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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Oct 10. 2023

웃픈 영화, 싱크홀(2021)

영화 속 과학이야기

우리 영화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소재인 싱크홀을 이용한 재난 코미디 영화다. 재난 소재를 이용한 코미디 영화는 도시의 가스누출 사고를 다룬 <엑시트>(2019)가 있다. 물론 재난영화는 <해운대>(2009), <터널>(2016), <부산행>(2020) 등 가끔씩 나오고 있다. 사람 사는 곳에 재난이란 불시에 공평하게 찾아올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담은 장르이다. 재난 영화는 재난 자체가 워낙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적인 요소가 비슷비슷하여 잘 만들기가 쉽지 않은 장르이다.


문제작인 <7광구>(2011), 화려한 캐스팅이었지만 산만했던 영화 <타워>(2012) 등을 감독한 김지훈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오랜 부진에서 다소나마 회복할 수 있었다. 개봉 4주 차 219만 관객을 찍었다. 영화상영관협회 지원대상작으로 선정(제작비 50% 지원)되어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무서운 영화지만 12세 관람가다. 


제공 : ㈜쇼박스


지방에서 빈손으로 올라와 11년 만에 장수동 청운빌라로 이사해서, 서울 입성과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가장인 ‘동원(김성균 분)'은 이사 첫날부터 402호 ‘만수’(차승원 분)와 하루종일 부딪힌다. 동원은 자가취득을 기념하며 직장 동료들을 집들이에 초대하고 만취한 직원들은 동원의 집에서 자게 된다. 다음날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도 못한 직원들과 함께 빌라 전체가 순식간에 땅 속으로 가라앉는다. 지하에는 빌라 주민 만수와 동원, 산만한 회사직원 ‘김대리’(이광수 분)와 똘똘한 인턴사원 ‘은주’(김혜준 분) 등이 남게 됐다. 지하 500m 싱크홀 속으로 떨어진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제공: (주)쇼박스


싱크홀


싱크홀(sinkhole)은 어떤 이유로 생긴 지표 밑의 공간으로 지표가 꺼져서 커다란 웅덩이 및 구멍이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 1m 이하의 작은 것에서 수백 m에 이르기까지 그 크기는 다양하다. 특히 도시 환경에서 발생하는 싱크홀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로 직접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웅덩이 모양으로 땅만 패인 모양부터 시작해 아예 땅 밑 깊숙이 원형의 낭떠러지가 생기기도 한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싱크홀은 반복되는 공사에 따른 지하수의 누출, 빈 공간의 발생, 지하수의 흐름을 무시한 대규모 공사 등으로 발생한다. 특히 지하에 매설된 상하수도의 누출로 인한 토사의 유실이 주요 이유이다. 


과체말라시티에서 발생한 싱크홀(지름 20m, 깊이 30m, 2010년), 출처: flickr
과테말라 시티의 싱크홀 (연결사진)(2010), source: wikimedia commons by Eric Haddox


싱크홀의 지질학


싱크홀의 생성 과정, 출처: 동아일보

지질학적으로 싱크홀이 많이 일어나는 곳은 석회암 지대와 광산이 있던 지역을 꼽을 수 있다. 광산이야 대체로 어디에 있는지 알기 때문에 그 지역을 가면 조심하면 된다. 지표면 밑에 복잡하게 갱도를 뚫었던 지역이 특히 위험한데, 폐광 후 복구 작업이 되었다면 문제없지만, 지하수가 차있다가 지하수가 어떤 이유로 빠져나가면 지표의 하중을 빈 공간이 받게 되어 어느 순간 무게를 이기지 못한 지표면이 무너지게 된다.


석회암지역의 경우,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빗물에 녹아들면 약한 탄산을 형성하는데, 오랜 기간 지하수로 흘러들게 되면 석회암이 녹아 흘러나가고 점차 빈 공간이 형성된다. 입구가 접근이 편리한 곳에 있다면 석회동굴로 유명해지겠지만, 지표면에서 흔적이 없다면 언젠가 무너질 싱크홀의 후보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석회암 지역의 돌리네 지형이 싱크홀의 흔적이다.



프랑스 로제르, 마스생첼리, 메장 폭포 위의 돌리네, source: wikimedia commons by JYB Devot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영화 포스터에 보이는 풍경으로 보면 영화 속 장소는 마포구 한강변쯤으로 설정된 듯하다. 물론 철도는 없다. 서울의 지질은 매우 단순한데, 남산의 북쪽으로는 화강암 지대이고 그 주변은 선캠브리아기 편마암 지역이다. 한강변의 범람원에는 하천퇴적층이 있겠지만, 영화에서와 같이 지하 500m의 퇴적층이 나올 수가 없는 지역이다. 따라서 영화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 과테말라시티의 싱크홀(2010)과 유사한 싱크홀은 생길 수 없다.


싱크홀 피하기


유튜브 등에서 싱크홀 동영상을 보면, 멀쩡한 곳을 지나던 사람이 순식간에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징조도 없이 앞사람은 잘 지나갔는데, 운 나쁜 다음 사람이 빠진 것이다. 싱크홀에 놀라는 이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두 발로 딛는 고정되고 불변인 듯한 단단한 땅이 무너진다는 의외성에 있다. 흔히 전래동화나 종교 등에서 땅 밑에 무간지옥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니 더욱 아찔한 것이다. 

지표투과레이더 사용 장면, Source: wikimedia commons by The Charles Machine Works

싱크홀은 지표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지표투과레이더(GPR: Ground Penetrating Radar) 탐사로 조사하는 방법을 쓴다. 전자기파를 지표면에 쏜 후 반사파를 분석하는 방법인데, 매질에 따라 전파 속도나 파장이 변하는 특성을 이용한다. 지표면을 일일이 굴착하지 않고 조사할 수 있어 편리하나 10m 이내만 가능하고 비용이 들기 때문에 모든 지역을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대규모 상수도관, 가스관, 지역난방관 등이 있는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시행된다. 


2018년 제정된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는 5년에 1회 이상 안전점검을 실시해야 한다. 빈 공간이 발견되면 발생 원인을 차단하고 흙이나 모래로 메운다. 


일단 지면이 움푹 파인 곳이나 나무 등이 기울어진 곳은 의심해 봐야 한다. 싱크홀의 발생은 땅속에서 받쳐주던 지하수가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도로나 보도가 울퉁불퉁하다던지, 도로가 젖어 있거나 물이 솟는 경우는 일단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이럴 경우는 접근을 하지 말고 사람들은 통제한 후, '안전신문고'앱이나 119에 신고를 하여 다른 피해를 막아야 한다.


토대(土臺, foundation)가 무너진다는 말이 있다. 굳세게 발을 디딜 곳은 다음 발걸음의 시초이고 높이 올라가기 위한 바탕이다. 건물을 지을 때 먼저 다지는 것이 토대이다. 언제나 든든해야 의미가 있다. 무너지는 토대는 없는 토대보다 못하다. 물리적인 토대도 그렇지만 우리가 믿는 사랑, 우정, 애국심, 신앙 등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무간지옥이라는 땅밑의 지옥은 꼭 나쁜 사람만 빠지는 것이 아니다. 빠지더라도 자책은 하지 말자. 단지 우리가 복잡한 도시에 사는 대가를 치르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볼 수 있는 눈만 있으면, 단 한 번의 글이나 영화를 보고 위험할 수 있는 싱크홀을 알고만 있다면 충분히 행운이 깃들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과학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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