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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Nov 25. 2022

지질학으로 본 이집트 건축유적

퇴적암의 유산

불모의 사막인 이집트의 젖줄은 나일강(the Nile)이다. 풍부한 동식물의 서식처일 뿐 아니라 주기적인 범람은 비옥한 범람원(flood plan)을 만들어 문명의 발달에 기반이 되는 높은 농업생산성을 이룩했다.

지금의 나일강은 사막을 가로질러 가지만 오래전에 나일강 지역은 지질학적으로 다양한 지질학적인 환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러한 환경은 이집트의 건축역사를 좌우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나일강의 상류 도시인 룩소르(Luxor)는 현재는 인구 20만여 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전성기 때에는 100만이 넘는 인구가 있던 유서 깊은 도시이다.  룩소르는 나일강을 사이에 두고 동안(East Bank)과 서안(West Bank)으로 나뉜다. 동안에는 룩소르 신전(Temple at Luxor), 카르낙 신전(Temple of Karnak)이 위치하고 서안에는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 등 왕들의 무덤이 있다. 


룩소르 신전, Wikimedia commons by Ad Meskens


룩소르 신전은 기원전 1408년 신왕국 제18왕조 아멘호텝 3세(Amenhotep Ⅲ) 때 지어진 것이다. 테베의 삼위신 – 아문, 아문의 아내 무트, 그리고 그들의 아들 콘수 –에게 헌정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룩소르 신전은 카르낙 신전의 부속 신전이다.


신전 앞은 화강암(Granite)으로 만들어진 람세스 2세(Ramesses II)의 동상 이 양쪽에 두 개씩과 오벨리스크로 구성되는데 원래 쌍으로 존재하던 오벨리스크는 현재 왼쪽 것 하나만 남고 나머지 오른쪽 것은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 서 있다. 이 오벨리스크는 아스완(Aswan)의 붉은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룩소르에서 남쪽으로 230km 떨어진 아스완 채석장엔 미완성된 오벨리스크가 남아 있다(하단 사진). 반면 람세스 2세의 좌상은 검은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화강암의 색은 밝은 색의 장석(feldspar)과 검은색의 각섬석(amphibole)이 좌우한다. 


미완성 오벨리스크, Wikimedia commons by Glenn Ashton


입구를 지나면 사원의 내부로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부터의 모든 건축물은 퇴적암(Sedimentary Rocks)인 사암(sandstone)으로 만들어져 있다. 사암은 암석 내부에 균열이 적어 건축물 재료로 적당하고 화강암에 비해 강도가 작고 입자가 고르므로 세밀한 조각을 하기에 좋아 사원의 건축재료로 이용되었다. 또한 이는 룩소르 근처가 예전에 사암의 퇴적지여서 다량의 좋은 사암을 공급받기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룩소르 신전 내부, Wikimedia commons by Marc Ryckaert


열주(colonnade)식 안뜰을 통해 들어가면 다시 100미터에 달하는 열네 개의 열주가 늘어선 주랑(parvis)으로 이어진다. 기둥은 높이가 23미터, 둘레가 10미터를 넘는다.  이 기둥은 사암의 층리면(Bedding Plane)을 그대로 떠서 원통형의 조각으로 만들고 이를 상하로 쌓아 올린 것이다. 퇴적암은 위에서 누르는 압력으로 암석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위에서 누르는 힘에 매우 강하다. 고대 이집트 건축가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열주식 안뜰은 32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둥에는 정교한 조각과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열주의 보관 상태에 비해 지붕은 대부분 허물어져 있다. 역시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퇴적암의 층리면은 기다란 판재의 모양으로 만들기는 쉽지만 자체의 무게에 지탱하는 강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열주에 힘을 전달하는 가장자리 이외에 가운데 부분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당시에도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열주의 간격을 매우 가깝게 만들었는데 지붕 자체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카르낙 신전은 룩소르 신전에서 북쪽으로 3km에 위치하며 중왕국 시대의 제12왕조(BC20세기)에 건축을 시작하여 프톨레미 왕가(BC1세기)까지 1900년간 지어진 아문신에게 바친 신전이다. 남북으로 2km, 동서로 500-600m에 이르고 입구에는 양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양쪽으로 20개씩 세워져 있는 스핑크스의 길이 있다. 원래는 룩소르 신전까지 이어져 있었다고 한다. 


카르낙 신전, Wikimedia commons by Hamerani


신전으로 들어가면 134개의 거대한 기둥이 서있는 대열주실에 다다르게 된다. 열주의 위쪽 끝에는 지붕이 일부 남아 있는데 기둥의 간격으로 보아 왜 이 많은 기둥이 필요했는지 지질학자의 눈으로 보면 당연해 보인다.

카르낙 신전 대열주실, Wikimedia commons by Hedwig Storch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신전을 만든 암석은 카이로 피라미드의 석회암과는 다른 사암이다. 기둥의 구조를 보면 하나의 암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암석 덩어리를 쌓아서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사암은 암석을 파서 조각하기 편하지만 퇴적암 특유의 성격으로 층리면을 세로로 하여 길게 만들 수는 없다. 이는 웨하스(wafer)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웨하스를 평평하게 쌓으면 상당히 무거운 물건도 올려놓을 수 있다. 하지만 세로로 새워 누르면 가운데 부분이 파열되면서 부서지게 된다. 결국 이집트의 건축가들도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사암 원기둥을 동전처럼 쌓아 기중을 만들었고 또 기둥 간의 간격을 좁게 만들었던 것이다. 층층이 쌓은 원기둥은 매우 높이까지 쌓아도 무게를 견디기 때문에 결국 매우 웅장한 기둥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내 이름은 오지만디어스, 왕 중의 왕이로다.

너희 이른바 강자들이여, 나의 위업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


영국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의 시에 나오는 람세스 2세의 좌상 받침대에 새겨졌다는 문구다. 이집트 건축물의 웅장함과 함께 람세스 2세에 대한 위대함도 이집트 고대 역사의 중요한 포인트다. 람세스 2세의 60년이 넘는 재위 기간과 신분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었겠지만, 웅장한 석상으로 나타나는 람세스 2세의 모습을 후세에 전할 수 있었던 것은 테베(Thebes) 지역의 사암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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