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지질학
현재 유통되는 지폐는 천원권, 오천원권, 만원권, 오만원권 4가지 종류이다. 앞면은 인물이 있고 뒷면은 풍경화나 식물 그림이 있다. 하지만 만원권은 특이하다. 앞면에는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세종대왕 초상과 일월오봉도가 들어 있고, 뒷면에는 우리나라의 과학문명이 도안되어 있다. 혼천시계, 보현산 천문대 망원경과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그것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하늘의 모습(천상·天象)을 차(次)와 분야(分野)로 벌려놓은(열·列) 천문도이다. 동양의 별자리를 황도면을 따라 12개의 영역(차)으로 나누고 별자리 영역을 지상 12개 왕조(분야)와 대응시킨 것이다. 중심부에는 북극성을 두고 태양이 지나는 길인 황도와 남북극 가운데로 적도를 그려 넣었다. 황도 근처의 하늘을 12 등분하여 눈으로 관찰 가능한 1,464개 별을 그 안에 점으로 표시하였다. 아래에는 지도 제작경위와 참여자 명단이 적혀 있다.
지도는 돌을 새겨 만들었는데 이 각석(刻石)은 태조 4년(1395, 보물 제228호))와 숙종 13년(1687, 보물 제837호)에 두 번 제작되었다. 세종 때 만든 각석이 있었다고 하나 분명하지는 않다. 태조 때 제작된 각석은 중국 남송의 <순우천문도 淳祐天文圖>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오래된 것이다.
왜 만들었을까?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조선의 개국이 하늘의 뜻임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이에 상징성을 갖는 여러 가지 표식이 필요했다. 마침 고구려시대 평양성에 있던 돌에 새긴 천문도 탁본을 구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고쳐 만든 것이 태조 본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이다. 이 내용은 태조 석각본의 우측 하단에 새겨져 있다.
숙종 때 복각을 한 이유는 처음 각석이 만들어진 후 거의 300년이 흘렀기 때문에 아무리 돌에 새겼다고 해도 돌이 닳아 잘 보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태조 본 뒤에 같은 내용의 각인이 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일부 학자는 세종 때 만든 각석이 뒷면에 새긴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데 아직 정리된 학설은 없다.
이 각석을 기본으로 탁본을 만들기도 했고 목판본을 만들기도 했다. 선조 4년(1571)에 목판을 이용 120점을 찍어 2품 이상 고위관리에게 하사하였다. 현재는 2장만이 발견되는데 한 장은 일본 텐리(天理) 대 박물관 소장품을 2006년 신한은행이 매입하여 고궁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현재 전시되어 있다. 고탁본은 박창범(1998)에 따르면 숙종 석각본의 인본으로 생각되는데 현재 기관에 보관된 7점*과 개인 소장품 몇 점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안동박물관과 대관령박물관 등 다수의 모사본이 전해진다.
* 규장각 3점, 국사편찬위원회,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숭실대학교 박물관 및 경주 신라역사박물관 각 1점
실재로는 태조 본은 1960년대에 창경궁 명정전 추녀 밑에서 발견되었다. 가끔 이런 방식으로 주요한 유물이 발견되는데 반갑기도 하지만 안타깝기도 한다. 저자의 시각으로는 분명히 궁궐 내의 다른 석조 유물과는 다른 확연히 구분되는 암석이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관심 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점판암이나 대리석 등은 전각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돌이기 때문에 건물의 부재로 사용되는 화강암 등과는 분명히 다른 용도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궁궐 내의 돌만을 살펴보아도 추가적인 발견이 가능할 것을 생각된다.
각석의 암석
태조의 석각본은 오석(烏石)에 새겨졌다. 까마귀 오자의 오석은 까마귀 깃털 색 같은 검은 돌이다. 밤하늘을 상징하는 색으로는 어울린다. 오석은 암석의 종류가 아니라 단지 검은색의 돌이라는 뜻이다.
일부 보도에서 각석의 재질을 문화유산채널에는 흑요암이라고 쓰고 있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대리석으로 표시되어 있다. 명백한 오류다. 조금만 암석을 아는 사람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유지현 등(2018)에 따르면 태조본은 암갈색의 점판암이고 숙종본은 회백색 백운암이다.
점판암(slate)는 점토질 퇴적암이 압력에 따른 변성 작용을 받았을 때 생기는 변성암이다. 입자가 고르고 균일하여 각자를 새기기에 좋은 암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옥천변성대 주변의 보은, 옥천 등지에서 많이 산출된다. 백운암(dolostone)은 석회암에 마그네슘(Mg)가 첨가되어 만들어지는 퇴적 탄산염암이다. 역시 입자가 작고 고르기 때문에 각자에 안성맞춤이다. 다양한 방법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우리나라에서 단양, 정선 등지에서 많이 산출된다. 정선의 정암사 수마노탑이 이 암석으로 만들어진 탑이다.
석조 문화유산의 암석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만들어질 당시의 정치, 경제적 상황, 관리 및 유지 시의 동종 암석의 확보에 일차적으로 중요한 기준이 된다. 특히 암석의 산지에 대한 당시의 지명을 과학적으로 암석을 구분하면 보다 정확한 지역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 문화유산에 대한 구성 암석의 연구에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2022년 12월 27일 과학문화실을 재단장하여 문을 열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외에도 42건의 조선 왕실 과학문화 유물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각석에 프로젝터를 조사하여 구분하기 힘든 각석의 이미지를 잘 나타냈으며 안내 동영상을 넓은 공간에 함께 상영하고 있다. 모처럼 보기에 잘 만들어진 전시 공간이니 많은 관람을 추천한다.
참고문헌
1. 문화재청, 조선 개국과 천상열차분야지도
2. 박창범, 1998,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그림 분석, 한국과학사학회지, 제20권 제2호, p.113~149
3. 유지현, 이명성, 최명주, 안유빈, 김유리, 2018,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의 재질특성과 비파괴 훼손도 평가, 암석학회지, 제27호 제4권, p.207~222
4. 정태민, 2007, 별자리에 숨겨진 우리역사, 한문화
5. 주간경향, 2023.1.9, 이기환의 Hi-story,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천상행 열차 노선도?
전영식, 과학커뮤니케티터, 이학박사
https://brunch.co.kr/@8133d3a5098c4e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