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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커엄마 Jan 26. 2023

"네가 왕따인 이유는"-3

"아! 쟤 아빠 없잖아."

교실 맨 뒤에 홀로 앉았습니다. 칠판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제 모습과는 대비되게 친구들의 모습은 참으로 신나 보였습니다. 칠판에 <따돌림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적던 친구들은 본인들끼리 한바탕 토론을 벌였습니다.


"7번째... 7번째 이유는 뭐로 하지?"


-난 너의 얼굴을 난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  포니테일로 머리를 바싹 올려 묶었지. 머리를 얼마나 꽉 묶었는지, 나를 내리깔아보던 눈이 더 날카로워 보였단다. 표독스럽던 너의 표정도 폴라로이드 카메라 필름처럼 나의 뇌리에 박혀있어.


"아! 쟤 아빠 없잖아. 그거로 하자."


<안보라가 따돌림을 받아야 하는 이유>


1. 예쁜 척한다.

2. 선생님이 쟤만 예뻐한다.

3. 우리 몰래 친구에게 전화했다.

.

.

.

7. 아빠가 없다.


그 길로 자리를 박차고 나와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안 그래도 집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어야 하는 거리였는데, 잘 됐지 뭐예요. 의식 없이 발이라도 움직일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걷지라도 않으면 돌아버릴 것만 같았던 순간이었습니다. 멈추지 않고 쿵쾅는 가슴, 아플 만큼 뜨겁고, 찢어질 것만 같이 고통스러운 명치가 원망스러웠습니다. 눈치도 없이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도 흘러내렸습니다.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은 흙길 위로 차들이 지나가며 먼지를 뿌려댔습니다. 내가 우는 건지, 먼지가 우는 건지. 거친 파도처럼 부서지던 흙먼지 사이로 눈물콧물이 뒤섞였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얼굴은 땟국으로 얼룩졌습니다. 안 그래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데, 얼굴까지 못나보였습니다. 창피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신 게 내 탓도 아닌데, 왜 그게 왕따의 이유가 되어야 했을까. 그 자리에서 "웃기고 있네!" 코웃음 치며 "어리석은 너희들과 상종할 가치도 없으니, 이제부터는 나도 너희들과 따로 놀겠다",라고 당당히 말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탓하고 또 탓했습니다. 밤새 이불을 차고 또 차고, 가슴을 치고 또 치고. 수없이 많은 밤, 베갯잇을 적셨습니다.


'너희 아빠는 언제까지 살아계실 것 같니.

사람이 죽고 사는 게 네 뜻대로 되는 것 같니.

모든 사람은 결국 죽는 건데...'


국민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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