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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커엄마 Jan 25. 2023

"네가 왕따인 이유는"-2

일곱 가지 이유

"미안해.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괜찮아..."


저는 겁쟁이였습니다. 따돌림이 납득이 안 됐다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면 학교에서 당당히 친구들에게 말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따로 전화를 해서 친구를 위로하려 했습니다. 이기심이었습니다. 불편한 마음과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내 마음이 좀 더 편하기 위해.  좀 더 솔직히는, 혹시나 따돌림의 대상이 내가 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에 괜찮다고 답해주는 친구의 죽어가는 목소리가 불편하면서도, 묘하게 위안이 됐습니다.


그래서 벌 받았나 봅니다. 다음 타자는 저였습니다. 풀이 죽은 친구의 목소리에 위안받고 친구의 외로움을 외면한 저의 이기심을 탓했습니다. 이제와 보면 어느 누구의 잘못도 없었는데,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누가 멈춰 세우지 않았는데도 강물이 계속 흐르는 것처럼, 따돌림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학교에서의 삶은 사막보다 더 메말라갔습니다. 재잘대는 소리가 넘치는 시끄러운 교실이었지만 제게는 적막하고 고요했습니다. 사람은 있으나, 친구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메아리 없는 외침. 소리 없는 아우성. 알록달록한 세상 속 회색지대에 서 있는 나.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사는데 나와 대화할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마 엄마에게 이 일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제 마음 힘든 게 낫지, 엄마마저 힘든 꼴은 어린 마음에도 죽어도 보기 싫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억울했습니다.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나.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위로한 게 잘못이었을까. 용기 내어 "우리 서로 따돌리지 말자" 소리치지 못한 게 이렇게 괴로운 형벌을 받을 정도의 잘못이었나. 참고 참다 소리쳐 물었습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어?"

"잘못? 얘들아. 쟤가 자기 잘못이 뭔지 모르겠대. 깔깔깔."

"..."

"지금부터 우리가 너를 따돌려야 하는 이유를 말해줄게. 우리가 칠공주니까 일곱 가지 이유를 적어줘야겠다."


수업이 끝난 후 교실에 7명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칠판에 일곱 가지 이유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피해자 1명을 빼고 6가지 이유만 적어도 충분히 차고 넘치는데, 굳이 7가지 이유를...


<안보라가 따돌림을 받아야 하는 이유>

1. 예쁜 척한다.

2. 선생님이 쟤만 예뻐한다.

3. 우리 몰래 친구에게 전화했다.

.

.

.

7.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이 나열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7번째 이유를 들었을 때, 저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7번째 이유는 바로

















'아빠'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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