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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Oct 08. 2022

서울의 반짝이는 건축물

탄허대종사기념박물관

사실 답사가 별 건가. 가방 메고 집 나서면 그뿐이다. 공부도 참고도서도 없이 마음이 끄는 대로 발걸음이 닫는 데로 가면 된다. 아들을 꾀어서 아침 길을 재촉한다.


항상 수서 SRT 역을 다녀오다 보면 탄허박물관 안내판을 지나갔는데, 박물관에 필은 꽂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름에 그저 그런 사설 박물관인가 하고 지나치곤 했다. 하지만 그동안 머릿속 어딘가에서 발효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료를 들썩이다가 결국 탄허박물관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이것이 인연인가 싶어 다녀왔다.


  탄허(呑虛, 1913~1982) 대종사(비구 법계 1급, 천주교의 추기경 품계)는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21세까지 사서, 삼경, 노장을 마치고 22세에 상원사에서 구족계(사 미계를 받고 3년이 지나야 하고 70세 미만이어야 한다)를 받았다. 여러 권의 불교 경전을 역해하고 출간하였다. 저술의 양을 보니 용맹 정진하셨던 학승이신 듯하다. 오대산 월정사 주지를 역임하셨고 중창하였다. 오대산 상원사에 부도와 비가 있다. 탄허는 허공을 삼키다는 뜻이다.


2010년에 개관한 탄허기념박물관은 대종사의 학덕을 기리고 유품, 도서, 역서 등을 전시하고 있다. 유품 중에 수상쩍지만 유성도 있다. 건물은 정체가 조금 모호하다. 절이기도 하고 강원이기도 하고 박물관이기도 하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외벽 전체에 쓰인 글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 한다. 하늘이 비친 외벽에 잘 어우러져 보인다.



건물의 진입구는 살짝 나무 지붕이 있고 한쪽으로는 108개의 녹슨 철제 기둥으로 되어 있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도 없고 탑도 없는 이 절에서 절집 분위기를 내려고 나름 공을 들인 모습이다. 벽면은 상부에는 거칠게 홈을 판 화강암 판석을, 하부에는 마천석 판석을 깔아 시각적 안정감을 주었다. 들어가는 길은 주변이 습한지 이끼가 살짝 깔려 있어 산속 분위기가 살며시 풍긴다.  


2층에는 담마홀 또는 보광명전이라는 큰 강당이 있다. 입구 천장이 좀 낮은 듯한데 들어서면 넓은 공간이 나오고 또 돌아서면 예상외의 모습이 기다리고 있다.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박스에 부처님이 한 분 계신다. 뻥 뚫린 문은 개패식으로 열고 닫힌다. 강당에서 바깥을 보면 금강경이 보여 속세로 나가는 마음을 막아선다. 원래 강당에서 안쪽을 보면 물을 가둔 반사 호수(맞다. 안도 다다오식의 그것을 생각하면 된다)가 보이는데 오늘은 물이 빠져 있어 아쉬웠다. 

3층은 붓다홀 또는 방산굴이라도 하는 법당이다. 심플한 법당에 석가모니불이 홀로 모셔져 있다. 탱화도 없고 시립 보살도 없다. 특징적인 것은 닷집의 해석이다. 하늘을 볼 수 있는 통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은 예상치 못한 감동을 준다. 보통 불상에 비추는 조명은 대웅전 앞 마사토 마당에서 반사된 빛인데 이렇게 직상부에서 내려오는 빛을 통해 보는 부처님은 그래도 편안해 보인다. 좌우의 창은 개패식 차광 시설로 완전히 닫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찬란한 빛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어둠이 준비되어야 하는 모양이다. 방산굴이라는 이름은 단허대종사가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적멸의 든 월정사 방산굴에서 따왔다. 아쉬운 점은 2층에서 올라오는 계단의 위치인데, 올라오면서 방산굴이 그대로 보여서 방에 들어섰을 때의 감동이 덜해지는 느낌이다. 시선을 조정하는 월이나 병풍 등이 있으면 좋겠다. 방산굴 반대편에는 유품을 전시하는 일소대가 있다. 



이 건물은 2010년도에 각종 건축상을 휩쓸면서 유명해졌던 모양이다.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 서울특별시 건축상 최우수상, 한국 건축가협회상, 한국건축가협회 특별상, 제1회 김종성 건축상을 받았고 강남구 아름다운 건축물에 선정됐다. 건축을 맡은 이성관 건축가는 2022년 건축의 날에 정부 최고 포상을 받았다. 꽤 유명스러운 건물인가 보다. 


수서역 6번 출구에서 1km 거리에 도보로 17분 정도 걸린다. 실내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옛 절집 다니듯 계단을 이용하는 게 좋다. 1층에는 10대 정도 세울 수 있는 무료 주차장이 있다. 실내는 슬리퍼로 갈아 신고 들어가야 된다. 


박물관이라고 하긴 전시물이 적고 절이라고 하긴 종교색채가 적다. 오히려 강당이 면적으로는 가장 크다. 아름다운 건축물이란 건물이 담은 의미를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건축이란 언제나 건축주 최대의 시기에 지어지기 나름이다. 건축주는 학승 탄허대종사를 이렇게 해석해 주길 원했나 보다. 느낌은 언제나 보는 이 각자의 몫이다.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작가,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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