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떠난 물체 중 가장 멀리 간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을 읽는 독자 수준이라면 당연히 보이저 1호(Voyager 1)라는 답을 생각해 낼 것이다. 1977년에 발사된 태양계 무인 성간 탐사선(interstellar probe)인 보이저 1호는 발사 46년째인 현재 지구와 태양 간의 거리(1억 496만 km = 1AU)보다 160배 먼 243억 km를 지구로부터 비행, 시속 60,965km(초속 16.7km)로 날고 있다. 이 속도는 지구에서 달까지를 6시간 반에 주파하는 속도다.
보이저 1호의 현재 현황, 출처: JPL
탐사선 보이저는 1호와 2호로 나눠져 있다. 실재로는 2호(1977.8.20 발사)가 1호(1977.9.5 발사)보다 16일 먼저 발사되었다. 탐사선의 이름 순서는 발사순이 아니라, 목성, 토성에 도착하는 순서, 태양계를 가장 먼저, 멀리 벗어날 탐사선을 1호로 붙인 것이다. NASA 과학자들의 멋진 센스가 돋보인다. 당시 보이저 1호의 시스템 문제로 발사가 2호 뒤로 밀렸다고 한다.
행성 대탐사 계획
중세 유럽에서는 그랜드 투어(Grand Tour)라고 해서 부잣집 도련님이나 학자들이 유럽대륙을 여행하며 학식을 쌓고 인맥을 만들었다. 보이저는 NASA의 행성 대탐사 계획(Planetary Grand Tour Program)으로 발사된 탐사선이다. 이 계획은 1964년 제트추진연구소(JPL)의 게리 플란드로가 1970년대 후반에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정렬하여 하나의 탐사선으로 중력도움(Swingby)을 이용하면 적은 비용으로 모두를 방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이 현상은 175년마다 일어난다.그러니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NASA의 예산이 줄어드는 닉슨 행정부에서 막대한 예산이 드는 대규모 외행성 프로그램을 따내기 위해 과학자들은 머리를 짜냈다. 외계 문명 탐사라는 달콤하고 피할 수 없는 목적을 걸고 NASA는 1958년부터 파이어니어 계획에 착수했다. 결과적으로 10호(1972.3.3 발사), 11호(1973.4.6 발사)가 목성 탐사에 성공했다. 이들의 경험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이저가 발사되었다.
보이저 1호가 촬영한 목성의 대적점, 출처: NASA
보이저 1호는 목성, 토성을 지나갔고, 2호는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근접비행했다. 2대의 보이저 탐사선은 특히 목성과 그 위성에 대한 많은 중요한 발견을 이루었다. 가장 획기적인 발견은 과거에 지상관측이나 파이오니어 10호, 파이오니어 11호가 관찰하지 못했던 목성의 위성인 이오의 화산 활동 존재를 밝혔다는 것이다. 이오는 목성의 중력에 의해 내부 마그마가 자극받아 마치 지구 초창기의 모습처럼 화산이 분출하는 지형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보이저 1호는 목성을 이용한 중력보조를 이용하여 추가적인 에너지 부담을 적게 하여 토성을 방문했다. 토성 표면에 124,000km까지 접근하여 토성 및 위성 타이탄의 대기 조성을 조사하였다. 특히 토성 고리의 복잡한 구조를 밝혀냈다.
보이저 1호가 촬영한 목성의 위성 '이오'의 화산 활동, 출처: NASA
창백한 푸른 점, 지구
보이저 계획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아래 사진인 외계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1990.2.14 촬영)이다.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이라고 불리는 이 좁은 각도의 지구 사진은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에 카메라를 돌려 찍은 태양계 최초의 사진의 일부이다. 이 우주선은 지구로부터 40억 마일 이상 떨어진 거리와 황도로부터 약 32도 상공에서 총 60개의 프레임을 촬영했다.
보이저가 통과하던 먼 거리에서 보면 지구는 작은 빛의 한 점에 불과했다. 지구는 크기가 0.12픽셀밖에 되지 않는 점이었다(오른쪽 사선의 중간 부분 하얀 점이 지구). 공교롭게도 지구는 이미지를 태양에 매우 가깝게 촬영함으로써 생기는 산란 광선 중 하나의 중심에 바로 놓여 있다(화면을 가르는 색상의 선).
Pale Blue Dot, Source: Nasa/JPL
이 촬영을 제안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자신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에서, "지구는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이런 의도로 그는 보이저 1호의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지구를 포함한 6개 행성들을 찍을 수 있었고 이 사진들은 '가족사진'이라고 불린다.
성간 우주로 나간 보이저
아래 사진은 2005년 현재의 보이저 1, 2호의 위치를 보여 준다. 보이저 1호는 긴 여행을 하고 있으며 성간 가스와 태양풍이 섞이기 시작하는 지역인 태양권 덮개(Heliosheath)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태양계도 은하 중심을 따라 회전하기 때문에 태양의 영역은 성간물질과 부딪치며 진행된다고 생각된다.
2005년의 보이저 1,2호의 위치, source: wikimedia commons by NASA
당시 보이저 2호는 아직 말단충격(Termination Shock) 영역에 있던 것으로 보인다. 두 탐사선이 시차를 가지고 태양권계면을 통과하면서 태양활동에 따른 계면의 경계 등을 밝혀내는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했다. 아무튼 보이저 1,2호는 성간우주 탐사를 위한 선구자임이 분명하다. 이제는 기능을 상실한 파이어니어 10호, 11호와 함께 지구로부터 우리의 정보를 가지고 성간우주(인터스텔라, interstella) 쪽으로 멀고 먼 여행을 하는 중이다.
보이저는 현재도 작동하고 있다. 2023년 11월 신호가 들어온 후 4개월 동안 통신이 두절되었으나, 2024년 3월 14일 외신에 따르면 해독가능한 신호가 수신됐다고 한다. 당시 나사에 따르면 비행데이터시스템(FDS)과 통신장치(TMU) 간의 소통이상으로 먹통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46년 전에 만든 기계가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문제는 전원인데, 보이저는 태양계 외행성을 탐사할 목적이기 때문에 태양전지를 쓸 수가 없다. 따라서 플루토늄-238 방사성 동위원소 열전 발전기(RTG)라는 원자력전지(아래 사진의 좌측 팔)를 사용하는데, 우리는 이 장치를 영화 <마션>에서 이미 경험해 본 바 있다. 아무리 원자력이라고 해도 아껴 써도 2030년 이후에는 지구와의 통신에 쓸 전력이 부족해질 것으로 보인다(반감기 87.7년). 그 후에는 조용히 태양계밖으로 혼자 여행할 것이다.
보이저의 장치, source: wikimedia commons by NASA
보이저호의 장비, 왼쪽 아래가 RTG, source: wikimedia commons by NASA
지금 이 순간도 보이저 1, 2호는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져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보이저들은 자신의 기록을 매일 경신하며 성간 우주로 나아가고 있다. 벌써 빛으로 가도 22시간 이상 가야 하는 지점을 지나고 있다. 원자력 전지가 멈춰 기능이 다하기 전에 정말로 외계의 문명을 만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일상에 부딪치고 실망과 피로에 찌든 우리에게 보이저는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을까? 진실은 밖에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