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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Jan 29. 2023

암모나이트(Ammonite,2021)

영화 지질학



보통의 고등교육을 받은 분은 암모나이트라고 하면 바로 화석이라고 이해한다. 암모나이트(Ammonite)는 고생대에서 중생대까지 번성했던 두족류(頭足類)의 일종이다. 중생대의 표준화석이다. 두복류는 ‘머리에 다리가 달린 동물’을 의미하는데 문어, 오징어, 낙지, 앵무조개가 여기에 해당한다. 공룡과 함께 사라졌다. 이런 화석 같은 이야기다.


영국 도셋 지방에서 발견된 ammonite Asteroceras obtusum Source: Wikimedia commons by Dlloyd


감독과 배우


영화 <암모나이트(Amonite,2021)>를 감독한 프란시스 리(Francis Lee)는 <신의 나라(2017)>로 선댄스영화제, 에든버러국제영화제, 시카고국제영화제, 스톡홀름영화제에서 수상하며 각광을 받은 감독이다. 전작 <신의 나라>가 남자 간의 사랑을 다룬 LGBT(성소수자) 영화인데 <암모나이트>는 여성 LGBT영화다. 


주인공 메리 애닝 역에는 케이트 윈슬렛(Kate Elizabeth Winslet)이, 샬롯 머치슨 역에는 시얼랴 로넌(Saoirse Ronan)이 연기했다. 케이트 윈슬렛은 <타이타닉>, <네버랜드를 찾아서>, <이너털 선샤인>,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센스 앤 센서빌리티>, <레볼루셔너리 로드>, <아바타: 물의 길>에 출연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이다. 시얼랴 로넌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레이디 버드>, <작은 아씨들>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 주었다. 두 사람 모두 요즘 핫 한 수준급 여배우이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영화



영국 잉글랜드 남서부 도싯(Dorset) 주 라임 리지스(Lyme Regis)에서 화석사냥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메리 애닝에게 손님이 찾아온다. 상류층인 그는 처음에는 화석 발견을 알려 달라고 하더니 병약한 아내 샤롯에게 화석을 알려주고 건강을 회복하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마땅치 않은 제안이었지만 궁핍한 살림에 경제적인 유혹을 피할 수 없던 애닝은 처음에는 철부지 상류층 부인에게 냉랭하게 대하지만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관심이 생기게 되고 급기야 점점 뜨거운 관계로 발전한다. 


당시 지질학계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는 애닝의 가치를 발견한 샤롯은 런던에서 함께 살면서 고생스러운 일을 하지 말고 학문적인 업적을 쌓으라고 제안하지만 애닝은 자기의 갈 길을 가게 된다. 사랑도, 안락한 삶의 유혹도 화석을 통한 자기의 삶을 포기하게는 못했다.



영화는 당시 지질학자였던 로데릭 머치슨(Roderic Murchison,1792~1871)은 아내인 샤롯 후고닌과 함께 다니며 지질학 연구를 했다. 머치슨은 일기에서 "아내가 라임에 몇 주 남아 애닝과 함께 화석 채집을 한 뒤로 뛰어난 화석학자가 되어 있었다"라고 기록하였다. 그 후 1829년 애닝이 런던을 방문했을 때 머치슨 가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리고 샤롯은 이후 남편과 함께 유럽을 여행하면서 고생물학자들에게 애닝을 소개하는 등 지원했다고 한다. 감독은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 영화를 만든 듯하다. 애닝과 샤롯의 동성애 관계는 어디에도 증거가 없다.



메리 애닝 이야기


메리 애닝(Mary Anning , 1799~1847)은 영국의 여성 화석 수집가이자 고생물학자이다. 아직 지질학 원리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시기이고, 진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는 시대였다. 상류층에서는 화석 같은 진귀한 물건에 대한 수집붐이 일었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시기였고 프랑스혁명의 영향으로 서민들의 삶은 퍽퍽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도와 화석 발굴을 했다. 주로 잉글랜드 남부 도싯주의 라임 리지스에 있는 영국 해협을 마주한 백악기(2억 1,000만~1억 9,500만 년 전) 하부층이 노출된 블루 라이어스(Blue Lias) 절벽에서 해양 생물의 화석을 채집했다. 아버지가 44살로 일찍 돌아 가시자 애닝은 화석의 발굴과 판매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애닝의 화석들은 당시 고생물학과 지질학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의 발굴 환경과 장비는 매우 열악했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치렁치렁한 옷에 안전장비 하나 없이 망치와 가방만 들고 이뤄졌다. 또 최고의 화석은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 주로 발굴됐는데 이때 거센 파도에 절벽이 침식되기 때문이다. 화석을 품은 덩어리가 떨어질 때 이를 바로 확보하지 못하면 조수에 쓸려 내려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잘못하면 목숨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환경이며 실제로 그녀의 애완견 트레이도 이런 돌에 깔려 죽었다. 

라임 리지스의 블루 라이어스 절벽, Source : Wikimedia commons



그녀는 최초로 어류와 파충류의 특징을 동시에 가진 익티오사우르스(Ichtbyosaurus, 그리스어로 ‘물고기’와 ’도마뱀’)의 화석을 발견하고 그 구조를 확실히 파악했는데 이는 아주 중요한 발견으로 나중에 큰 학문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리고 거의 완벽한 두 개의 수장룡(plesiosaurus) 골격도 발견하였다. 독일 이외에 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디모르포돈(Dimorphodon)이라는 익룡의 화석과 중요한 어류 화석도 발견하였다. 이 놀라운 화석들은 현재 런던의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으니 런던 가면 가볼 일이다.


두리아 안티퀴오르, Source: Wikimedia commons by Georg Scharf


애닝은 또한 오징어와 같이 먹물 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두족류인 벨렘나이트 화석을 발견하였고, 지질학자인 헨리 드라베시는 최초의 고생물 복원도인 《두리아 안티퀴오르》(Duria Antiquior, 도싯의 고생물)를 그리면서 애닝의 화석 수집품을 기초로 삼았다. 마음씨 좋은 드라베시는 그림 판매 수익을 애닝과 나누었다.


1826년 당시 27세이던 애닝은 자신의 화석 가게를 열었다. 거의 모든 지질학자와 고생물학자가 그녀의 가게를 찾았고 화석을 구입해 갔다. 그들 중에는 루이 아가시, 윌리엄 버클랜드, 월리엄 코니베어, 헨디 드 라 비치, 찰스 라이엘, 기디언 멘텔, 로더릭 머친슨, 리처드 오언, 애덤 세지윅 등 당대의 유명 지질학자가 망라되었다. 결국 챨스 다윈 등 이후 과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너무 선구적인 여성 고생물학자


애닝은 학자들도 못한 뛰어난 발견을 많이 했는데, 당시 여성이 인정받지 못한 사회환경 속에서 고생스럽게 살아가야만 했다. 종교적으로도 주도 세력인 아닌 침례 교도였던 그녀는 자신이 발견한 화석에 다른 사람의 이름이 붙어서 대영박물관에 전시되는 걸 보고도 어찌할 수 없었다. 

메리 애닝의 이름표가 떼어지고 있다.


메리 애닝은 고생물학이 발전되던 초기에 실재적인 근거인 화석을 공급했던 생계형 화석 수집가이자 스스로 공부한 여성이었다. 뚜렷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논문이나 발표 등 학계의 인정을 받을 만한 이론적 성과는 없었다. 당시는 지질학이 가장 앞선 과학의 분야였기 때문에 그녀는 시절을 잘 태어난 것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말이다. 화석 수집가로서 애닝은 영국과 유럽, 미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실베스터 부인은 애닝이 25살이던 1824년에 그녀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다. “이 젊은 여성이 대단히 비범한 점은 화석학을 통달해서 어떤 뼈든 보자마자 어떤 동물의 뼈인지 대번에 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 분야에 확실히 재능이 있었다는 것이 분명했다. 당시에 애닝은 고생물학 분야에서 일정한 식견이 있음을 널리 인정받은 듯하다. 실제로 당시 석학들과 학문적 토론도 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도권 조직인 런던 지질학회에 가입할 수 없었고, 그녀가 이룬 업적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하였다. 어떻게 보면 애닝이 없었다면 진화론의 발견도 멀리 미뤄졌을지도 모른다. 애닝의 사망 163년 만인 2010년 영국 왕립학회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과학자 중 한 사람으로 그녀를 선정했다. 


런던 Natural History Museum 온라인 전시


구글 아츠&컬쳐의 온라인 전시회 화면 중에서


구글 아츠&컬쳐는 2016년 구글에서 만든 세계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볼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런던 Natural History Museum 섹션에서 ‘메리 어닝: 역사를 개척한 고생물학자’라는 온라인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검색 칸에 메리 애닝을 치면 한글로 콘텐츠를 관람할 수 있다. 



영화적인 미학이나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없지만 연기파 여배우들의 애틋한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는 볼만하다. 하지만 이를 굳이 애닝의 이야기를 퀴어(Queer) 형식의 영화로 만들어 일반인에게 선입관을 심어주는 것은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그가 여성이며 교육받지 못한 하층민으로 종교적으로도 소수파인 침례교도라서 받은 학대도 커서 고생이 심했는데, 아무리 오래된 이야기고 영화라지만 성소수자 관점까지 부담을 지우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학자는 학문적 성과와 발견으로 평가받을 뿐이다.


참고문헌 : 


1.     도널드 R. 프로세로, 2019, 진화의 산증인, 화석 25, 뿌리와 이파리

2.     로버트 헉슬리, 2009, 위대한 박물학자, 21세기 북스

3.     마틴 러드윅, 2021, 지구의 깊은 역사, 동아시아

4.     Google Art&Culture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https://brunch.co.kr/@8133d3a5098c4e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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