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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Jan 02. 2023

남한 최대 금광산, 음성 무극광산

3번 국도 지질기행

음성은 삼한시대 마한의 지침국에 속했다가 삼국이 중원에서 격돌하던 시기에는 백제, 고구려,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행정구역을 갖지 못하고 청주, 진천, 충주, 괴산 등에 포함되었다가 1895년(고종 32년)에야 음성군으로 불리게 되었다.


무극광산의 개발로 유명해진 무극시장, 출처: 음성군 홈페이지


통계청,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1966년에 125,108명이던 인구가 1990년에는 74,674명까지 줄어들었다. 2014년 외국인 인구의 증가로 잠시 10만 명을 돌파했으나 COVID-19의 영향으로 다시 줄어들고 있다. 사실 음성은 전국 군 단위 지역 중에 외국인 근로자의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참고로 전체 지역단위 외국인 비율은 안산시 단원구가 가장 높다). 2021년 11월 기준 외국인 인구비율은 14.7%다. 그래서 충북은 내륙지역이지만 음성은 이국적이다. 


이처럼 음성에 외국인이 많은 것은 수도권 규제에 따라 공장들이 이전했기 때문이다. 21번 도로를 따라 농공단지, 산업단지가 들어서 있고 계속 개발 중이다. 음성읍은 교통이 외진 곳에 있어 금왕읍이 음성군의 경제적 중심지 역할을 한다. 금왕면은 1906년 충주의 금목면과 법왕면 등 서부지대가 음성에 편입되면서 금왕읍으로 이름이 정해졌다. 금왕읍에는 평택-제천 간 고속도로가 동서로 지나는데 진출입로는 음성 IC와 금왕꽃동네 IC가 있다.


충북 음성은 지금은 청결 고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고향으로 유명하지만 한때는 우리나라 최대의 금광지대였다. 특히 금왕면 무극리는 한때 대한민국 최대의 금산지였다. 일설에 의하면 ‘무극(無極)’이라는 이름이 금이 하도 많이 매장되어 이 지역에서는 나침반의 자침이 남극과 북극을 표시하지 못해서 극이 없다는 이유로 무극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철광산이라면 좀 그럴듯한 이야기일 것이다. 또 금왕에서는 돈 자랑 하지 말라는 이야기, 소달구지도 금장식을 장식을 하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부유했었다. 현재의 용계리를 중심으로 무극, 금왕 광산이 있었고 지질학적으로 금맥이 13개가 지나가는 것이 확인됐다.


금왕읍 용계리의 과거 무극광산 위치, 파일공장이 들어서 있다.

무극광산


음성군 금왕읍 용계리 무극광산은 고려시대부터 금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당시의 골드러시는 1891년 중국인이 오룡골에서 금이 발견된 것이 그 시초이다. 1913년 일본인이 광업권을 설정하고 개발에 들어가 1930년대에는 하루 최고 6kg의 금이 생산되었다. 1942년까지 연간 200~500㎏의 금이 생산된 국내 굴지의 금광이었다. 용계리는 1930년대 광산개발로 전국 각지에서 사람이 몰려 급성장한 마을이다. 무극광산의 발전으로 금왕읍의 무극시장이 번성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금 생산량(99.9% 기준)이 162kg이니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무극광산,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1943년 금산정비령으로 폐쇄상태에 있던 광산은 정부수립 후 1952년 대명광업이 인수하여 충남 청양 구봉광산과 함께 개발을 시작했다. 1962년 기록적인 실적을 올려 국내 금생산량의 50%를 차지했다. 그 후 1971년 일시 휴광하다가 1984년 다시 재개발하여 1990년대 중반까지 삼형제맥을 대상으로 월 5,000톤의 광석을 생산 처리했고 1995년 연간 1060㎏의 금과 5000㎏의 은을 생산했다. 전국 생산량의 80% 규모로 연간 매출액 100억 이상이었다.  갱도의 심부화에 따른 생산비 증가와 국제 금시세 하락으로 1997년 12월 휴광에 들어갔다. 현재 광업권자는 영풍광업주식회사이다.


용계리 영풍파일 담장에 그려진 광산을 재현한 벽화


무극광산은 개발이 진행되면서 지하 600m 이상으로 파고 내려갔다. 최초의 금맥은 삼형제맥이라는 제1호 맥이었다. 맥의 두께가 4m에 이를 정도로 튼실한 맥이었다.


금왕 광화대


금왕 광화대는 선캠브리아기 편마암과 고생대 옥천 지향사의 변성암류가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고 이들을 쥐라기 대보화강암이 저반상으로 관입하였다. 남서방향으로 300km, 약 40km 폭으로 대상 분포한다. 이를 백악기 불국사 화강암이 암주상 또는 암맥상으로 관입하고 있다. 


무극광산 주변의 흑운모 화강암에 대한 K-Ar 연령측정결과 112Ma로 함금은 석영맥 주변의 열수변질 견운모에 대한 K-Ar 연령측정결과는 106±5와 98.2±2Ma로 보고되어 백악기 불국사 화강암이 광화작용의  원인임을 시사하고 있다.  음성지역은 NNE방향으로 주향이동한 금왕단층으로 만들어진 백악기 퇴적분지가 있다. 따라서 진천방향으로는 퇴적암이 잘 나타난다. 


금왕단층을 따라 수개조의 석영맥이 발생하면서 금 광상을 형성하였다. 광산은 북으로부터 남으로 용계리에 무극광산, 봉곡리에 금왕광산, 제일광산(한때 서미트광업), 금왕휴게소 남서쪽 일대에 유일광산이 있었다. 현재는 지표가 대부분 산업시설로 덮여 있고 가행되는 광산은 없다. 산업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여 이제 광업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음성지역 금광맥 추정 지도, 출처: SM광업 & SM리소스넷 티스토리


개발에 대한 반대


21세기에도 음성의 금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이어졌는데 여러 개발업체에서 개발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번번이 지역민들과의 마찰로 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금광 개발업체인 대륙광업과 사회복지법인 꽃동네 사이에 길고 긴 싸움이었다. 


꽃동네는 1976년 맹동면 일대에 들어선 가톨릭 계통의 사회복지법인이다. 처음에는 작은 시설로 시작되었으나 이제는 주변 일대의 부동산을 대규모로 소유한 단체가 되었다. 주민들에 대한 영향력도 대단한 듯하다.


1997년에서 2000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마치고 본격 개발에 나설 시점에 꽃동네 측과 주민들이 광산개발을 반대하고 나섰다. 극렬한 반대집회와 소송전이 이어졌다. 행정당국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16년을 이어진 양측의 싸움은 2015년 대법원이 대륙광업의 광업권 존속기간연장등록처분을 취소하면서 일단락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금왕에는 매우 많은 양의 금이 매장되어 있다는 조사결과와 개발에 대한 욕구가 아직 남아 있다. 대륙광업은 여러 광업권을 가지고 있고 현재 다른 업체가 대륙광업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 경제적 여건의 변화 등에 따라 다른 전개가 예상된다. 



지금 용계리를 가보면 ㈜풍산파일의 대규모 작업장이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 무극광산이 있던 곳인데 아무런 박물관이나 사료 하나 남기지 않고 그 화려했던 시절을 기억하게 할 만한 것 하나 남아 있지 않다. 음성군은 뒤늦게 그 시절 사진을 모은다고 하지만 과연 의미 있는 것들이 찾아질지는 의문이다. 


무극광산의 명성은 수많은 광산업자를 끌어들였다. 일재강점기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사업가와 광부들이 찾아들었고 한때는 많은 부를 누렸다. 아이들을 키우고 한 세상을 살아갔다. 산출량이 줄어들면서 금시세가 하락하면서 모두 떠나 버렸다. 


이제 세월이 지났고 다시 세상이 바뀌었다. 종교단체가 자리 잡으면서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을 지역사회에 미치게 되었고 정치적인 사건들이 뒤얽혀서 다시 한번 욕망의 소용돌이에 쓸려 들어가는 모습이다. 행정기관과 사법기관까지 뒤엉켜서 지역사회는 나뉘었다. 이제는 산업단지가 개발되면서 외지 사람과 외국인까지 많아졌다. 이 많은 이해관계자들을 조정하면서 광산이 개발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지표지역에는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고 산업단지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어 앞으로의 가능성도 점차 사라지는 모양새다. 국내 현실상 광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안전사고에 대한 부담, 지역개발에 따라서 사회 현실은 점점 개발에서 멀어지고 있다. 지질학적으로 추가적인 광물이 부존 되어 있을 가능성은 크지만 산업으로의 광산은 점점 잊혀 갈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가장 비싼 물건을 깔고 있는 지역이 될 듯하다. 


몇 년에 한 번씩 보도되는 광산개발 뉴스와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반대주민대책위원회 그리고 주민들의 기존광산을 이용한 관광지 개발 욕구 등이 아직도 상존해 있다 금광산이 만들어 놓은 금전만능의 생각이 이 시대까지 이어져 오는 게 아닌지 허망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참고문헌


1.     전봉관, 2005, 황금광시대, 살림

2.     최선규, 이동은, 박상준, 최상훈, 강흥석, 2001, 한국 금-은 광상의 효율적 탐사를 위한 성인모델; 무극 광화대를 중심으로, 자원환경지질, 제34권 제5호, p. 423~435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https://brunch.co.kr/@8133d3a5098c4e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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