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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Oct 30. 2022

실상사가 멋있게 보이는 이유

문화유산 지질학

강암이 석조 문화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반려암으로 만든 석탑 등을 보면 그 장엄함과 색상을 잊을 수는 없다. 고수들만의 느낌이랄까, 그런 게 담겨 있다. 보통 석탑이나 석불은 한 가지 종류의 암석으로 만들어진다. 그렇게 해야 원료도 구하기 쉽고 만들기도 쉬운데 다가 깔끔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장인이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독특한 분은 언제나 계시기 마련이다.


함양 교산리 석조여래좌상, 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복련무늬 반려암 하대석, 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함양중학교 교정에 있는 함양 교산리 석조여래좌상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고려시대 석불이다. 심하게 훼손된 모습이 가슴 아프다. 그런데 이 석불은 부분별로 암석이 다르다. 위에서부터 불상은 반상흑운모화강암이고, 상대석과 중대석은 편상화강섬록암, 하대석은 반려암, 마지막으로 대체석은 세립질흑운모화강암이다. 하대석이 반려암이라 어두운 색이 눈에 띈다. 이 검은색 암석을 쓴 석조문화재가 많은 곳이 바로 남원 실상사이다.


반려암의 사찰, 실상사


남원 실상사(實相寺)는 신라 선종 구산선문 중에 가장 먼저 만들어진 절이다. 신라 흥덕왕 3년 (828) 홍척 증각대사가 창건하였고 2대조 수철, 3대조 편운이 중창하였다.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숙종 16년(1690)에 다시 세웠다. 그러나 고종 20년(1883)에 다시 화재가 나서 이듬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할 암자인 약수암과 백장암의 문화재까지 따지면 국보 1점(백장암 삼층석탑), 보물 11점으로 문화재 도장깨기를 할 때 가장 먼저 찾아야 할 사찰이다.


평지 절인 실상사는 남동쪽으로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1915m)이 보인다. 절 자체는 산에 기대어 있지 많다. 동서남북으로 천 m가 넘는 산들에 둘러 쌓여 있는데 서쪽을 제외하고 주변 산이 반려암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절의 대부분의 석조문화재는 반려암으로 되어 있다. 밝은 색의 화강암과는 달리 장중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중요한 몇 가지 문화재만 살펴보자.

남원 실상사 삼층석탑, 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보광전 앞에는 두 기의 석탑이 나란히 서있는데 동탑, 서탑으로 나누어 부른다. 규모와 수법이 거의 유사하다. 1 석탑 시스템에서 2 석탑 시스템으로 가는 통일 신라시대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대표적인 석탑이다. 특히 상륜부의 장식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석가탑의 복원에 모델로 사용되기도 했다.

실상사 석등


동서탑의 가운데에는 보광전과 축선을 맞춰서 석등이 놓여 있다. 석탑의 제일 아래에는 지대석 위의 하대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아래쪽에는 8면으로 인상을 새겨 놓았고 위쪽에는 복엽의 연꽃잎을 조각하여 놓았다. 가주석은 3단을 이루며 고복형태(鼓腹形態)로 되어 있다. 간주석 위에는 3단의 상대 받침에 단엽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8면의 화사석은 직사각형의 화창이 뚫어져 있다. 상륜부가 잘 보전되어 있다. 규모가 커서 등을 켤 때 사용하는 돌 사다리가 앞에 놓여 있다.


절의 좌측에 극락전이 있는데 이 좌우에 부도탑이 두 개가 있어 부도전이라고도 불린다. 왼편으로는 증각대사탑, 오른편에는 수철화상탑이 그것이다. 모두 반려암으로 만든 팔각 승탑이다.

실상사 수철화상탑


수철화상탑은 2대조 수철스님의 부도다. 높이가 2.4m이다. 옆에 귀부가 없는 형식의 수철화상 부도비가 있어 수철스님의 부도임을 알려준다.


이외에 약사전에는 개산 당시 조성된 철조여래좌상이 있는데 선종 사찰 중에선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후 보림사 철불이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 초기의 철불 형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약수암에는 목각아미타여래성법상이 있다.


그리고 실상사의 소속 암자인 백장사는 실상사에서 동북쪽으로 차로 10분 거리인 수청산(772m)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암자 입구 부도밭을 지나면 시야가 탁 트이면서 암자가 나타난다. 현재는 법당, 칠성각, 산신각만 있는 단출한 암자지만 꽤 넓은 아래쪽 밭에 옛 절터의 흔적이 보인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 실상사의 모든 승려가 이곳으로 피했다고 할 정도로 터가 넓다.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사층 석탑과 석등이 유명한데, 국보인 삼층석탑은 높이 5m의 반려암 이형석 탑이다. 기단 없이 바로 탑신으로 시작하는 석탑은 탑신 전체에 난간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탑이다. 1층 탑신은 폭에 비해 높이가 높다. 1층 탑신에는 우주와 탱주가 없고 문비가 인물상과 세겨져 있다. 2층에는 주악천사상, 3층에는 천인좌상을 세겼다. 우리나라 석탑 중 장엄을 가장 잘 표현한 석탑이다. 상륜부는 노반, 복발, 앙화, 보개, 보륜, 수연이 찰주에 꽂혀 잘 보전되어 있다. 실상사 석조 문화재 중의 백미이다.


지리산의 지질


다른 곳에서 쓰지 않던 반려암은 왜 여기에 씌었을까? 그것은 실상사를 둘러싸고 있는 지리산의 지질과 관계된다.

실상사 주변의 지질, 붉은 지역이 반려암 지역, 출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캠브리아기 영남 지괴 남서부에 위치한 지리산은 지질학적으로 고도 변성된 변성암류로 구성되어 있다. 영남 지괴는 경기 지괴와 함께 우리나라의 기반을 이루는 땅덩어리다. 동쪽으로는 남강, 서쪽으로는 섬진강에 둘러 쌓여 있다. 주 변성 시기는 18억 4~5천만 년 사이로 추정된다. 조산운동기 직후 판 내부에서 시작된 열개 작용으로 생성된 규장질 및 고철질 마그마 작용에 의한 변성 작용으로 보인다.


지리산의 지질은 전체적으로 선캠브리아기 편마암류로 되어 있다. 부분적으로 동측에는 남북방향으로 선캠브리아기의 하동-산청 회장암(anorthosite) 복합체가 관입하고 있는데 매우 특이한 암석이다. 90% 이상이 사장석으로 구성되어 색상이 하얗지만 고철질 암석으로 분류된다. 달의 밝은 부분을 이루는 암석이 회장암으로 알려졌다.  북서 측은 중생대 초-중기의 화강암이 관입되어 있다.

마천석이라고 불리는 반려암 채석장


그리고 지리산 중북부 마천면 일대에는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말(약 2억 2300만 년 전)에 관입한 반려암질 층상 관입암이 분포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그 반려암이다. 암체 내에 반려암, 우백질 반려암, 회장암질암이 층상으로 구조를 보이며 분포한다. 지리산의 대부분의 암석이 만들어진 후에 관입되어 형성된 것이다.


층상 관입암체란 마그마가 식으면서 고철질 암석이 층상으로 형성되는 경우를 일컫는 용어이다. 냉각 초기에 주로 고철질(mafic) 광물들이 많이 정출되기 때문에 이를 층상으로 파악한다. 아직 여러 가지 메커니즘을 들고 있어 정확한 합의는 없지만 크롬철석이나 백금족 원소들이 농집 되면서 고철질 광상을 형성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주목을 받는 지질구조이다. 우리나라 산청 산내면 일대에서 개발되었던 니켈 광상도 같은 성인으로 알려졌다.


고철질 암석이란 화성암 중에 마그네슘 이온과 2가 철 이온이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들어있는 암석을 말한다. 산화마그네슘을 고토라고 하므로 여기에서 고철질이라는 용어가 유래되었다. 고철질 광물을 50% 이상 가진 암석을 지칭하며 이 광물이 유색 광물이기 때문에 어두운 색을 띠게 된다. 마그마는 식으면서 고체로 만들어지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초기에는 고철질 광물이 먼저 광물로 만들어지고 나중에는 규장질 성분으로 변한다.


반려암(斑糲岩, gabbro)이란 화성암 중 화학성분이 염기성인 즉 고철질인 심성암을 말한다. 결정이 잘 보이는 완정질에 결정의 크기가 큰 조립질 암석이다. 입자의 크기 등은 화강암과 유사하다.  사장석, 휘석, 각섬석, 감람석, 자철광 등이 들어 있는 고철질(mafic) 암석이어서 암흑색~암회색을 띤다. 반려암 성분의 마그마가 지표에 노출되어 나오면 우리가 잘 아는 현무암을 만든다. 반려암은 화천, 춘천, 함양, 부산 등에서 볼 수 있다.


석조유물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로 그 산지와 가까운 재료를 쓰기 마련이다. 이런 현상은 운송수단이 발달하지 많았던 과거로 갈수록 더 분명해진다. 종교 유물의 경우는 일반 건축물보다 더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특별한 암석을 사용하기도 한다. 반려암 같은 검은 암석은 일반 건축물에 쓰기 어렵다. 건물 분위기가 우중충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의 색상이 다른 별도의 재질 암석과도 섞어 쓰기 어렵다. 하지만 장엄하고 무게감 있는 종교 건축물인 경우는 훌륭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세월의 흔적에도 강해서 변색에 따른 미관 손상이 적다.


실상사와 같이 유서 깊은 사찰은 이런 의미에서 반려암이라는 특별한 암석을 선택하여 석탑, 석등, 승탑 등을 만들었다. 이는 다른 사찰과 차별화되는 이미지와 수행 장소로서의 분위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 모여 천년을 이어오는 힘의 밑바탕이 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참고문헌


1.     류경석, 김지영, 전규근, 한두루, 이찬희, 2012, 함양 교산리 석조여래좌상의 재질 특성 및 손상도 평가, 지질학회지, 제48권 제6호, p.521~532

2.     송용선, 김동연, 박계헌, 2007, 고철질-초고철질 마천관입암의 층상구조 개관, 암석학회지, 제16권 제3호, p.162~179

3.     송용선, 박계헌, 2017, 지리산 : 지각 깊은 곳을 보는 창문, 암석학회지, 제26권 제4호, p.385~298

4.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 6 지리산자락, 1996, 돌베개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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