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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Apr 01. 2024

변화하는 기후, 창궐하는 감염병

우리 주변 과학 이야기

기후변화에 따라 과거에는 발생하지 않던 질병이 생겨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코로나 팬더믹 해제 후에 약해진 면역력 때문에 과거 미미하던 질병도 다시 돌아오고 있다. 기후 변화는 질병 매개곤충의 서식 지역을 변경시키는데 이에 따라 발병지역도 변화하고 있다. 해외여행수요가 회복되면서 앞의 두 가지 요인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이제 새로운 감염병이 창궐하는 게 아니냐는 공포심 마저 들게 한다.


미주 대륙의 뎅기열, 일본의 연쇄상구균 독성 쇼크 증후군 그리고 한국의 라임병이 그 예이다. 


미주 대륙의 뎅기열(Dengue fever)

[표지사진: 2019-2020 뎅기열 유행지도, Source: wikimedia commons by LLs]


뎅기열을 옮기는 모기(Aedes aegypti)의 모습, source: wikimedia commons by James Gathany


세계보건기구(WHO) 미주 본부인 범미보건기구(PAHO)는 2024년 3월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 캐나다를 제외한 사실상 모든 미주 지역에서 4가지 뎅기열 유형(혈청형)이 모두 관찰된다”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복수의 혈청형이 동시에 유행하고 있다”라고 발표했다. 현재까지 집계된 2024년 미주 대륙 내 뎅기열 감염자 수는 357만 8414명이며 사망자는 1039명으로 파악(미국 포함)됐다. 사상 최대 수치이다. PAHO는 “이 수치는 전년 동기 대비 3배에 이른다”라고 밝히며 올해에는 이 기록을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뎅기열은 뎅기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모기가 사람을 무는 과정에서 감염되는 질병으로, 강한 통증과 함께 발열, 근육통을 동반하고, 가슴 쪽 피부의 발진을 유발한다. 치사율은 0.01 ~ 0.03 %으로 낮은 편이다. 하지만 중증 뎅기열로 이환될 경우 치사율이 20%에 이른다. 뎅기(dengue)는 갑작스러운 통증 또는 발작을 뜻하는 ki-dinga(kidingapopo)라는 스와힐리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특별한 예방법과 백신이 없기 때문(그래서 악마의 병이라고도 불림)에 모기(주로 이집트숲모기, 흰줄숲모기)에 물리지 않는 방법 밖에 없다. 출혈 위험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열이 나도 아스피린을 먹으면 안 된다.  뎅기열에는 4가지 혈청형이 있어 이미 감염되었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뎅기열의 주요 증상, Source: wikimedia commons by Mikael Häggström


특히 피해가 심각한 지역은 브라질인데, 올해 확진자는 296만 6339명, 사망자는 758명이다. 이는 브라질 정부가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파라과이도 전체 인구 3%에 육박하는 19만 1923명이 뎅기열에 감염된 것으로 집계됐다.


브라질의 뎅기열 모기 소독 작업, source: wikimedia commons by  Agência Brasília


전체 뎅기열 감염자 수는 브라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의 환자 수가 전체 감염자의 92%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질 보건당국은 이상 고온 현상,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위생환경 악화, 엘리뇨 등 기후 변화와 연관된 가뭄과 홍수 그리고 면역이 약한 혈청형의 유행 등이 뎅기열 급증의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바이러스 전파력을 줄인 유전자 변형모기를 생산하여 방사할 계획이라고도 하는데, 효과가 있을지 부작용은 없을지 예상하긴 아직 이르다. 


제3급 감염병인 뎅기열의 우리나라 발생 현황은 2016년 313명에서 정점을 찍은 후, 감소추세를 보였다. 이후 코로나기간에는 감소하다가 2022년 103명, 2023년에 206명으로 늘어나고 있다. 국내 감염은 보고되지 않았고 모두 국외감염이다. 해외 여행객의 증가에 따라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뎅기열은 2010년 가수 신정환이 원정도박을 감추려는 과정에서 뎅기열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국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의 '연쇄상구균 독성 쇼크 증후군'(STSS)


일본 국립감염병연구소(NIID)는 최근 A형 연쇄상구균 질환인 STSS 환자가 2018년 684명에서 2023년 역대 최다 규모인 941명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올해도 심상치 않다. 2월 말까지 47개 현 중 45개 현에서 414명의 STSS 환자가 발생했는데, 이 중 90명이 사망했다. 치명률 21.7%를 기록 중인데, 특히 50세 이상 연령대의 치명률은 24%이다. 


고위험군은 대체로 고령층이지만, 50대 미만 사망자도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7월 ~ 12월까지 50세 미만 STSS 환자 65명 중 21명이 사망했다. 일본 국립감염병연구소의 전망치를 보면, 올해 일본 내 STSS 감염자 수는 신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국립 감염병연구소 홈페이지


연쇄상구균 독성 쇼크 증후군(Streptococcal Toxic Sock Syndrome, STSS)은 화농성 연쇄상구균이라는 박테리아에 의해 감염된다. 연쇄상구균은 비말, 신체 접촉, 손발 상처 등을 통해 전파된다. 감염자는 고열, 인후통, 충혈된 눈, 설사 및 근육통 등을 호소하며 일부는 의식이 혼미해질 수 있다. 전염성이 강한 질환으로 치사율은 최대 3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방역 경계심이 낮아지면서 STSS 환자 수가 급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독성 쇼크 증후군은 한때 미국에서 생리용품인 탐폰을 사용하는 여성 사이에서 유행한 사례가 있었다. 탐폰을 장시간 사용하면 질 내부가 지나치게 건조하게 되거나 상처가 생겨 감염가능성이 커지고 탐폰에서 증식한 병원균이 이 병을 일으킨 것이다. 병원균은 연쇄상구균과 포도상구균이다. 


STSS에 감염되면 주로 감기와 유사한 증세가 나타난다. 그러나 패혈성 인두염이나 편도선염, 폐렴, 뇌수막염 등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으며 심하면 장기 부전이나 괴사, 패혈성 쇼크로 이어질 수 있다. STSS는 항생제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증세가 심하면 여러 약물을 추가로 복용해야 한다.


국내 성홍열 발병 추이, 출처: 감염병 포털


한국에서는 독성 쇼크 증후군이 법정 전명병이 아니어서 따로 집계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한다. 그래서 같은 병원균(A군 용혈성 연쇄상구균)에 의해 발생하는 2급 전염병인 성홍열(Scarlet Fever)의 발생을 추적한다. 성홍열은 3~10세 소아에게 많이 생기며, 보통 발열, 인후통, 발진 등을 동반한 급성 발열성 질환인데 치명률은 1% 이하다. 혀의 돌기가 딸기처럼 부어오르는 증상(딸기혀)이 특징이다. 


위 그래프에서 보듯이 성홍열은 2017년 전 세계 유행당시 한국에서도 최고치(22,838명)를 보이다 점차 감소했다. 코로나 이후 상승하는 추세이다. 2023년에는 810명이 발생했다. 성홍열처럼 STSS도 공기로 감염되지 않고 기침을 통해 감염되는 '비말 감염'의 형태로 전염된다. 때문에 평소 손과 발을 비누와 흐르는 물로 20초 이상 깨끗이 씻으면 예방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백신이 없기 때문에 개인위생이 중요하고 조기발견으로 인한 항생제 투여 등으로 치료한다. 마스크와 손 씻기가 역시 답이다.


성홍열 감염에 의한 딸기혀(Scarlatina tongue), source: wikimedia commons by SyntGrisha


한국의 라임병(Lyme disease)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고 여름이 습해지면서 기후질병이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인수공통감염인 라임병이 2010년 이전에는 발생하지 않다가 2023년 가장 많이 발병했다.  전국적으로 발생하며, 여름철에 주로 발생하나 설치류의 활동이 활발한 봄, 가을에도 발병한다. 2020년 미국의 가수 저스틴 비버가 감염되어 화제가 된 병이다. 


먼지 진드기 전자 현미경 사진, source: wikimedia commons by  Eric Erbe, public domain


라임병이란 진드기가 사람을 물며 발생하는 감염질환이다. 미국 북동부 지역의 풍토병인데 주로 사슴에서 많이 발견된다. 미국 코네티컷주 올드 라임(Old Lyme)에서 유래하여 라임병으로 불린다. 국내에는 목재나 설치류 수입 시 붙어 왔을 것으로 보인다.


매개체가 되는 참진드기는 거미강, 후기문아목, 참진드기과로 전 세계적으로 약 700종이 보고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과 8속 38종이 기록되어 있다. 주로 야생쥐, 다람쥐, 개, 사슴, 사람 등 대부분의 포유류를 비롯하여 조류, 파충류에도 기생한다. 토양이나 풀잎에서 숙주를 기다리다가 이산화탄소, 냄새, 체온 등을 감지하여 지나가는 숙주에 부착하고 흡혈하는 과정에서 질병을 퍼뜨린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 라임병 등 다양한 질병을 매개한다. 


라임병을 일으키는 ‘보렐리아균(Borrelia)’(특히 보렐리아 부르그도르페리(Borrelia burgdorferi))은 매독을 유발하는 ‘시피로헤타 팔리다균(Spirochaeta pallida)’과 동종에 속해 있어서 ‘제2의 에이즈’로 불린다. 초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뇌염이나 부정맥을 일으키고, 안면마비나 기억상실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보렐리아 헤르미시 박테리아와 적혈구의  전자현미경 사진, source: wikime. com. by NIAID, public domain


라임병은 보통 3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는 물린 지 1개월 내에 피부 발진이 생긴다. 두통, 피로, 오한, 열, 통증이 수반된다. 2단계에서는 균이 신경계로 침범하여, 근육과 골격계에 통증이 생긴다. 3단계에서는 관절염이 주기적으로 발생한다. 물린 지 2년 내에 시작된다. 일부환자는 안면 마비, 뇌막염, 기억 상실, 심한 감정의 변화, 집중력 저하가 나타나기도 한다. 라임병의 치료는 주로 독시사이클린, 아목시실린 같은 항생제로 치료한다. 


국내 라임병 발병 추이, 출처: 감염병 포털


질병관리청의 감염병포털에 따르면 2023년 3급 전염병인 라임병은 45건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전년 22건과 비교하면 1년 만에 2배 넘게 증가했다. 한국은 2010년까지만 해도 라임병 발병이 없었지만 2011년 2건을 시작으로 매년 라임병이 발생하고 있다.


라임병 예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진드기에 물리지 않는 것이다. 살충제로 진드기를 제거하고, 나무나 덤불이 많은 지역에 들어갈 경우 긴소매 옷을 입고 폼은 안 나지만 바지단을 긴 양말에 집어넣어 진드기가 붙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진드기에 물린다고 반드시 라임병이 발병하는 것은 아니고 유럽의 경우, 1% 정도에서 발병한다고 한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애완동물이 매개가 되어 인간에게 라임병이 전염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수의사로 구성된 동물구호단체 PDSA는 특히 개에게서 전염되는 사례가 영국에서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처럼 겨울이 따듯해져 애완견을 산책시키는 빈도가 겨울에도 늘고 있어 감염 사례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반려동물도 해를 입고 집사가족도 감염될 수 있다.




이상의 3가지 감염병은 비교적 매개체와 감염경로, 치료법이 확립되어 있는 질병이다. 따라서 너무 겁을 먹거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의 이해가 부족한 질병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인간 몸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의 99% 이상이 아직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다. 일례로 우리 장 안에 서식하는 수많은 박테리아가 변화하는 환경에 어떻게 작용할지 우리는 모르고 살고 있다.  


감염병의 경우, 아는 게 병일 수는 없고, 모르는 것은 결코 약이 될 수 없으며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적어도 유행하여 보도되는 질병 정도는 알아야 할 것이다. 불과 몇 년 전의 코로나 시대를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기억해 보자. 이것이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참고문헌


1.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2050 거주불능 지구, 2021, 추수밭

2. 일본 국립감염병연구소

3. 질병관리본부 감염병 포털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https://view.asiae.co.kr/article/2024032510193855692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6412

https://www.digital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1392

https://www.etnews.com/2024032900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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