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영식 May 05. 2023

영국 대관식, 운명의 돌은 얼마일까?

생활 속 지질학 이야기

찰스 3세 영국 국왕 부부, 출처: 영국왕실 홈페이지


2023년 5월 6일은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70년간 기다려 온 대관식이 거행되는 날이다. 요즘은 영연방에서 영국 국왕에 대한 인기가 시들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이애나 비와의 결혼식만큼 세기의 행사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돈만 쓰는 왕실이라는 이미지가 부담스러워 결혼음식도 시금치가 든 파이인 키슈 플로랑틴(quiche florentine)을 내놓는다고 한다.


대관식 키슈, 출처: 영국 왕실 홈페이지


대관식에는 여러 가지 볼거리가 있지만 지질학자의 입장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운명의 돌(stone of Destiny)’이다. 달에 가고 화성 이주계획을 짜고 있는 21세기에 영국 국왕의 대관식에 돌이 중요한 물건으로 쓰인다니 호기심이 생긴다.


찰스 3세가 대관식 때 앉을 의자 안에 설치될 '운명의 돌'. 출처:  AP 연합뉴스


운명의 돌은 암석학적으로 모래로 만들어진 퇴적암인 사암인데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지만 붉은색을 띤다고 한다. 가로 66cm, 세로 43cm, 높이 27cm이다. 대략 우체국 택배박스 중 가장 큰 6호 상자 정도 되는데 높이는 반쯤 되는 크기이다. 무게는 돌이니 무거워 152kg이다. 이번 대관식을 위해 이동하는 장면에서 남녀 6명이 들고 이동행사를 했다. 별로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평범한 바위라는 느낌이다.


사실 이 돌은 원래 스코틀랜드의 스쿤(Scone)에 있어 ‘스쿤의 돌’이라고도 불리는데, 스코틀랜드에 기독교가 전승된 이래 왕들의 즉위식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1296년 잉글랜드 왕국의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정복하고 승전물로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가져와 버렸다. 이 돌을 넣을 수 있는 대관식 의자(세인트 에드워드 의자)를 만들어 자기들 잉글랜드 국왕 대관식에 쭉 사용했다. 마치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빼돌린 것처럼 말이다. 1996년 국제적인 비난 때문에 에든버러 성으로 돌려주었지만 대관식이 있을 때는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래서 이번 대관식에도 운명의 돌은 에든버러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까지 운반되어 사용되고 다시 돌아갈 예정이다.


에든버러 성에 전시된 운명의 돌 모조품, source: Wikimedia commons by Peter Hodge

 

이 돌이 이렇게 요란스러운 이유는 스토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서 창세기 28장 10~22절 사이에 묘사되어 있는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이삭의 아들이며 훗날 이스라엘로 불리는 야곱의 이야기인데,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형 에서의 복수를 피해 외갓집으로 도피하는데, 도중에 산에서 잠이 들어 하늘까지 이어진 사다리와 천국의 여호와를 만나게 된다. 여호와로부터 아브라함의 후계자임을 인정받는데 이때 베고 잔 돌이 운명의 돌이라는 것이다.


세인트 에드워드 의자, 화살표 부분의 장식을 열고 운명의 돌을 넣는다.  출처: 영국 왕실 홈페이지


그 후 이 돌은 옛 그리스 왕자 가텔로스가 메소포타미아 여행 중 이 돌을 발견하고 이집트로 가져가 스코타(Scota) 공주와 결혼한 후 시칠리아를 거쳐 스페인에 천년을 머무르다가 스코틀랜드로 이주할 때 가져왔다고 한다. 이 돌은 기독교 전승 이래 스코틀랜드의 왕이 즉위할 때 깔고 앉아 왕관을 받고 귀족들의 충성서약을 받는 왕권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이름이 스코타 공주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 모든 것이 그냥 전설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비슷한 돌이 하나 더 있는데 팔리아스(Falias)에 있는 리어팔(Lia Fail)이 그것이다. 아일랜드 신화를 담은 <에린 침략의 서>에서 나오는 비보 중 하나로 정당한 왕이 대관식에 서면 큰 소리를 내며 예언을 했다고 한다. 이밖에 영국에는 스톤 핸지 등 돌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있다.


리어 팔, source: Wikimedia commons by James Allan


정당한 왕에 대한 기대와 부실한 왕권을 확립하여 귀족 등에게 충성을 바치게 하는 장치로서 이야기가 깃든 돌을 사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진정한 왕이 나오면 하늘에서 용이 나타난다 거나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는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이런 괴력난신(怪力亂神)도 왕권을 강화하는 장치 중의 하나이다.


부산 태종대의 망부석, 출처: 부산시 홈페이지


돌은 인류문명이 생기면서부터 전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다양한 신앙의 표상이 되어 왔다. 자식을 기원하는 바위에서부터 떠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망부석, 고난에서 구해 줄 미륵바위 같이 인간은 자기의 마음을 돌에게 투영하여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였다.


몇 만 원이면 살 수 있는 또는 산과 들에서 공짜로 구할 수 있는 돌에 가치를 부여하면 가격을 책정할 수 없는 그리고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엄청난 물건이 된다. 사물은 자체로도 존재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이미지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돌이 ‘운명의 돌’이다.


전영식, 이학박사, 과학커뮤니케이터


 

매거진의 이전글 군위 불로터널 산사태... 안전한 도로의 설계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