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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Oct 23. 2022

문화재의 변신은 무죄인가?

복원에 대한 단상

준비가 부족하면 사달이 나는 법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일이 생긴다. 얼마 전 충주 미륵대원지(사적 제317호)를 방문하고 망연자실했다. 그 큰 미륵불이 지붕을 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울어진 석탑을 새로 쌓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2014년 시작하여 2021년에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22년 10월 초까지 아직 미완성인 상태). 망했다는 생각에 언제 또 오나 하는 생각이 겹쳤다. 올해 안동 조탑리 오층 전탑(보물 제57호)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전날 보수공사 사실을 알았으니 말이다(보수 예정 기간: 2021~2026). 힘들게 찾은 해외의 박물관이 보수로 닫혀 있는 경우는 더 당황스럽다. 답사나 방문 계획이 있으면 혹시 모르니 관람이 가능한지 꼼꼼히 체크해 보아야겠다.


                                         충주 미륵대원지 보수공사 전경, 2021

문화재는 정의상 시간의 흐름을 안고 가는 것이기에 세월이 흐르면 원래의 모습과 달라진다. 화학적 변화, 생물학적 변화, 인위적인 훼손 등 그들이 기적적으로 피해온 각종 재난이 사실은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이다.

그래서 후학들은 원래의 모습을 살린다는 숭고한 사명으로 복원작업에 매달린다. 하지만 복원은 복원이며 부활은 아니다. 복원은 어떻게 원본에 최소한의 피해만 주고 훼손 부분을 복구하느냐 하는 것이다.

문화재의 종류에 따라 복원 방법은 다르고 상태에 따라 다양하다. 가장 많은 지정문화재인 석조문화재의 가장 기본적인 복원 방법인 세척에 대해서 두 가지 사례로 알아보자. 문화재도 사람과 다르지 않아서 우리가 피부과 가서 하듯이 필링(peeling)을 하고 레이저(laser)를 맞는다. 사람도 필러나 보톡스를 맞는 것은 원형을 심하게 변형시키는 것이라 본인은 모르겠지만 보는 사람은 조금 불편해지게 된다. 문화재는 사람과는 달라서 원판을 훼손시키는 것은 피할 일이다.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보존처리 전 모습 출처: 문화재청

지리산 자락에 있는 화엄사에 있다. 절 서북쪽 높은 대지에 석등과 마주 보고 있다. 2층 기단에 3층 탑신을 올렸다. 이름처럼 2층 기단부 모퉁이에 암수 네 마리의 사자를 배치하고 가운데 스님 상을 놓았다. 이 스님은 연기조사의 어머니이고 앞 석등 아래에 찻잔을 들고 있는 스님은 연기조사라고 전해진다. 아래층 기단에는 사면에 천인상이 각 면에 3개씩 부조로 새겨져 있고 탑신 1층에는 문짝 모양 양편에 인왕상, 사천왕상, 보살상을 조각해 놓았다. 네 귀퉁이가 살짝 들린 지붕돌은 5단의 받침이 있다. 탑 꼭대기에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만 남아 있다. 2021년 국립문화재연구원 건축문화재연구실에서 보전처리를 마치고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보존 처리 전 모습, 출처 : 문화재청

이 탑은 고려 지광국사 해린(984~1607)을 기리기 위해 원주 법천사지에 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오사카로 빼돌려졌다가 반환되었고 한국전쟁 중에 상당히 파손됐다. 손상된 부분을 시멘트로 복원했으나 석회가 흘러내리고 곳곳에 균열이 발생하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하지 못하고 경복궁 경내에 있었다. 통일신라의 8각 탑 양식과는 달리 4각 평면으로 되어 있다. 장식이 정교하고 7층으로 이뤄진 탑신의 무늬 또한 자세하다.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고려시대 탑 중 수작으로 꼽힌다.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보존 처리가 진행 중이며 아마도 원주 법천사지로 귀향할 듯하다.

보존은 과학이다.

우리나라 지정문화재 중 23.6%가 석조문화재이다. 돌은 우리나라에서는 어디서나 구하기 쉽고 재료가 단단해 가공은 어렵지만, 파손에 비교적 강하다. 이는 많은 폐사지에 석탑과 비만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잘 이해된다. 하지만 오랜 세월 야외에 있다 보면 손상과 훼손을 피할 수 없다.

석조문화재의 보존 처리는 크게 세척, 충진, 접합, 경화, 보강의 5단계로 이뤄진다(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처리지침). 세척은 표면의 낙서, 오염물, 지의류, 건태류, 이끼류, 초본류 등 하등식물, 분진, 미세먼지나 석재의 풍화로 인한 변색 등을 제거하고 닦아내는 것이다. 세척은 건식과 습식으로 나누고 또 계면활성제나 유기용제를 사용하는 화학적 세척과 압축공기나 수증기를 쏘아 제거하는 물리적 세척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위에서 소개한 두 문화재의 세척 방법이 서로 달라 이를 나눠 설명해보고자 한다.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의 경우, 건식 세척-습식 세척-스팀 세척 이후에 블라스팅(blasting, 샌딩) 세척을 실시하였다. 미세한 실리카 가루를 압축공기를 이용하여 쏘아서 표면의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것이다.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은 스팀 세척 이후 레이저 세척법을 적용하였다고 한다. 블라스팅은 넓은 표면은 고루 갈아내는 것으로 유럽 성당 등에 많이 사용된다. 석회암, 대리석은 산성비에 약하기 때문에 표면 오염이 화강암에 비해 상대적으로 심해서 애용된다. 블라스팅 작업을 한 사사자 삼층석탑은 표면이 매우 밝아졌다고 한다. 한편 레이저 세척법은 오염 부분만 선택적으로 제거한다. 하지만 고출력 에너지가 발생하기 때문에 손상을 피하기 위해 세심한 작업이 필요해 시간과 노력이 더 소요된다.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보존 처리 후 모습(2021), 출처: 문화재청

보존 방법을 매우 간단하게 설명하였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세밀한 작업에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전에 실시된 어설픈 복구의 흔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해체 과정에서 면밀한 관찰과 기록, 과학적 분석이 따라야 하는 게 기본이다. 또 설치된 장소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별도의 작업이다. 좌대가 기울거나 토양 등이 유실되어 불안정성이 커진 경우에는 이를 보강하여야 한다.

두 세척 방법은 피부과에서 얼굴 전체를 박피하는 것과 점만 레이저로 제거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사람이야 피부가 계속 재생되므로 어떤 방법이든 시간이 지나면 복구되지만, 무생물인 문화재는 다르다. 어떠한 세척 방법이든지 일부 원본의 손상을 피할 수는 없다. 복구의 결정은 문화적인 과정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문화재 표면 상태를 과학적으로 판단하여 전문가가 선택하여야 할 것이다.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의 복원된 모습이 궁금해진다.

참고문헌

1.     국립문화재연구소,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수리, 2021
2.     강대일, 보존과학, 기억과 기치를 복원하다, 2022, 덕주
3.     김겸,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 2018, 문학동네
4.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보존∙복원 I, 2017
5.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보존∙복원 II, 2018
6.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2011년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 폐기됐으나 혼동을 피하고자 구 번호를 기재함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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