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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Oct 10. 2022

팰리세이드 VS 팰리세이드

현대자동차 이름과 지질명소 이야기

현대자동차는 한국시장에 2018년 11월 준대형 SUV인 팰리세이드(Palisade)를 출시했습니다. 출시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도 인수하려면 수개월이 걸렸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습니다. 저는 자동차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이 적은 축에 속해 인기의 비결이 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름을 통해 여러가지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최근 현대자동차의 SUV의 이름이 대체로 미국 서부지역의 휴양지의 이름을 따서 붙인다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으로 따지면 만리포, 대천, 무창포 이런 식으로 해안 지명을 붙인 것이지요.

   패시픽 팰리세이즈 해변가(출처 : 머니투데이, 현대자동차)

                          
보도에 따르면 팰리세이드라는 이름은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해변 지역 패시픽 팰리세이즈(Pacific Palisades)에서 영감(?)을 받아 정해졌다고 합니다. 패시픽 팰리세이즈는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있는 고급 주택지구로,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미드 센추리 모던(mid-century modern)’ 스타일(무슨 말일까요)의 걸작 대저택들이 모여 있는 동네랍니다. 이 양식은 1940~60년대 주택건축 양식으로 실용성과 군더더기가 없는 간결한 디자인과 모던함이 특징이라고 하네요.

이 지역은 시원한 태평양 바닷바람과 일몰로 유명한데 하이킹, 자전거 타기 및 고급 골프 코스가 있어 여유로운 동네라고 합니다. 구글 지도를 보면 베벌리 힐스에서 남서쪽으로 1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패시픽 팰리세이드 지역의 편안하고 여유 있는 분위기가 자동차 이미지와 일치하다 보니, 이곳 지명을 차명에 적용하게 되었다"라고 현대자동차 관계자가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광고에는 이런 그림도 나왔습니다.



이후 현대자동차는 영역이라는 이미지에 집중합니다. 영역은 넓은 지역에서 한 부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타적인 공간을 말하는 것이지요. 현대적으로 말해서는 개성을 갖는 어떤 것을 말합니다. 공룡이 영역의 표시를 하고 다니는 습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영역 표시는 개과와 고양잇과 동물의 특징입니다.

어떤 이미지를 빌리고 어떤 그림을 광고에 사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생산자와 광고주의 몫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통해 다른 상상을 하는 것은 소비자인 우리의 몫입니다.

원래 단어인 팰리세이드는 사전을 찾아보면 ‘공격에 대한 방어를 위해 세운 나무나 철재로 만든 울타리나 말뚝’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Palisade는 ‘pale’이라는 단어와 같은 어원에서 파생되었고 말뚝을 의미하는 라틴어 palus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케임브리지 딕셔너리의 palisade 참고 사진



좀 해석해보면 ‘타인들의 공격에 대해 나만의 영역을 방어하는 울타리로써 팰리세이드를 사라‘고 표현했다면 좀 과한 해석일까요? 당시 그 지역에 독자적인 부촌을 형성하고 있어 울타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원래 이름을 따온 지명과 제품의 이름, 광고 이미지가 뭔가 어색한 감이 들었습니다. 그래 제가 알고 있던 팰리세이드와는 어떻게 관계가 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시 미국 이야기입니다. 뉴욕 섬에서 뉴저지 쪽으로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하여 고속도로를 따라 허드슨강 상류 쪽으로 15km 정도 가면 팰리세이드 인터스테이트 공원이 나옵니다. 맨해튼의 서쪽이지요. 이쪽은 지대가 약간 높아 100m 정도의 단구대(계단형 절벽)를 형성합니다. 허드슨 강에서 보면 절벽이 아주 멋있습니다.



허드슨 강의 팰리세이드 절벽,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자 이제 자세히 보면 팰리세이드라고 지명이 붙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절벽이 마치 나무 울타리처럼 보이시지 않나요? 이것이 바로 반심성화성암인 휘록암(diabase)의 주상 절리입니다. 휘록암은 장석과 휘석이 주를 이루는 화성암입니다. 현무암처럼 검다고 생각하시면 되고 대신 구멍이 없고 광물 입자가 잘 보입니다. 그리고 이 화성암이 땅 밑에서 천천히(백만 년 이상) 식으면 기둥 모양의 주상 절리가 발달합니다. 이 암석이 주변을 덮었던 다른 암석들이 침식되고 지표로 주상 절리가 노출되게 되면 멋진 경관을 만들어 냅니다. 마치 제주도의 서귀포 현무암 절리 같이 말입니다. 이런 모습을 인디언이나 멕시코 사람들과 싸웠던 미국 사람들의 눈에는 방어용 울타리로 보였나 봅니다. 이렇게 보면 팰리세이드의 영역을 표시하라는 이미지는 허드슨강의 서쪽에 영역을 확보하고 공격 또는 진출을 준비하는 과정을 의미하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약 2억 년 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가 끝나고 판게아라는 초대륙(지구상의 땅덩어리가 하나로 붙어 있었지요)이 분열되기 시작했습니다. 북미에서는 바로 이 지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현재의 미국 동부지역에서 열곡대(마그마가 올라오면서 생기는 골짜기. 현재 동아프리카 열곡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가 형성되고 팡게아는 북미대륙과 아프리카로 분리되었습니다. 지구 내부에서 상승한 마그마는 화성암을 남기고 대양저가 확장되면서 대륙들은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이때 휘록암이 사암층과 혈암층의 층리면에 수평으로 주입되어 암상(Sill)을 만듭니다(재미있는 것은 이때 전 세계 생물종의 80%가 멸종하는 대멸종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위에 계속 퇴적층이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그 후 신생대 최후 빙하기에 빙하는 맨해튼까지 다다르는데 이때 허드슨 협곡이 만들어지면서 팰리세이드 휘록암이 지표면에 노출된 것으로 보입니다(당연히 같은 암석들이 현재의 모로코, 서사하라 서부에 있겠지요).


   DNA에서 우주를 만나다, 닐 슈반, 중에서 북미와 아프리카가 붙어 있는 모습


결국 팰리세이드는 트라이아스기라는 하나의 지질시대가 막을 내린 증거이고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이기도 한 것입니다. 지질학적인 전문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팰리세이드는 단순한 휴양지의 이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많은 세계인이 우리 종의 과거와 지구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이제 우리 기업들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어디서나 우리 제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이폰, 갤럭시라고 브랜드를 붙이고 그 뒤에 1,2,3... 등으로 번호를 붙이는 제품명이 아니라면 이러한 이유로 조금 더 제품 이름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우리 기업이 더욱 다양한 분야의 경험이 있고 인사이트가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다시 뉴저지로 내려와서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 팰팍‘이라고 부르는 코리아타운이 있습니다. 뉴욕이 가깝고 한국인이 전체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며 시장도 한국 사람입니다. 영어를 모르더라도 전혀 생활에 지장이 없는 곳입니다. 온갖 한국 상점이 다 들어와 있습니다. 팰팍은 ’ 팰리세이드 파크‘의 줄임말입니다. 혹시 이곳 이름을 따서 팰리세이드가 나온 것은 아니겠지요?

펠리세이드 공원 홈페이지 https://www.njpalisades.org/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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