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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Feb 17. 2023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2008)

영화 지질학

숀, 나중에 엄마가 어디 갔다 왔냐고 하면,

삼촌이랑 이태리에 다녀왔다고 해라.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는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JulesVerne, 1828~1905)의 <지구 속 여행>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원작이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여러 번 영화화됐다. 지질학의 발전과 CG의 진보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제목의 뉘앙스가 원작과 약간 다른데 원작은 지구 속으로 들어가는 게 목적이라면 영화는 다른 세계를 찾는 게 목적인 듯하다.


어드벤처 판타지 영화다. 감독 에릭 브레빅(Eric Brevig)은 특수효과 전문이다. <맨 인 블랙>, <아일랜드>,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에서 특수효과를 담당했고 <토탈 리콜>로 63회 아카데미 특별공헌상을 수상한 바 있다. 작품으로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요기 베어>, <메이즈 러너>가 있다. 주연인 브랜든 프레이져(Brendan Fraser)는 <미이라>시리즈, <조지 오브 정글> 등 판타지 코믹영화에 장점을 보이는 배우이다. 조카역인 조쉬 허처슨(Josh Hutcherson)은 단역배우부터 성장해 <헝거 게임>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안내자역의 애니타 브리엠(Anita Briem)은 영화의 배경으로 나온 아이슬란드의 배우다.


잊을 수 없는 형을 따라서 



판구조론을 연구하는 지질학자 트레버(브랜든 프레이저 분) 교수는 형수가 전해준 수년 전 실종된 형의 오래된 상자 속에서 우연히 <지구 속 여행(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된다. 마침 갑작스러운 지진 신호들이 책 속에 남겨진 기록과 일치해 이를 지구 속 세상으로 가는 비밀을 밝힐 중요한 단서라고 여긴 트레버는 조카 션(조쉬 허처슨 분)과 함께 아이슬란드로 향한다. 책 속의 연구소를 찾아가니 책에 적혔던 박사는 이미 죽었다. 대신 딸인 미모의 산악 가이드 한나(애니타 브리엠 분)를 만나 그녀의 도움을 받아 스네펠스 요쿨로 지진계를 찾아 탐험에 나선다. 


스네펠스 요쿨, Snaefellsjoekull National Park, Iceland, source: google map


무사히 분화구에 오르지만 급작스러운 기후 변화로 동굴에 갇힌 그들은 탈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지구 속으로 탐험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지구 중심 세계로 통하는 빅 홀로 빠지게 되는데, 우연히도 거기에는 책에서 이야기하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주변의 마그마로 인해 점차 온도는 높아져서 탈출을 위해 길을 떠난다. 식인 식물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 뜨거운 바람이 몰아치는 굶주린 피라니아가 우글거리는 바다를 건너, 무중력 상태로 허공에 부유하는 자석 바위 징검다리를 넘고 공룡의 습격에서 벗어나는 등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다. 전형적인 어드벤처 영화의 공식을 따라간다. 



쥘 베른, <지구 속 여행> 원작 이야기

원작소설 <지구 속 여행(1864)>은 지질시대의 수수께끼를 간직한 신비한 세계를 풍부한 상상력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광물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삼촌인 독일의 리덴브로크(Lidenbrock) 교수는 아이슬란드의 연금술사 ‘라르네 사크누셈’이 남긴 16세기 아이슬란드 왕의 연대기인 고문서를 구해온다. 조카 인 나 악셀(Axel)은 고문서에서 떨어진 메모를 해독하고 이를 알아버린 삼촌에게 억지로 끌려가 아이슬란드 땅 속으로 모험을 떠난다. 사랑하는 약혼자인 그라우벤(Grauben)의 격려가 없었다면 절대로 안 떠났을 것이다. 


지구 속 여행 중 삽화, Source: Wikimedia Commons by Edouard Riou


전반부는 독일에서 아이슬란드로 가는 여정, 풍습과 에피소드를 여행안내서처럼 지루하게 소개하고 있다. 요즘으로 따지면 공항에서 공항으로 한 문장이면 끝날 일이지만 당시의 교통상황과 리덴브로크 교수의 명성을 설명하면서 신뢰성을 올리기 위해 설정된 것으로 보인다.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우리는 유능한 오리사냥꾼인 한스(Hans)를 만나 탐험에 동행하게 된다. 한스가 없었다면 두 사람은 죽은 목숨이었다. 절벽으로 떨어져 들어간 그들은 지구 속의 거대한 바다인 ‘리덴브로크해’를 지나 간헐천을 통해 지상으로 나오게 된다. 지하를 오르내리며 과거 시대의 지층을 암상으로 묘사하기도 하고 시대에 따른 생물의 화석과 실존 생명체를 관찰하기도 한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 짙은 색깔의 얼룩무늬 대리석이 나타났다. … 대부분의 대리석에는 원시 동물의 윤곽이 나타나 있었다. 이제부터 화석이 진화의 징후를 뚜렷이 나타내기 시작했다. 나는 원시적인 삼엽충 대신 좀 더 완전한 동물의 증거를 발견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경린어류와 기룡류였다.”


교수 일행은 이태리 에올리에 제도의 스트롬볼리 화산을 통해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태리 나폴리 부근에 있는 베수비오스 화산으로 나온다. 두 화산은 모두 유명한데 약 240km 떨어져 있다. 


지구 속 여행, 열림원, 2022

2022년 열림원에서 쥘 베른 컬렉션으로 11권을 출간했다. 쥘 베른의 소설은 오래전부터 소개되고 있었지만 이번처럼 불문학을 전공한 번역가가 원본을 완역한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앞에서 소개된 원본의 삽화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아마도 <신비의 섬> 3권은 국내 첫 소개인 듯하다. 


쥘 베른(Jules Gabriel Verne, 1828~1905)


프랑스의 모험소설 및 과학소설의 개척자이다. SF소설의 창시자로 그 후 모든 SF작가들은 쥘 베른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낭트에서 태어난 그는 부친의 권유로 법학을 공부했는데 파리로 온 후 공부를 그만두고 소설을 집필하게 된다. 1851년 지인의 열기구 여행에 영감을 받아쓴 <기구를 타고 5주간>이라는 작품이 성공하면서 데뷔하게 된다. 이후 <지구 속 여행(1864)>, <지구에서 달까지(1865)>, <해저 2만 리(1869)>, <80일간의 세계일주(1873)> 등 총 54권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쥘 베른, Source: Wikimedia Commons


그의 작품은 초반에는 모험과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다루는 인간 진보에 대한 강한 확신을 보여 주었으나 말년으로 갈수록 염세적이고 어두운 작품으로 변해갔다. 유네스코 번역 인덱스(Index Translationum)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개인작가 2위에 올랐다. 1위는 애거사 크리스티이거 3위는 월리엄 셰익스피어이다. 작가의 필력보다는 스토리 위주의 서술이 많아 이제는 문학적으로는 큰 의미를 부여받고 있지는 못하다. 스팀펑크(Steam Punk, SF의 하위 장르로 증기기관이 도입된 산업혁명기를 배경으로 21세기 모습을 그린다.) 분야의 창시자라 할 수 있다.  


에펠탑 2층에 있는 ‘쥘 베른’ 레스토랑에서 트럼프와 마크롱의 부부동반 만찬(2017)


그가 살던 파리의 거리는 ‘쥘 베른 거리’라 명명됐고 달 뒷면에 그의 이름을 붙인 충돌분화구가 있다. 2017년 트럼프와 마크롱이 부부동반을 한 에펠탑 2층에 있는 ‘쥘 베른’ 레스토랑은 그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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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베른의 작품을 보는 시각


아이슬란드는 요즘 여행가 쪽에서도 핫 한 곳인데 이는 지질학적으로 지구판의 경계가 지표면에서 보이는 곳으로 매우 이국적인 경치를 보이기 때문이고 많은 영화에서 배경지로 선택된다. <프로메테우스>의 촬영지인 데티포스(Detifoss) 폭포,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나온 에이야퍄들라이외퀴들(Eyjafjallajökull, 1651)화산도 그 예이다. 


이 소설은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쥘 베른은 이미 그가 집필한 타 소설에서도 당대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잠수함이나 TV 등을 예견한 바 있다. 이런 쥘 베른의 상상력이 넘치는 소설 속 이야기를 실존하는 이야기로 믿는 사람들을 ‘베르니안’이라고 하는데 이들 중에는 점점 더 구체적인 증거들을 수집하며 이제는 지구 내부가 비어있다는 내용의 ‘지구 공동설’ 학술 연구 자료를 발표한 학자들도 있다. 쥘 베른의 이야기는 공동설과는 약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작품이 발표된 1864년을 가름해 보면 지질학적으로는 찰스 라이엘이 <지질학의 원리>를 출간한 지 30여 년이 지난 시점이고 찰스 다윈이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한 시대이다. 지질학이 요즘의 반도체만큼 핫 한 시대였다. 


쥘 베른 시대에는 광물학이 첨단 과학이어서 소설의 주인공을 광물학자이자 박물학자로 설정했다. 하지만 이제는 판구조론이 첨단지질학이라 영화의 주인공은 구조지질학자로 나온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먼저 떠난 형의 흔적을 따라 백두산 천지로 들어갔다가 온갖 고생을 다하고 한라산 백록담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도 나름 이런 콘셉트의 이야기를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영화에서 곳곳에 등장하는 지질학적 장치들은 현재의 이론에 근거하면 맞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다. 화구에서 형성되는 광물의 종류나 뜬금없는 백운모층이 나온다거나 동물 같은 식충식물 이야기는 영화적인 장치이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라 어드벤처 영화다. 과학적 고증도 했겠지만 원작에서 크게 틀 수는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영화는 또 다른 시선이고 창작품이다. 과학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만큼 우선되는 것이 있을까?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원작이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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