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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Jan 25. 2023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11)

영화 속 과학이야기, 뉴욕의 도시지질학

모든 것이 이치에 맞을 필요는 없어

모든 일에 답이 있진 않아


록펠러 센터에서 바라본 센트럴 파크, Source: Wikimedia Commons by Alfred Hutter aka Gentry


간 적은 없지만 가본 듯한 장소가 있다. 기시감이라고 나 할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Central Park)가 그런 곳이다. 센트럴 파크는 뉴욕 맨해튼(Manhattan)의 한가운데에 직사각형 모양으로 위치해 있다. 북쪽으로는 할렘에 접하고 남쪽으로는 미드타운과 만난다. 울창한 나무와 호수, 바위 그리고 박물관, 운동장, 동물원이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장소이다. 용산가족공원(7만 평방미터)의 약 5배의 면적이다.


많은 영화에 등장하여 한 번도 안 가본 사람도 마치 가본 듯 느껴진다. <러브 스토리>에서 스케이트 타는 곳,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던 곳, <스파이더맨 3>에서 메리 제인에게 고백하던 곳, <나 홀로 집에 2>에서 케빈이 도둑에게 쫓기던 곳, <해리와 셀리가 만났을 때>에서 조깅하던 곳, <랜섬>에서 아버지가 딸을 찾던 곳, <어벤저스>에서 영웅들이 모인 곳으로 나온다. 심지어 우리나라 코미디프로 <무한도전>에도 나왔다. 그러니 ‘아! 거기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곳이다.


센트럴 파크의 위치, 출처: 구글 지도


센트럴 파크는 1856년 조경가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와 건축가 칼베르트 보가 설계하였다. 원래는 채석장과 돼지농장, 불법판자촌이 널려 있던 곳이었다. 이곳에 10만 수레의 돌과 흙, 5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공원으로 만들었다. 옴스테드의 설계 철학이 '도심에서 자연으로 최단시간 탈출' 이라는데 넓은 공원에 바위가 어우러진 모습이 보기가 좋다. 설계당시에 "만약 맨해튼의 중심부에 큰 공원을 설계하지 않으면, 5년 후에는 똑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을 지어야 할 것이다"라는 조언에 따라 공원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이 영화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Jonathan Safran Foer)의 동명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부커상 수상자인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이 책에 대해서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을 갖춘 소설이다. 야심차고 화려하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작품이 그려내는 강렬한 감정들은 우리의 마음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보기 드문 성취다.”라고 말했다. 저자는 조이스 캐롤 오츠에게 수업을 들었으며 첫 번째 소설 <모든 것이 밝혀졌다(2002)>로 LA타임스의 ‘최고의 책’에 선정된 바 있다.


감독 스티븐 달드리(Stephen Daldry)는 영국 출신으로 또 다른 성장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1)>를 감독했으며, <디아워스(2003)>,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2009)>의 감독이기도 하다. 인간애에 바탕을 둔 문학적인 영상미가 돋보이는 감독이란 평을 듣는다. 한 인터뷰에서 시대와 불화하는 캐릭터에 왜 관심을 갖느냐는 질문에 ‘(그저) 슬픔과 상실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뿐’이라며 ‘감독이 주제를 선택할 때도 있고, 주제가 감독을 선택할 때도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극장 개봉 없이 DVD로 소개되었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조연상(폰 쉬도브) 후보에 올랐다. 오스카 역인 토마스 혼의 절제되고 폭발적인 연기가 볼만하다. 아빠 역인 톰 행크스의 연기는 무난하고 엄마 역이 산드라 블록은 그동안의 코믹연기와는 다른 인상을 준다. 로드 무비이자 성장 영화이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 의해 왜 희생되는지 모르는 채 9.11 테러의 희생자가 된 아버지를 통해 아버지의 부재로부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오스카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이야기는 거창한 비극의 원인을 찾지 않고 개인적인 차원의 극복을 다룬다. 아비지의 비극을 겪은 아이가 자신을 탓하지 않고 비극을 통해 미래를 향해 풀어 간다는 점에서 희망적인 영화다. 아이들은 과거가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성장하고 미래로 나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돋보인다.



9.11 테러로 평소 잘 따르던 아빠를 잃은 오스카는 죄책감으로 아빠를 잊지 못하는데 유품에서 용도를 모르는 열쇠가 들어있는 블랙이라는 이름이 쓰인 봉투를 발견한다. 평소 아빠와의 탐험에 열을 올렸던 오스카는 센트럴 파크에서 그 열쇠의 비밀을 찾기로 결심한다.



할머니집에 세 들어 사는 말을 하지 않는 할아버지(폰 쉬도브)와 함께 맨해튼 전체에서 블랙이라는 사람 모두를 찾아 나선다. 각각의 블랙을 만나게 되면서 오스카는 점점 성장하게 되고 아빠를 놓아드릴 준비가 된다. 마침내 열쇠의 주인을 찾았지만, 그것이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아빠와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아빠의 죽음에서 놓아주게 된다. 이제 아빠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확신한 오스카는 엄파이어 록(Umpire Rock)에 올라 그동안 만난 사람에게 편지를 쓰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조연들의 연기도 빛나는 감동적인 영화다.


센트럴 파크의 바위


이 영화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뉴욕 센트럴 파크에 있는 바위이다. 오스카는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지 1년 후 미지의 열쇠가 든 봉투에 쓰인 블랙을 찾아 모험에 나선다. 뉴욕의 무수한 소음과 테러에 대한 공포, 매번 낯선 사람들에 대해야 하는 두려움을 탬버린을 흔들며 헤쳐 나아간다. 이때 결심을 하게 되는 곳이 마천루들이 보이는 센트럴 파크의 이 바위이다.



센트럴 파크에는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데 위 장면의 호수가 보이는 장면은 캡스토우 다리(Gapstow Bridge) 근처인 것으로 보이고 다음 장면은 공원 남쪽 헥셔(Hechscher) 플레이그라운드의 엄파이어 록 근처로 보인다. 이 바위들은 종종 영화에 많이 나온다. 뉴욕은 인종의 용광로다.  언제나 일이 생기고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센트럴 파크는 단골 장소이다. 그중에서도 엄파이어 록은 <세렌디피티>, <프렌즈 위드 베네핏>, <피셔킹>, <닥터 후> 등에 많이 나온다.


헥셔 플레이그라운드에 가면 보이는 동네 산만한 바위가 엄파이어 록이다. 편암 노두인데 겉면에 움푹 파진 줄무늬가 선명하다. 이런 암석은 센트럴 파크 곳곳에 있다. 원래 맨해튼은 편암 암반이 많았는데 센트럴 파크 공사 시에 대부분의 돌은 폭파시켜 제거했고 몇몇은 그대로 놔두었다.


뉴욕의 지질


조금 복잡한 이야기인데 판게아 보다 훨씬 오래 전인 10억 년에서 7억 년 전에 생겨난 초대륙 로디니아가 있었다. 이 초대륙의 한가운데를 지나던 산맥이 그렌빌 산맥이었다. 이 산맥은 로디니아를 이루던 로렌시아(Laurentia)라는 소대륙이 발티카(Baltica)와 아발로니아(Avalonia)이라는 판과 충돌하며 밀어 올린 것이고 그 후에 백악기에 로렌시아가 분리되고 침식되어 남은 흔적이 지금의 뉴욕의 편암(schist)이다.


편암은 당시 북미 대륙과 호상열도 사이의 분지에 채워진 사암과 셰일이 판의 충돌에 의해 변성되어 생성되었다. 간혹 이후에 화강암질 페그마타이트가 관입된 흔적을 볼 수 있다.


뉴욕시의 편암층은 습곡작용을 받았는데 위로 볼록한 배사 부분이 뉴욕시의 남단과 센트럴 파크의 남단 부분에 각각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그 지역에는 단단한 암반을 이용한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그 가운데 상대적으로 암반이 무른 곳에는 저층의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이 암석이 특별한 것은 빙하기의 흔적을 잘 보여준다는 점이다.


뉴욕의 빙하기


약 2만 1천 년 전의 북반구의 빙하기 정점, 출처: NOAA


지구에는 지난 100만 년 동안 적어도 7번의 빙하기가 있었다고 한다. 빙하기에 북아메리카 대륙 중앙에는 두께 4,000미터에 달하는 얼음이 덮고 있었다. 뉴욕 같은 해변가에도 2,000미터가 넘는 빙하가 있었다. 영화 <투모로우>에 나오는 빙하는 비교도 안 되는 것이다. 빙하기의 원인은 아직 알지 못한다.


이런 빙하는 엄청난 힘으로 기반암을 밀고 내려오는데, 빙하 속에 포함된 바위들이 지역의 기반암을 깎으며 밀고 내려간다. 그래서 뉴욕의 바위들은 당시 빙하에 의해 깎여진 흔적을 갖고 있다. 남북 방향으로 줄무늬가 나 있는데, 이 지역을 덮고 있던 빙하가 남북으로 움직이며 바위에 새겨 놓은 흔적이다. 11만 5천 년 전 빙하기의 흔적이라고 한다. 빙하가 내려오는 방향인 북쪽에는 둥글고 남쪽 방향은 수제비 떼어낸 밀가루 덩어리같이 불규칙한 단면을 보인다. 이러한 형상이 양들이 누워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양배암(羊背岩, Roche Moutonees)이라고 부른다.



빙하처럼 큰 사건들은 지구 표면에 크고 분명한 흔적을 남긴다. 빙하가 없는 지금은 흔적만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마도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그 모든 흔적을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기쁨과 아픔으로 우리 가슴에 흔적을 남기고 산다. 우리 삶은 과거의 흔적이 가득한 공원을 걸어가는 여행과 같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참고문헌


1.     루이스 다트넬, 2020, 오리진, 흐름출판

2.     위키백과

3.     NOAA 홈페이지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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