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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Jul 18. 2023

청화백자와 철화백자에 숨은 지질학

문화유산 지질학

우리는 역사시간에 고려는 청자, 조선은 백자라고 배웠다. 얼마 남아있지 않은 유물을 볼 때, 그런 듯하다.

고려의 수도는 현재 이북인 개성이고 조선은  서울이라서 지금 청자는 드물고 백자는 좀  더 친근하다. 물론 지금으로부터의 시간도 관계할 것이다. 최근 시대일수록 유물이 많은 법이다. 하지만 에술품도 기술과 시대적 상황과는 무관할 수 없는 일이다. 그 관계를 간단히 살펴보자.


고미술은 크게 서화, 도자기, 불교미술로 나눌 수 있는데, 종이와 먹만 있으면 되는 서화에 비해  재료에 큰 영향을 받고 보다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따라서 그림에는 문인화가 있지만 도자기에는 문인도자기  같은 것은 없다.  보관이 힘든 도자기류는  시간의 무게를 온전히 견디기도 더 힘들다.


도자기는 흙이 중요한데 질료로서의 흙과 유약으로서의 흙이 포함된다. 청자는 점토로 만들어지고 백자는 고령토라는 점토로 만들어진다. 점토에 철분성분이 없을수록 하얀색이 나오게 된다. 백자로 갈수록 흙의 성분, 순도가 중요하다. 고령토는 장석이 많이 함유된 암석이 풍화작용, 지질작용을 받아서 생성된다.


초기에는 나무와 고령토가 많은 곳에서 도자기 가마가 설치되어 생산됐지만 교통수단이 발달함에 따라 운송이 편리한 곳에 생산시설이 들어서게 되었다. 왕실 그릇을 생산하는 사옹원인 경기도 광주의 금사리, 분원리 가마가 그 예이다.

 

백자청화 '홍치 2년' 명  송죽문항아리, 동국대학교박물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청화백자와 코발트


그리고 밋밋한 도자기의 표면에 그림을 그려 넣는 기법이 발달되었는데 다분히 중국 도자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초기에는 백자에 용 등을 그리는 용도로 회회청(回回靑)이라는 코발트 광물  안료를 사용했다. 코발트광물 중 중요한 것은 휘코발트석(cobaltite, CoAsS)과 스말타이트(CoAs)인데 분자식에서 보듯이 비소가 포함되어 있어 재련이 매우 힘들다. 광물을 가열하여 비소를 증발시켜서 파란색 코발트 안료를 얻는다.


휘코발트석, source: wikimedia commons by james saint John


당시에는 많은 안료들이 광물질이고 따라서  산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수입해서 쓸 수밖에 없다. 마치 지금의 희토류 문제와 유사하다. 회회청은 아라비아에서 수입되어 수급이 불안정하였고 15세기 명청교체기의 불안한 중국의 경제 사회상으로 조선은 수입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마치 최근에 벌어진 요소수 사건과 같은 맥락이었다. 중국과 조선은 모두 자체에서 이 안료를 개발하려고 하였고 이를 '토청'이라고 불렀는데 망간성분이 많아 회회청만한 효과가 나지는 않았다.


백자철화 포도문항아리, 18세기 초반, 국보, 이화여대박물관


철화백자와 석간주


이를 대체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철성분인 석간주를 이용한 것이고 그 결과물이 철화백자이다. 석간주는 높은 온도에서 환원되어 검게 변해버리기 때문에 청화백자와 같은 산뜻한 느낌을 구현하기 어렵다. 지저분한 느낌과 뭉개진 디테일이 남게 된다. 그래도 17세기에서 18세기 초반까지 어쩔 수 없이 철화백자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영조, 정조 때부터는 경제 상황이 나아졌으나 사치를 금지한 영조는 청화백자를 용준(龍樽 : 용과 구름)을 그리는 것 외에는 금지해 버렸고 따라서 조선에서는 청화백자 제작이 줄어들게 된다. 


대자, 자토, 주토, 적토, 토주라고도 불리는  석간주(石間, hematite)는 붉은 산화제2철이 다량 함유된  붉은 흙이다. 석회암, 셰일 등이  분해된 곳에 많이 나타난다. 이 물질을 제거하여 산화철만을 골라내어 석간주로 사용한다. 관청이나 사찰의 단청에 주로 사용하는 붉은색의 안료가 석간주이고 마감칠로도 사용하고 바탕칠로도 사용한다. 참고로 단청 중 녹색은 뇌록이라는 광물질 안료를 사용한다.  


적철석, source: wikimedia commons by Stephanie Clifford


청나라가 안정됨에 따라 중국은 회회청 대신 자체에서 개발한 염료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로서 중국도자기의 전성시대를 이루게 되고 유럽까지 수출하게 된다. 청화백자의 생산은 관요가 아닌 민간의 가마에서 활발히 생산되었고 이에 따라 도자기 산업은 국제경쟁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요하네스 베르메르, 1665, Mauritshuis, Source: Wikimedia commons by Den Haag


추후의 중국의 청화백자의 푸른빛은 유럽의 화가에게도 영향을 주게 되는데 요하네스 베르메(1632 ~ 1675)등은 이러한 푸른색을 얻기 위해 청금석(lazurite, 사장석 계약 광물이 수화, 변질작용을 받아 만들어진 광물)을 사용하여 울트라 마린 블루라는 푸른색을 사용하게 된다.


재료의 확보는 동서고금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력의 기반이다. 손재주는 있던 조선이었지만 재료의 개발에 투자를 소홀이 한 조선은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른다. 너무 폄하할 필요는 없지만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빈약한 사료로  과대포장하는 것도 과거에서 배우는 자의 태도는 아닐 것이다.


참고문헌


1. 박주현, 정혜영, 문성우, 우인숙, 2017, 석간주의 이화학적 특성이 기능성 및 내광성에 미치는 영향 연구, 보존학회지 제33권  제6호 p.485~495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황윤, 2023, 나  혼자 백자 여행, 책읽는 고양이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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