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영식 Aug 15. 2023

오펜하이머(2023), 종말을 열다

영화지질학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12번째 작품


놀란 감독의 12번째 장편 영화인 <오펜하이머>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전의 장르영화에서 벗어나 전기영화라는 새로운 포맷의 영화라 과연 어떤 작품이 나올지 궁금하다.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의 2005년 퓰리쳐상 수상작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을 원작으로 한만큼 과학이야기보다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진행과 원자탄의 개발 성공, 그 후 사태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될 것이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의 심리적인 갈등을 다루는 배우들의 연기력에 관람의 주안점이 있을 것 같다.


영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를 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영국에서 자라며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메멘토>,  <다크 나이트>, <인셉션>, <맨 오브 스틸>, <인터스텔라>, <테넷> 등으로 수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잘 나가는 감독이다. 생동감 있는 화면을 위해 CG를 지향하고 실사 촬영을 고집하는 연출이 많다. <인터스텔라>에서 옥수수 밭을 사서 1년간 기르고 불을 질렀고 <테넷>에서는 실재 보잉 747 비행기를 구입하여 충돌시켰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실재 원자폭탄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는데 다행히 현명하게 일반폭탄으로 대신 찍었다고 한다. 전기 영화는 결론이 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스포일러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놀란 감독은 편집에 공을 들였고, 영화에서는 컬러 장면과 흑백 장면을 대비시키는데, 컬러 장면은 오펜하이머의 주관적인 시각이고 흑백 장면을 주로 안타고니스트인 루이스 스트로스의 입장인 역사적인 객관적인 시각이라고 한다.


오펜하이머의 전기영화


맨해튼 계획(Manhattan Project, 1942~1946)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승리를 위해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과 캐나다가 공동으로 참여한 극비 예산 무제한의 핵폭탄 개발 프로그램이다.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FDR) 대통령(26대 시어도로 루스벨트 대통령의 12촌이다)이 승인했으나, 개발기간 중 서거하고 당시 부통령이던 해리 S. 트루먼이 잔여임기를 이어받았는데 그때서야 이런 프로젝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편지에 의해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 1904~1967)는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과학 연구 부분을 책임지는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소장으로 참여하였다. 군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중령 계급을 받았다.



오펜하이머는 독일 출신 유태계 미국인이었고 어머니는 동유럽에서 건너온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이지만 보수적이지 않은 집안 분위기로 부유한 가정에서 다복하게 성장했다. 쌍둥이 동생이 있는데 6분 먼저 태어나 형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수학과 지질학에 흥미가 있었으며 1922년 하버드에 들어가 화학 전공을 마치고 3년 만인 1924년에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유학을 간다. 그는 당시 가장 첨단 연구소인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 운 좋게 양자역학의 본산이던 독일 괴팅겐 대학으로 옮기게 되고 9개월 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금의환향 후 UC 버클리 대학에 물리학과 교수로 임용된다.


맨허트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 분)는 젊고 경력이 없었음에도 동료들의 추천으로 연구책임자의 자리에 오른다. 이때부터 오펜하이머는 카리스마를 발휘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인생의 최정점을 찍게 되는데 또 이 때문에 몰락의 길에 들어선다. 전체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레슬리 그로브스 준장(맷 데이먼 분)은 오펜하이머의 요청을 전적으로 수용하며 그를 밀어줬고 프로젝트는 성공하게 된다. 이후 원자력 산업에 대한 헤게모니를 잡는 과정에서 원자력 위원회 위원장이던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와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결국 오펜하이머는 그 여파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로버트 오펜하이머, 1950, Source: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우라늄 광물


원자폭탄은 우라늄이 분해될 때 나오는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무기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직전 이러한 에너지에 대해 과학자들이 알게 되었다. 영특한 물리학자들은 생각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막대한 폭발력을 지닌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폭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원리를 알았으니 이제 만들어볼 일이다. 


원자번호 92인 우라늄은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원소 중 가장 무거운 원소다. 우라늄은 자연계에서 3가지 동위원소(원자번호는 같고 무게만 다른 원소)로 나타나는데 U-238(99.2742%), U-235(0.7204%) 그리고 U-234(0.0054%)이다. 이 중 U-235만이 원자력 발전소의 연료와 핵폭탄에 이용할 수 있다. 경수로에 쓰이는 U-235의 농도는 3~5% 정도이고 폭탄에는 95% 이상 농축되어야 한다. 원자량의 차이가 적고 존재비가 적어 U-235를 경제적이고 빨리 농축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원자폭탄 개발의 관건이 된다.

 

섬우라늄석, source: wikimedia commons by Weirdmeister


우라늄은 주로 섬우라늄석(uranite, (U, Th)O2)과 역청우라늄석(pitchblende, UO2)에서 얻는다. 섬우라늄광에 들어있는 천연 우라늄 산화물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노란색 도자기 유약과 채색 유리를 만드는 첨가물로 사용됐다. 그래서 우라늄 농축물을 옐로케이크(Yellow cake)라고 부르는 단어가 나왔다.


요하임스탈의 역청우라늄석, source: wikimedia commons by Farhan


역청우라늄석의 발견


1789년 독일의 과학자 클라프로트(M.H Klaproth, 1743~1817)는 최초로 역청우라늄석에서 우라늄을 발견했다. 당시에는 아연,역청우라늄석은 철, 텅스텐이 섞인 광물로 알려져 있었다. 클라프로트는 역청우라늄석을 질산에 녹인 뒤 수산화나트륨으로 중화시켜 노란색 침전물을 얻었다. 그는 이 침전물이 새로운 원소의 산화물이라고 생각했고, 이 침전물을 숯과 함께 태워 검은 가루로 만들었다. 클라프로트는 이것을 새로운 금속이라고 생각하고 당시로부터 8년 전 새롭게 발견된 행성인 천왕성(Uranus)의 이름을 따서 우라늄이라고 이름 붙였다.


주요 우라늄 공급 광산


맨해튼 계획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우라늄은 1940년 당시에 네 곳의 매장지가 알려져 있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요하임스탈(Joachimsthal, 퀴리부인이 라듐을 발견한 광석의 산지), 벨기에령 콩고의 신코로베 광산(Shinkolobwe mine), 콜로라도 주 그리고 캐나다 온타리오 엘도라도 광산이었다. 1942년 11월 요하임스탈은 독일 측에 점령당했고 우라늄의 유통이 정지되었다. 아직 북미에는 이렀다할 우라늄 광산이 없던 미국은 신코로베 광산에 산화우라늄 1200 미국톤을 주문하여 스테이턴(Staten) 섬의 창고에 보관하였고, 품위는 떨어지지만 만일을 위해 온타리오주의 엘도라도 광산(포트 호프 광산, 베어 레이크 광산이라고도 함)에 1000 미국톤을 주문하였다. (미국톤: 2000파운드, 907kg)


콩고 신코로베 광산


미국이 우라늄 광석을 주문한 벨기에령 콩고의 신코로베 광산(현재 콩고민주공화국(DRC) 남부 카탕카 주 소재)에는 광석이 풍부하게 존재하였으나 현재는 광산은 운영되지 않고 있었다(1960년 폐광).  우라늄, 코발트, 니켈, 철 및 구리가 6억 5천6백만 년 전에 형성되었고 , 6억 2백만 년에 우라늄, 코발트, 구리가 침전되는 두 번째 광화작용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당시 확인된 전 세계 우라늄 매장량의 절반을 차지했다고 한다. 광석의 품위가 뛰어나 65%의 우라늄이 보고되었고 폐석에서조차 20%의 품위를 보였다. 당시 미국과 캐나다의 광석은 0.03%의 품위만을 보였을 뿐이다.


신코로베 광산, source: wikimedia commons by Chalux, public domain


보도에 따르면 신코로베에서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폭탄에 사용된 거의 3분의 2의 우라늄이 공급되었고 나가사키에 투하된 폭탄의 대부분에 사용된 우라늄이 공급되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일부 우라늄이 이란과 이스라엘로 흘러들어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냉전 시대에 우라늄 확보의 각축장이었던 것이다.


소련과 일본의 원자폭탄 생산을 염려한 연합군 측의 통제로 운영과 위치가 비밀에 부쳐지기도 했다. 정제기술의 발달로 미국 남서부에 광산이 개발되는 등 다른 공급원이 등장하게 되었지만 미국은 소련의 접근을 막기 위해 1960년 광산을 폐쇄했다. 이후 미국은 광산을 보호하기 위해 독재자 모부투 세세코의 정권을 지원하기도 했다.


가장 돈 많이 드는 일, 농축작업


맨해튼 프로젝트는 뉴욕 맨해튼과 상관없이 영국, 캐나다 및 미국의 30여 개 시설에서 운영됐다.  군사기지도 있고 대학의 연구소도 있고 광산도 포함되어 있다.  주요 시설로는 오크리지 기지(우라늄 농축), 리치랜드 핸포드 기지(핵연료 재처리), 로스 앨러모스(핵무기 살계 및 연구), 버클리 대학(이론연구), 찰크 리버 연구소(캐나다), 엘도라도 광산(Port Radium) 등이 있다. 


맨해튼 계획이 한창이던 1944년 6월 고용된 연인원은 약 129,000 명이었다. 84,500 명은 건설 노동자였고, 40,500 명은 설비의 운영, 1,800 명은 군사 인력이었다. 설비 건설이 끝난 1년 뒤 총인력은 100,000 명이 되었으나, 이 가운데 군사 인력은 5,600명으로 늘었다. 전시였기 때문에 숙련 노동자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1943년 그로브스는 전시 인력 위원회로부터 특별히 노동자를 할당받았고, 1944년 3월 전시 생산 위원회와 전시 인력 위원회는 맨해튼 계획을 인력 공급 우선순위로 배정하였다.


북미에 있던 맨해튼 계획의 주요 연구, 개발 장소, Source: wikimedia commons by Fallschirmjäger • CC BY-SA 3.0


소요된 총비용은 약 20억 달러였는데, 2023년 기준으로 따지면 330억 달러로, 한화 40조 원에 해당하는 막대한 자금이다. 참고로 2021년 우리나라의 국방비 예산은 500억 달러 정도였다. 아래의 표는 1945년 12월 31일 자로 결산한 맨해튼 계획의 비용이다. 가장 큰 비용은 오크리치 기지를 운용하는데 소요된 비용으로 대략 63%의 예산이 사용되었다.



우라늄 광석은 세인트루이스에 위치한 멀린크로트 인코퍼레이티드 사(Mallinckrodt Incorporated)에서 정련되었다. 정련 방법으로는 질산을 이용하여 질산우라늄을 생성하는 방법과 삼산화우라늄에 열을 가하여 이산화우라늄으로 변환하는 액체 치환 추출법 등이 쓰였다. 1942년 7월,  매일 1톤가량의 정제 우라늄을 생산하였다. 그러나, 우라늄을 농축하기 위해서는 순수 우라늄 금속이 필요하기 때문에 멀린크로트의 생산물을 재처리하여야 했다. 처음에는 웨스팅하우스가 수산화 공정을 통해 재처리 작업을 하였으나, 처리 속도가 너무 느렸다. 1943년, 프랭크 스패딩(Frank Spedding)이 책임자를 맡고 있던 아이오와 주립 대학 재료공학 연구소는 에임스 공정(Ames process)을 개발하여 우라늄 정제 속도를 좀 더 높일 수 있었다.


테네시주 오크리지


오크리지의 생산 및 연구시설, source: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이미 언급했듯이 자연 상태의 우라늄(U)에는  99.3%의 U-238과 0.7%의 U-235'가 존재한다. 이 두 동위 원소는 원자량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분리할 수 없다. 때문에 이 둘을 분리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 다양한 방법이 고안되었다. 핵분열을 위해서는 임계질량 이상의 고순도 우라늄이 필요했고 적국보다 먼저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시간과의 싸움이었고 비용은 다음 문제였다. 대부분의 분리 작업은 오크리지에서 진행되었고 맨해튼 프로젝트의 반 이상의 자금이 투입됐다.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은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가 된 직후 테네시주 오크리지(oak ridge)로 가서 공장 건설 후보지를 검토하였고, 1942년 9월 29일, 전시 국무 차관이자 미육군 공병사령부의 지휘권을 갖고 있었던 로버트 페터슨은 3백50만 달러를 들여 23,000 헥타르의 부지를 마련하는 입안을 승인하였다. 실제 공장은 12,000 헥타르가 더 추가되었다.


강제이주와 비밀 작업


1942년 10월 7일 갑자기 아무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오크리지 지역의 1천여 세대에 빨리 이주하라는 명령이 발표되었다. 지역 주민들은 ‘정부가 전쟁 수행을 위해 여러분들의 재산을 취하게 될 것이다’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주민들은 명령에 항의하였으나 1943년 의회는 해당 지역 사용을 의결하였다. 11월 중순 미국 연방보안관은 용역을 고용하여 농장을 폐쇄하고 지역민을 추방하였다. 일부 세대에는 2주 안에 이주하라는 통보가 전달되기도 하였다.  


1945년 3월까지 토지보상금으로 260만 달러가 지급되었으며, 이것은 1 에이커 당 47 달러였다. 당시 시세의 반에 해당됐다고 한다. 오크리지의 모든 지역에서 군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한 세대는 거주할 수 없다는 공공 명령 2호가 공표되자, 테네시 주지사 프렌티스 쿠퍼는 이를 맹렬히 비난하였다. 주지사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는 이야기다. 


4개의 주요 농축 시설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은 블랙 오크리지 능선을 따라 59,000 에이커의 땅을 지정해 약 30,000명의 공장 노동자들이 거주할 새로운 도시와 네 개의 주요 시설을 짓도록 했다.


우라늄 동위 원소의 분리에는 당시 기술력으로는 원심분리 기술이 효과가 없기 때문에, 맨해튼 계획에서는 전자기적 분리 기술과 가스 확산 분리 기술, 그리고 열 확산 분리 기술 등이 검토되었고 이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U-253 동위 원소를 분리할 수 있었다. 1943년 2월, 그로브스는 농축률을 높이기 위해 한 설비에서 작업한 결과물을 다른 설비에서 재처리하는 방안을 채택하였다.

오크리지 K-25 플랜트, source: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네 개의 주요 시설 중 첫 번째는 액상 열확산(liquid thermal diffusion) 처리 과정을 통해 부분적으로 우라늄을 농축하는 S-50 플랜트였다. 두 번째는 K-25라고 알려진 시설로 S-50으로부터 우라늄을 받아서 가장 유명한 기체 확산법(gaseous diffusion)을 통해 농축을 더 강화하는 일을 하였다. 이후 K-27이 승인되었으나 준공 전에 전쟁이 끝났다. 


그러고 세 번째 전자기 방식의 입자가속기 Y-12 플랜트가 이 생산물의 농축 과정을 최종적으로 더 농축하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크리지 국립연구소’가 농축이 완료된 플루토늄을 받아서, 상시적으로 운영되는 사상 최초의 핵 원자로인 X-10 흑연 원자로에 활용하였다.


우라늄 농축의 첫 단계인 S-50 플랜트는 생산물에 함유된 U-235는 0.71~0.89% 정도였다. 이것을 기체확산 분리공정인 K-25 플랜트에 다시 공급하여 농축률을 23%까지 끌어올린 다음, 다시 전자기 분리공정인 Y-12 설비에 투입하여 최종 생산물을 만들어 내었다. 최종적으로 농축된 U-235의 농축율은 89% 정도였다.


1942년과 1943년 사이 건설된 이들 네 개의 시설들은 보안을 강화하고 사고의 경우를 대비해서 도시에서 떨어진 계곡에 위치했다. 전 지역은 처음에는 ‘사이트-X(Site X)’라고 불리다가 이후 ‘클린턴 엔지니어링 웍스(Clinton Engineering Works)’라고 불렸다. 예전에 킹스턴 폭탄 사격장이었던 곳이 바뀐 것이다. 


클린턴 엔지니어링 웍스, source: Wikimedia commons


인근의 스키드모어 지역에 13,000 명이 거주할 수 있는 주거지역이 세워졌다. 근처에 블랙오크리지 산이 있었기 때문에 새롭게 생긴 마을의 이름을 오크리지라고 정했다. 오크리지의 인구는 1945년 5월 75,000명에 달했다. 당시 클린턴 공장의 고용인구는 82,000명이었다. 오크리지의 근로자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은 1945년 8월 6일까지 해야만 했다. 출입은 통제되고 모든 말과 편지는 감시되었다. 보안이 최고의 덕목으로 자리 잡았고 누구도 감히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볼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은 정치권과 군부가 비밀리에 진행한 일이다. 과학자들은 이론적인 배경과 설비의 설계 등을 담당했다. 현재 부지에는 미국 국립 연구소 중 가장 큰 규모의 오크리지 국립연구소(ORNL)가 위치하고 있다.




20세기 초반에 우라늄은 몇몇 나라에서만 채굴되는 희소한 자원이었다. 따라서 가난한 나라가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강대국의 간섭을 의미했고 정권은 이를 이용하고자 했으며 국민에게는 저주였다. 하지만 그 후 조사결과 우라늄은 여러 나라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우라늄의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전 세계 매장량의 31%를 차지하는 호주다. 그다음으로 카자흐스탄이 12%, 캐나다 9%, 러시아 9%, 남아프리카공화국 6%, 나미비아 5%, 브라질 5% 순이다.


현재 발전용 농축 우라늄 시설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만이 가지고 있고 이란과 북한에서는 핵무기를 이용한 불법시설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농축 우라늄시장은 러시아가 40%, 영국, 프랑스가 각각 27%, 14%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은 10% 내외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러시아와 중국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미원자력협정으로 자체 농축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어려운 기술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 못 만드는 것도 아니다. 북한이 이미 대놓고 핵무기를 개발하는 상황에서 또 원자력산업의 육성과 우주탐사기술의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대목이다.




영화에서 알렉스 울프가 연기한 루이스 월터 앨버레즈가 눈에 띈다. 시카고대를 졸업한 그는 MIT의 방사선 연구소에 몸담고 있었다. 여러 레이더를 연구하여 항공분야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항공기 피아식별장치(IFF),  잠수함 탐지를 위한 빅센(VIXEN) 시스템, 항공기 안전 착륙시스템인 지상 통제 접근(GCA) 방식의 그의 작품이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투하 시 폭격기에 탑승하여 현장에서 폭발력을 측정하기도 했다. 그는 1968년 수소거품상자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아들인 월터 앨버레즈와 함께 공룡의 멸종 원인인 K-T 대멸종의 원인인 운석의 충돌을 밝혀내는데 공헌하게 된다.


앨버레즈는 공룡의 멸망 원인을 찾았지만, 그가 공헌한 핵무기로 인류는 스스로 멸망할지도 모른다. 어떤 종은 외부의 원인으로 멸망하고, 어떤 종은 스스로의 힘을 이기지 못해 멸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생기지 않는 방법이 뭔지 우리 모두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어쨋든 지구는 자기 갈길을 가게 되겠지만 말이다.


참고문헌


1. 드니즈 키어넌, 2019, 아토믹 걸스, 알마

2. 월터 앨버레즈, 2018,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아르테

3. 오미야 오사무, 2023, 세계사를 바꾼 화학 이야기 2 - 자본주의부터 세계대전까지, 사람과나무사이

4. 카이 버드, 마틴 셔윈, 2010,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사이언스북스

5. The forgotten mine that built the atomic bomb, 2020.8.4, BBC Future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매거진의 이전글 박물관이 살아있다(200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