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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보라 Sep 12. 2022

<캐치!티니핑>의 마법을 믿기로 했습니다.

믿어핑, 고마워~믿어~

2022년 9월 11일. 

5세 은유가 탄생한 지 1602일째 되는 날이자, 주사를 맞고 처음으로 울지 않은 기특한 날입니다. 

기념비적인 날이라 이렇게 기록해봅니다. 


저희도 부모가 처음인지라, 아이의 모든 순간이 새롭고 경이롭습니다. 

그래서 저희처럼 아이의 '처음'을 기록하는 부모들이 많은 것 같아요.

태어나던 날, 처음으로 뒤집기를 한 날, 첫니가 나던 날, 처음으로 엄마, 아빠를 부르던 날, 혼자 신발을 신던 날, 기저귀를 뗀 날, 처음으로 양치한 날, 그리고 주사 맞고 처음으로 울지 않은 날. 

우리에게 당연한 일상이 아이에겐 처음이고, 그것이 또 부모에겐 새롭고 감동적인 순간이 됩니다. 

인생은 이렇게 돌고 도나 봅니다. 


명절 시작 첫날, 아이가 뜨끈해서 열을 재보니 38도입니다. 

'설마..?'

얼마 전 제가 코로나에 걸려 고생했기에 혹시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신속항원은 음성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아이는 밤새 기침과 고열로 힘겨워했습니다. 

"엄마, 저 목이랑 귀가 너무 아파요...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토할 것 같아요..."

1분이 머다 하고 쉰 목소리로 아프다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절로 끙끙 소리가 나는지, 말 그대로 '끄응... 끄응...' 앓았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아파하는 것은 처음이라 마음이 찢어지더군요. 

아가 때 열이 39도를 찍어도 아픈 줄 모르게 잘 놀던 아이였습니다. 

고통에 무딘 아이가 이렇게 표현할 정도면, 엄살이 센 엄마는 진작에 초주검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명절 때는 병원 한 번 가는 것도 고역입니다. 

문 연 병원을 찾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특히나 소아과는 일찌감치 예약이 마감됩니다. 

똑딱 어플로 1시간 거리 문 연 병원을 찾아 간신히 예약했더니, 아이 앞에 106명의 아가들이 있었어요. 

쉬는 날 아픈 아이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요. 


오전에 예약한 진료는 오후가 훌쩍 지나서야 순서가 돌아왔습니다. 

이젠 눈치가 빤해서 주사 얘기부터 꺼내더라고요. 

집을 나설 때부터 주사 맞으면 어떡하느냐며 걱정이 한가득이었습니다. 

이렇게 아픈데 별 수 있나요, 맞아야지.


끙끙 앓으면서 가방에서 주섬주섬 <캐치!티니핑> 반지를 꺼낸 아이. 

명절 때 고모께 선물 받았는데 어느새 가방에 챙겨 왔더라고요.

심사숙고 끝에 '믿어핑'을 고릅니다. 

결심한 듯 야무지게 반지를 끼더니 공약을 내걸더군요. 


"믿어핑이 나를 지켜줄 거야. 믿어핑이 지켜주니까 용기 내서 주사를 맞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주사 맞을 용기를 내다니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믿어핑이 마법 부리면 울지 않을 수도 있겠네?"

"그럼요. 그런데... 은유 안 울면 초콜릿 사주나요?"

이런... 협상할 줄 아는 녀석 같으니라고. 

사주고말고. 지금 초콜릿이 문제니. 열 박스도 사줄 수 있다. 


"다섯만 세면 주사는 금방 끝나요."

간호사 선생님이 눈치껏 숫자를 세며 주사를 놔주셨습니다.

아파서 눈밑이 시꺼멓게 내려앉은 아이는 힘없이 반지 낀 고사리 손을 가만히 응시하며 다섯을 꾹 참았습니다.


와우. 정말 울.지. 않.았.습.니.다. 


이제 고작 다섯 살인데, 주사 맞고도 울지 않다니. 제겐 기적입니다. 

(엄마는 7살이 되어서야 주사 맞고 안 울었는데 말이죠.)

'어느새 우리 아가가 이렇게 컸다니...'

감동이 텍사스 소떼처럼 몰려들어왔습니다. 

믿어핑이 마법을 부리고 "울지 마, 믿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정말 마법이 통했어요. 신기해요!"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그래, 결심했어!

엄마는 <캐치!티니핑>의 광신도가 되기로 합니다. 

그동안 <캐치!티니핑>은 상술일 뿐이다, 수많은 티니핑을 양산해 낸 탓에 부모들 지갑만 얇게 만드는 <파산핑>일 뿐이다, 평가절하했었던 나 자신을 매우 칩니다. 

아이가 용기 내어 어려운 일을 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는데, 반갑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앞으로도 새로운 것이 두려운 아이에게, 아픈 것이 무서운 아이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엄마는 뭐든 기꺼이 사다 바칠 것 같습니다. 

치아가 썩는 초콜릿도 아니고, 장난감 반지 하나 끼우면 끝날 일인 것을요.

감동한 엄마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캐치!티니핑> 반지 세트를 추가로 구매했습니다. 

(이미 몇 개 잃어버렸거든요.)


그래, <캐치!티니핑> 이젠 믿을게.

다음엔 아이에게 어떤 마법을 보여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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