첼 산(Mount Mitchell)이다. 길이에 비해 고도는 높지 않은데 200~1,000m 정도의 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체로 우리나라 강원도 산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곳에 미국 석탄의 85%가 매장되어 있는데, 미국 초기 13개 주와 가깝기 때문에 미국의 산업혁명을 성공시킨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총연장 3,500km에 달하는 등산 코스인데 정확한 길이는 알려지지 않았다. 


지질학적으로 애팔래치아 산맥은 1859년 J. D. 홀에 의해 지향사 개념이 처음으로 정립된 지역이다. 지향사는 대륙과 해양지각의 경계에서 대량의 퇴적구조가 만들어지고 마그마의 관입, 습곡 작용 등으로 만들어지는 복잡한 지질구조를 일컫는다. 이에 부수된 광화 작용으로 유용한 광상이 많이 만들어진다. 판구조론이 알려지지 않은 당시에 대규모의 산맥이 만들어진 이유를 설명하는 유력한 이론이었다. 


애팔래치아 산맥은 판게아 초대륙이 만들어졌을 때 형성된 산맥이다. 판게아는 2억 5천만 년 전인 고생대 페름기 말에서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존재했던 대륙을 말한다. 알프레드 베게너가 1915년에 제안한 이름이다. 당시 북미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이 충돌하여 만들어졌다. 당시 만들어진 다른 산맥으로는 아틀라스 산맥, 우랄 산맥이 있다. 


판게아는 1억 8천만 년 전인 쥐라기에 남쪽 곤드와나와 북쪽 로라시아로 분리됐는데 이후 지금 대륙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애팔래치아 산맥은 유럽의 칼레도니아 산맥(Caledonian mountain range)과 분리되었다. 


애팔래치아 산맥과 칼레도니아 산맥의 연관성, 지도 출처: 구글


판구조론에 따르면 지구의 표면은 15개의 크고 작은 판들로 구성되는데, 이 판들은 1년에 수 센티미터씩 서로 움직인다. 판은 상호 이동방향에 따라 발산 경계, 보존 경계 그리고 수렴 경계의 세 가지 형태로 접한다. 발산 경계는 두 판의 이동 방향이 서로 반대이고, 보존 경계는 경계를 따라 판들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지는 곳이며, 수렴 경계는 판의 이동 방향이 서로 마주 보는 곳이다. 판은 대륙을 포함하느냐 또는 대륙을 포함하지 않느냐에 따라 대륙판 또는 해양판으로 구분된다. 즉, 유라시아판, 아프리카판, 북아메리카판 등은 대륙판이며, 태평양판, 나츠카판, 코코스판 등은 해양판이다.


수렴 경계는 다시 세 가지로 나눠지는데, 대륙판과 대륙판, 대륙판과 해양판 그리고 해양판과 해양판이 만나는 경우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판과 판의 경계부에서는 서로 충돌하거나 한쪽 판이 다른 판의 밑으로 들어간다. 일반적으로 해양판이 상대적으로 무겁기 때문에 대륙판 밑으로 들어간다. 대륙판끼리 충돌하면 부딪친 대륙들은 서로 휘어지고, 합쳐지며 또한 새로운 지층들이 부가되어 산맥을 형성한다. 대규모의 산맥을 만들고 판을 변형시키는 작용을 조산 운동이라고 한다.


같은 장소를 둘이 가지만 각자 보는 것, 느끼는 것은 서로 다르다.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이 여행마다 각자의 추억이 다른 또 하나의 이유이다. 빌과 캐츠는 각자의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헤어진다. 원작에서는 그해 여름에 2차 등반을 하는 것이 나오는데 영화상에는 없다. 


제작에 참가한 로버트 레드포드는 원작을 읽고 바로 판권을 사들였다고 한다. 그는 캐츠 역으로 폴 뉴먼을 생각했는데, 2018년 폴 뉴먼의 사망으로 계획이 미뤄졌다. 그 후 닉 놀테와 함께 연기해 본 후 그를 캐츠 역으로 낙점했다고 한다. 원작에서 빌과 캐츠의 나이는 44살이었으나 영화에서 빌과 캐츠는 70대였다. 즐거운 산행 되시기 바란다.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https://brunch.co.kr/@8133d3a5098c4e4/43


매거진의 이전글 업(Up) – 사랑을 잇는 폭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