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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Aug 07. 2023

박물관이 살아있다(2006)

영화 지질학

밤이면 살아나는 자연사 박물관


2006년에 개봉된 벤 숀 레비 연출, 벤 스틸러(Ben Stiller) 주연의 판타지영화다.  밀란 트렌크의 소설 <Night at The Museum>을 원작으로 했는데 '박물관에서의 밤' 쯤이 되지만 영화는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멋진 제목을 달아 성공했다. 언제나 그렇듯 반어법 제목은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 박물관 하면 느껴지는 딱딱하고 지루한 이미지가 잘 반전된 제목이다. 나무 위키에 따르면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실사 수입코미디 영화 중 흥행에 가장 성공한 영화라고 한다.


뉴욕에 위치한 미국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AMNH)을 배경으로 한 제1편의 흥행에 힘입어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을 배경으로 한 제2편  <박물관이 살아있다: 스미소니언의 전투>(2015),  대영박물관을 배경으로 한 제3편 <박물관이 살아있다: 비밀의 무덤>(2014)까지 개봉했다.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 영화다 보니 눈에 익은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면 거부감 없이 보게 되니 영화흥행에는 더욱 좋다.  출연료만 해결한다면 말이다.  픽사(Pixa)의 <카>(2006)에 주인공 목소리를 맡았던 오원 윌슨와 명배우 로빈 윌리암스가 전편 출연했고 2편에는 <아스테릭스>에서 주연은 맡았던 알랭 샤바가 출연하고, <힐빌리의 노래>, <바이스>에서 출연한 에이미 아담스가 등장한다.  3편에서는 벤 킹슬리, 실사영화 <미녀와 야수>에서 왕자로 나왔던 댄 스티븐스도 얼굴을 내민다.



잘하는 건 허풍밖에 없는 사업가 레리 데일리(벤 스틸러 분)는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빈둥거리다 아들과의 만남마저 빼앗길 상황에 처한다. 가까스로 얻은 일자리는 박물관 야간 경비원. 뭔가 야릇한 분위기를 풍기는 3인조 선배에게 박물관 키를 떠맡은 레리는 밤에 살아난 유물 때문에 혼비 백산하고 하루 만에 때려치우려 한다. 하지만 실망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다잡고 박물관 유물들과 잘해보려고 각오를 단단히 한다.



보통 빌런은 강하고 멋짐이 흘러넘치는데 이 영화에서는 나이 들어 걷지도 못하는 3명의 노인이 빌런으로 등장한다. 무술 연기도 볼만한데 그 비밀은 영화 속에 숨겨져 있다. 띨띨이 주인공이 취직하게 된 이유와 함께 말이다.


유명 자연사박물관과 같이 1층 메인 전시위치에는 티라노사우루스의 화석이 서있다. 한 개체에서 나온 골격은 아니지만 1908년에 발견된 개체를 기반으로 후에 발견된 것을 결합한 화석이다. 미국 전역에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우리가 아는 흉악한 육식공룡이 아닌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물론 과학적인 고증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니 오해하면 안 된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박물관은 역사유물을 다루지만, 영화의 배경이 된 박물관은 자연사박물관이다. 지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오늘날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즉 자연사이다. 따라서 온갖 동물들이 나오고, 여러 문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공룡에서 매머드, 코끼리, 원숭이 그리고 원시인, 로마인, 훈족, 이집트왕족, 서부개척하는 카우보이까지 말이다.


영화의 장소인 미국자연사박물관은 뉴욕 맨해튼 업타운에 센트럴파크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공원 건너편 동쪽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있다.  위키백과를 찾아보면 재미있게도 이 박물관은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배경이었다고 소개되고 있다. 1869년에 설립되었고 미국과 전 세계에서 발견된 3,300만 점의 유물이 45개 상설관에 전시되어 있다.



오래된 영화의  즐거움, 배우의 일생을 보는 것.



테어도르 루스벨트 대통령 역에는 고(故) 로빈 월리엄스가 3편까지 모두 출연했다.  <굿모닝 베트남>(1987), <죽은 시인의 사회>(1989), <미세스 다웃파이어>(1993), <쥬만지>(1995), <굿 윌 헌팅>(1997), <바이센테니얼 맨>(1999)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하지만 그는 2014년 8월 11일 사망하면서 <박물관이 살아있다 3>이 그의 유작이 되어버렸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로빈 윌리엄스는 공군사병, 의사이자, 지니였고, 보모, 대통령, 교수, 소란스러운 피터팬이었으며, 그 밖에 맡아본 모든 배역들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였습니다. 그는 우리의 삶에 이방인으로서 찾아왔으나 인간 정신의 모든 면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우리를 웃게 했습니다. 우리를 울게 했습니다."라 안타까워했다.


한편 <보헤미안 랩소디>(2018)에서 프레디 머큐리 역을 맡은 라미 말렉(Rami Malek)이 3편 내내 파라오로 등장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인 에이미 아담스(Amy Adams)가 2편에서 아멜리아 이어하트 역으로 나온다.  2017년 개봉한 <컨텍트>(원제는 Arrival)에서 언어학자 주인공 루이스로 출연했는데 말없는 연기가 눈부신 작품이었다.


미국자연사박물관


영화의 후반부에 보면 빌런과의 추격신이 나온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현금수송마차와 경주마가 눈 덮인 센트럴파트에서 추격을 벌인다. 미국자연사박물관이 센트럴파크와 마주하고 있어 딱 맞는 설정이다. 이 길은 많은 영화에서 부분 부분 나와 한 번도 안 가본 사람도 낯익은 공원이다. 박물관의 위치가 너무 좋은 자리라 미국인이 이 박물관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 장면


영화에서는 박물관 입구에 미국 26대 대통령인 시어도르 루스벨트(1858~1919)가 아프리카계 원주민과 아메리카 원주민을 거느린 동상이 나오는데, 2022년 1월 20일에 철거됐다(아래 사진의 트럭 뒤 위치였음). 인종적 위계질서를 묘사하고 있다는 비난 끝에 노스다코타주의 도서관으로 이전됐다. 루스벨트는 영화 속에서는 인디언 여인을 사랑하는 설정으로 나와서 이미지가 부드러웠는데, 1940년에 건립된 이 청동상의 이미지는 새로운 역사관, 시대관과 거리가 있다는 평가였다고 한다.  


미국자연사박물관, 출처: 구글지도





자연사박물관 하나 없는 선진국


자연사박물관이란 광물, 동물, 식물뿐만 아니라 생태계, 지질학, 고생물학, 기후학 등을 아우르는 전시물을 갖은 박물관을 말한다.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많은 모험가와 탐험가가 세계를 누비면서 많은 표본들이 수집되었는데 이 유물이 박물관의 전시물이 되었다.  


미국 자연사 박물관(NY) 외에 세계적인 자연사박물관으로는 최초의 자연사박물관인 파리 국립 자연사박물관(1793), 미국 스미소니안 박물관(DC)(1846), 영국 국립 자연사박물관(1881)을 꼽는다. 스미소니안 박물관은 개별전시실로 포유류, 해양, 인류의 기원, 보석광물지질학, 화석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주변에는 내셔널 갤러리, 예술산업관, 프리어 미술관, 미술초상관, 렌위크 갤러리 등이 함께 위치해 있다. 영국 국립 자연사박물관은 1881년에 대영박물관에서 분리되어 개관됐다. 생물학자 다윈의 진화론을 중점 설명하는 다윈센터가 부설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생활수준이 상승하면 자연스럽게 자연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다. 먹고사는데 걱정이 없어지니 존재론적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고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생각이다. 눈으로 보고 사색하는데 필수적인 시설이 자연사박물관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국격에 맞는 제대로 된 자연사박물관은 없다. 대략 볼만한 곳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서대문박물관(구립), 태백 고생대자연사박물관이 그나마  내용이 있고 나머지는 영세한 대학박물관, 사설박물관이 고작이다. 국립과학관에는 자연사 외에도 기술과학 분야까지 종합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출처:홈페이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출처:홈페이지


원래 과학의 시작은 박물학에서 시작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 신기한 광물, 화석, 표본 등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것에서 과학이 시작된 것이다. 과학자의 당초 이름은 박물학자였다. 이 과정을 통해 체계적으로 학문이 발달하여 박물학자가 과학자가 되어 간 것이다. 따라서 과학이 발흥하는 단계에서 일어난 과정이기 때문에 사실 우리 과학계에는 없는 과정이다. 즉 우리는 자연사에서부터 시작된 과학의 흐름은 모르고 갑작스럽게 과학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제라도 체계적인 과학의 이해, 지구의 이해를 위해 국격에 맞는 자연사박물관이 만들어져야 한다. 넓게 보면 요즘 유행하는 초전도체도 자연사의 한 분야인 것이다. 박물관은 관련 학문분야가 많을 수밖에 없지만 자연사박물관은 더욱 다양하다. 생물학, 지질학, 인류학 등 거의 모든 자연과학의 조합체이다. 필요한 유물의 양도 많고 가격도 점점 올라가는 추세이다.


사실 자연사박물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1990년대부터 이야기되었고, 세종시에 박물관단지를 만드는 과정에 자연사박물관을 설립한다는 뉴스는 하도 오래전부터 나와 이젠 자연사에 들어갈 내용이 된 것 같다. 자연사박물관이 다리나 고속도로 같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여야 한다는 생각도 난센스다. 같은 잣대를 국립중앙박물관에 적용하여 보면 어떤 수치가 나올까? 우리도 이젠 국격에 맞는 별도 조직과 예산을 갖춘 자연사박물관이 필요한 시점이 한참 지났다. 그래야 또 밤에 전시물들이 살아나는지 확인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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