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지질학 - 튀르키예 지진
지난 2023년 2월 6일 현지시간 새벽 1시 17분경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남쪽 시리아 접경 지역에서 모멘트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했다. 2월 9일 현재 최소 22,398명이 사망하고 8만 명이상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1년 동일본 지진의 사망자(18,500명) 수를 넘어섰다. 지진의 규모도 컸지만 상대적인 피해가 더 눈길을 끌고 있다.
* 에르도안 대통령 발표, 시리아 정부 및 화이트 헬멧 발표
지진은 언제나 일어나는 자연재해이고 대체적으로 발생이 가능한 지역을 예측 가능하다. 물론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 정확한 위치와 시각을 알 수는 없다. 발생 메커니즘이 알려져 있고 대처할 수 있는 기술적인 방법들이 개발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의 대응은 항상 더디기만 하다.
대체로 지진 기사는 대체로 동일한 패턴을 보인다. 먼저 지진의 발생을 알리고, 그 후의 보도는 피해상황을 싣는다. 피해 규모가 커지면 원인에 대한 심층보도가 나오게 된다. 어느 정도 상황이 파악되면 구조 및 복구작업이 시작되는데, 이쯤 되면 인근 특파원이나 기자가 파견되어 독자적인 보도를 하게 된다. 초보 과학기자가 됐다고 가정하고 지진 기사를 쓸데 고려해야 하는 정보들을 알아보자.
지진의 발생의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곳은 미국지질조사국(USGS, United States Geological Survey)이다. 1879년 설립된 미국지질조사국은 미국의 지질, 지리, 수문, 생물을 연구하는 조직이다. 냉전시에 핵무기 개발경쟁에 따른 감시시스템의 구축에 따라 전 세계의 지진에 대한 시설과 측정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지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지진의 규모, 진앙, 진원에 대한 정보가 제공된다.
거의 모든 외신은 USGS를 인용한다. 우리나라의 지진의 경우, 기상청 지진화산감시센터에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측정된 과학적 지진측정은 북핵개발 감시 등 부수적인 과제와 함께 현재는 국제적인 측정망을 갖추고 있다.
센터 홈페이지에는 진도 2 이상인 지진을 지도에 표시하고 그 이하의 미소지진은 목록으로만 표시하고 있다. 규모, 발생위치와 깊이를 나타내고 인근 지역에서 느끼는 진도의 정도를 보여준다. 현재 전국에 282개의 관측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피해는 지진 초기에는 일부만 알려지는 것이 보통이고 점차 늘어난다. 일반적으로 진앙이 인구밀집 지역에서 얼마나 가까운지, 진원의 깊이가 얼마나 얕은지에 따라 상이하다. 또한 발생 시간이 어느 때인가에 따라서도 인명피해는 달라지는데, 이번 같이 취침시간의 경우는 피해가 크고, 일상생활시간인 경우는 대피가 용이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다. 특히 저녁식사 시간과 지진이 맞물리면 화재로 발생할 가능성이 커져 피해가 늘어난다. 보통 상수도 시설도 함께 파괴되기 때문에 진화가 어렵다.
각 지진은 일으키는 피해에서 특징을 보이는데, 2004년 남아시아 지진 때에는 인도양 지역의 쓰나미가 피해의 주범이었고, 2011년 동일본지진은 도시와 인접한 곳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으로 역시 쓰나미가 피해를 키웠다. 2008년 쓰촨성 지진은 산사태가 주요 피해 원인이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처럼 화재가 주요 피해의 원인인 경우도 다수 있다. 이번 지진은 건물붕괴에 따른 피해가 컸다.
피해보도는 주로 현지 정부의 발표와 국제기구의 발표를 인용한다. 이번 지진의 경우, 터키의 경우는 비교적 피해상황이 시시각각으로 체계적으로 발표되고 있으나 내전 중인 시리아의 피해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정부 측의 발표와 반군 측 구호단체인 ‘화이트 헬멧’의 발표를 종합하여야 하며, 교전 중이기 때문에 국제기구의 접근이 어렵다. 피해규모에 대한 공식 발표는 미국 지질조사국, 튀르키예 재난관리국(AFAD),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진 보도에 약방의 감초처럼 나오는 것이 불의 고리, 환태평양조산대 그리고 판구조론이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면 지구의 지각은 10여 개의 크고 작은 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의 상대적인 움직임에 따라 지표의 모습, 지진, 화산이 발생한다. 가장 활발한 지진이나 화산은 태평양판의 주변에서 커다란 링처럼 발생하는데 이를 속칭하여 불의 고리하고 한다.
이번 지진은 태평양 근처는 아니지만 판의 경계에서 일어난 전형적인 판구조 지진이다. 튀르키예 지역은 유라시아판과 아프리카판 그리고 아라비아 판이 만나는 지역이다. 판의 이동 방향이 서로 다른 판과 판의 경계에서 응력(힘)이 쌓이게 되는데 이게 한계를 넘으면 지진이 일어난다. 아나톨리아 산맥은 판의 충돌에 의해 만들어진 산맥이다.
이번 가지안테프 지진은 동아나톨리안 단층이 주향이동을 하면서 발생한 지진으로 알려졌다. 주향이동단층은 땅덩어리의 이동방향과 단층의 경계면인 주향이 같은 방향일 때를 의미한다. 지진에 따른 수직적인 이동보다 수평적인 이동이 주요한 지진이다.
주된 지진이 발생한 후에 땅덩어리가 안정되는 과정에 여진이 발생한다. 정해진 기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달에서 1년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여진이 잠잠해지면 사회기간망에 대한 복구가 이루어지게 된다. 우선 도로망의 정비가 일차적으로 이루어지고 통신, 수도, 전기, 가스 등의 설비가 순차적으로 복구된다.
지진이 지나가면 항상 논의되는 부분이 발생이 분명한 지진에 대한 부실한 대응이다. 이번 지진의 경우도 튀르키예 정부가 1999년 이즈미타 지진 후 지진에 대비한 건축법을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붕괴의 피해가 큰 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번 지진 피해 사진을 보면 건물의 층 사이 부실한 기둥이 내려앉으면서 거주하던 사람들의 피해가 컸다. 학자들은 ‘지진이 아니라 건물이 사람을 죽이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진 피해는 법률의 부재가 원인이 아니라 법률을 지키지 않는 정부와 건설업자의 잘못인 점이 매번 이야기된다.
또한 지진세를 부담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불분명한 사용처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튀르키예는 지난 1999년 이후 지진 피해 예방과 대응을 위해 지금까지 약 880억 리라(약 5조 9,000억 원)에 달하는 ‘특별통신세(Special communication tax, 일명 ‘지진세’)를 걷어왔다. 하지만 20년째 장기 집권하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 측은 한 번도 제대로 된 사용처를 설명한 적이 없다고 한다. 5월 14일 대선 과정에서 주요 이슈가 될 가능성이 있다.
초동대처의 실패와 이재민 발생에 따른 후속조치 미흡 등은 항상 비난받는 부분이다. 사고 발생 12시간이 지나도 구조대가 오지 않아 골든 타임이 72시간인 지진현장에서 많은 인명을 구조해내지 못하는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건물붕괴의 경우 중장비가 없으면 구조가 어렵다는 점이 큰 문제이다.
2011년이래 내전이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에서 이번 지진으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여 다시 2015년 국제난민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고 있다. 시리아는 다양한 인종과 정파가 엮인 데다가 주변국의 개입으로 아무도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전체인구 2300만 명의 반이 난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시리아가 자체적으로 피해복구가 어려운 점도 피해를 키우고 있다.
지진의 안전지대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적절한 건축방법과 사회안전 시스템의 구축과 실행은 그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반복되는 지진에 반복적인 피해가 나는 것은 인간의 나태함을 드러내 주는 것일 뿐이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도 대비책을 잘 점검하고 만들어진 법이 잘 지켜지는지 확인해야 하겠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낮 미약한 존재이다. 영화처럼 지진을 제어하고 통제할 수 없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조속한 구조와 피해복구를 바란다. 고통에 시달리는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민들이 빨리 슬픔을 극복하길 기원한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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