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질학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LIFE)의 목적이다.
벤 스틸러(Ben Stiller)가 감독, 주연한 코미디 영화다. 1965년 뉴욕에서 전설적인 코미디언 제리 스틸러와 앤 메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연스럽게 할리우드 분위기를 익혔고 8살 때부터 8미리 카메라로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유명작품으로는 <박물관은 살아있다> 시리즈가 있고 감독한 영화는 <청춘 스케치(1994)>, <케이블 가이(1996)>, <쥬랜더(2001)> 등이 있다. 유엔 난민기구(UNHCR) 명예대사인 벤 스틸러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해 러시아 비판 다큐멘터리를 찍은 숀 팬과 함께 2022년 9월 ‘러시아 영구 입국 금지’의 제재를 받았다.
원제는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해석하면 월터 미티의 비밀스러운 삶. 1939년에 제임스 서버(James Thurber)가 쓴 동명의 단편 소설 중 표제작이다. 원작 소설은 주인공 월터 미티가 부인이 미용실에 간 사이 쇼핑 심부름 다니며 수시로 공상 속으로 딴청 파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47년에도 영화화된 적이 있다. 테크니컬 코미디 영화로 분류되며 영화계에선 걸작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2013년 판 역시 원작과는 달리 1947년 영화의 스틸러식 리메이크에 가깝다고 한다.
뭣 하나 특별한 일 해본 적도, 여행 한번 가본 적도 없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종종 상상 멍 때리기에만 몰두하던 월터 미티(벤 스틸러 분)는 16년째 ‘라이프’ 잡지사에서 포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사진으로 된 전문 잡지인 라이프는 시대의 흐름에 밀려나 온라인 잡지로 옮겨가게 된다.
한편 라이프지에는 입사 한 달 된 재무팀 여직원이 있었는데 소심한 미티는 말도 못 붙이고 망설이기만 한다. 우연히 데이트웹에서 셰릴 멜호프(크리스틴 위그 분)의 프로필을 본 미티는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떠나는 그녀의 이상형이 되는 것을 꿈꾸게 된다.
그 와중에 라이프지의 대표적인 사진작가인 숀 오코넬(숀 펜 분)은 폐간하는 잡지의 표지에 쓰라고 필름을 보내고, 미티에게는 다음과 같은 메모와 함께 라이프지의 모토를 세긴 지갑을 선물한다.
"25번째 사진은 꼭 표지로 써 줬으면 하네. 거기에 내 사진작가 인생의 정수(The Quintessence of life)를 담았어."
하지만 숀이 지정한 25번째 필름은 온데간데없다. 당장 회사에 제출하지 못하면 쫓겨날 상황이다. 이동전화도 정해진 거주지도 없이 촬영지를 떠도는 숀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우연히 셰릴과 말을 트게 된 미티는 셰릴의 도움으로 숀이 원고료를 수령하는 곳의 주소를 알아내게 되고 숀을 찾아 파란만장한 세계여행을 떠나게 된다.
셰릴에게 부탁해서 고료를 마지막으로 받아간 곳이 그린란드의 술집이라는 걸 알았다. 서류 가방 하나 들고 그린란드에 도착한 월터. 렌터카를 빌리는데 공항 렌터카 업체에 파란 마티즈와 빨간 마티즈(둘 다 1998년에 나온 1세대 모델이다). 두 대가 있었다. 미티는 빨간 마티즈를 타고 가게 된다. 이 장면은 매트릭스의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 장면의 오마주(homage)다. 매트릭스에서 니오는 진실을 알게 되는 빨간 약을 선택했다.
술집에 도착한 미티는 숀의 행방을 수소문하는데 필름 중에 있던 어선에 데려다줬다는 술주정꾼을 만난다. 배는 마침 무전기가 고장 나 부품을 가져다 줄거니 따라오라는 찬스를 잡는다. 문제는 그 술 취한 주정꾼이 헬기 조종사였다는 것이다. 도저히 탈 수 없어 포기한 미티 앞에 셰릴이 통기타를 들고 나타나 ‘스페이스 오디티’를 부르고 힘을 받은 미티는 헬기에 뛰어오른다.
‘스페이스 오디티’는 데이빗 보위(David Bowie, 1947~2016)가 1969년 7월에 발표한 싱글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영감을 받아 비슷한 발음으로 만든 제목이라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같은 달 아폴로 11호 달에 착륙했는데 BBC가 중계하면서 이 음악을 틀어 무리를 일으켰다. 캐나다 우주인 크리스 해드필드(Chris Hadfield)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부른 버전의 노래가 인상적이다. 본래의 가사를 약간 수정하여 불렀다. 세계 최초의 우주 뮤직비디오라고 할 만하다.
한 번도 뉴욕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월터는 숀을 찾기 위해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파키스탄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여행을 하게 된다. 월터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숀의 발자국을 따라 아이슬란드에서 아이들과 교환한 보드를 타고 마을까지 내려간 에디는 갑자기 호텔 주인이 화산이 폭발하니 빨리 차에 타라고 해 어리둥절한다. 보니 숀은 곧 폭발할 화산을 찍기 위해 왔고 사람들은 화산을 피해 내려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경비행기 날개 위에 탑승한 채 사진기를 들고 날아가는 숀을 보고 월터는 차에 탑승하여 가까스로 화산쇄설류를 피해 안전하게 대피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화산은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동쪽으로 약 125km 떨어진 에이야퍄들라이외퀴들 산(Eyjafjallajökull, 1651m)로 2010년에 폭발한 성층화산이다. 당시 폭발로 화산재와 연기가 11km 상공까지 올라갔다. 항공대란이 발생하여 유럽 전역의 공항이 마비되었고 반대로 철도는 호황을 맞았다. 이로 인해 2010~2011년 우리나라에 이상저온 현상이 발생했다.
아이슬란드는 북미판과 유럽판이 생성되는 곳인데, 보통 판이 확장되는 해령은 바닷속에 있는 것에 비해 이곳은 육지 위에 있다. 이를 판의 경계 구분에서 발산형 경계라고 한다. 위의 지도에서 보듯 판의 경계가 한가운데를 지나간다. 따라서 화산 활동이 활발하여 지열 에너지를 마음껏 쓸 수 있다. 아이슬란드는 글자 그대로 얼음의 땅이지만 불의 땅이기도 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간 미티는 그동안의 단서가 잘못되어 있음과 숀이 어머니를 만난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어머니는 이를 미티에게 이야기했지만 멍 때리다가 놓친 것이다. 다시 단서를 찾아 숀이 있다는 아프가니스탄령 히말라야로 가서 천신만고 끝에 숀을 만난다. 하지만 숀에게서 알쏭달쏭한 이야기만 듣고 마지막 사진의 진실을 듣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히말라야 산맥은 인도판이 유라시아판과 충돌하면서 생긴 산맥이다. 인도판은 원래 인도-오스트레일리아판으로 되어 있었으나 유라시아판과의 충돌로 생긴 변형력 때문에 인도판과 오스트리아판으로 나눠지고 있다. 인도판은 신생대 에오세(5,500~5,000만 년 전)에 아시아와 충돌하기 시작했다. 충돌하기 전에는 1년에 20cm 속도로 북쪽으로 이동했는데, 지금은 북동쪽으로 1년에 5cm 정도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히말라야 산맥은 오늘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그린란드, 히말라야라고 나온 배경은 모두 아이슬란드에서 촬영되었다. 멋진 지질학적 장소를 영화에 넣기만 해도 분량을 충분히 뽑을 수 있다. 그리고 관객들은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감독들이 복잡하게 영화 찍으려고 하지 말고 지질학자의 도움을 받아 어울리는 명소에서 찍는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