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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커엄마 Jan 27. 2023

학교 창고에 M16 소총이?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아무 소리도 안 들려."


열일곱 오빠의 귀가 멀었습니다. 사격 훈련 때문입니다. 고1이 웬 사격 훈련이냐고요? 전쟁이 나면 소년병으로 차출돼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백령도가 특수지역(?)이어서요. 아마도 지리적으로 최전선 군사거점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오빠는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까지 2년에 걸쳐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여학생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사시 예비 소년병(?)들은 전투에 참여하거나 구급대원으로 나서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었습니다. 반장은 지휘관이 되고요. 오? 그렇게 신분 상승이 되네? 싶었지만, 반장선거는 아무 의미 없었다고 합니다. (누구든 돼라 st.)


학교 안에는 비밀의 정원 같은 곳이 있었습니다. 겉보기엔 아주 낡은 창고입니다. 하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 굳게 닫힌 미지의 공간. 녹슬고 낡았지만 주먹만 한 크기의 자물쇠가 위압감을 주는 곳. 비밀의 문은 1년에 딱 한두 번 열렸습니다.


'저게 다 총이라고?'

교정을 마친 치아처럼 가지런히 나열돼 있던 소총 본 순간 동공이 확장됐습니다. M16이래요. 미처 눈깜빡일 새도 없이 눈동자를 굴립니다. 흙이 얼기설기 묻은  군화들이 보여요.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꾸깃한 군복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헷갈립니다. 이곳이 학교인가, 군대인가!


노란색 실로 이제 막 이름을 새긴 새 명찰이 군복 위에 달렸습니다. 명찰은 샛노란 새것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군복은 너무 낡았네요. 대대로 물려 입고 훈련하니 당연한 얘기입니다. 묘한 이질감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를 찰나, 오빠들은 군화를 착장하고 트럭을 타고 군부대로 들어갔습니다. 참고로, 총알은 부대 들어가서 지급받았다고 합니다. 오빠는 이 순간이 제일 무서웠다고 회상했습니다. 총알 넣은 탄창을 끼우는 순간 묵직하면서도 차가운 감촉에 사명감마저 느꼈대요. '아, 나도 이제 군인이구나.' (오빠는 그냥 고1이야...)


"몇 발을 맞추든, 그것이 너의 교련 성적이니라."

1인당 10개의 탄피가 주어졌습니다. 첫해는 6발을, 그 이듬해에는 8발을 맞췄다며 뿌듯해했습니다. 성적에 목마른 어린양들은 과녁을 향해 외눈으로 최선을 다한 듯싶습니다. (하지만 만점자는 없었습니다.) 사춘기 오빠는 일부러 대답을 안 한 건지, 진짜 안 들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격 훈련을 받고 온 한동안 '노답'이었습니다. 다들 사격에 진심이었고, 다들 귀가 멀었습니다. 일주일 정도 후에야 정상인의 청력을 회복했다고 하네요.


이틀에 걸쳐 훈련을 받고 집에 돌아온 오빠는 그야말로 초주검 상태습니다. 특히나 얼굴이 만신창이였습니다. 얼굴에 뚫린 모든 구멍에서 액체가 흘렀달까요. 눈물, 콧물, 침 어느 하나 뒤질 새라 저마다 흘러내리기에 바빴습니다. 휴지로 아무리 닦아도 마르지 않는 샘같았습니다. '에잇, 더러워!' 타박하기에는 오빠의 상태가 너무 절박해 보였습니다. 얼굴엔 손도 못 대게 했고, 찬물로 연신 헹구며 따가워했습니다. 저는 휴지와 젖은 수건을 대령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죄지은 것도 없으면서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같이 멘탈이 나갔었네요. 집에 왔을 때가 이 정도니, 현장에서는 말도 못 붙였겠어요.


화생방의 여파였습니다. 남학생은 방독면 없이, 여학생은 방독면을 착용한 채로 훈련을 받았다고 해요. 어깨동무를 하고 줄을 세웠다가, 앉았다가 일어나기 수십 번,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를 열창하며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합니다. 열창보다는 발악었겠죠? <뽀뽀뽀>는 왜 이렇게 긴 것인가, 왜 출근할 때 <뽀뽀뽀>를 하는 것인가, 대체 하루에 <뽀뽀뽀>를 몇 번이나 하는 것인가, 108 번뇌라는 게 이런 것인가! 수분 남짓의  시간이 마치 3시간인 듯, 그 순간이 마치 지옥인 듯,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오빠에게 네모난 건물 속 희뿌옇고 매캐한 연기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마지막 유격훈련까지 알찼다고 합니다. 3줄 타기(역삼각형 모양의 세 줄 가운데 양 팔로 줄을 잡은 채 외줄을 타고 공중을 건너는 훈련)는 물론이고, 헬기 레펠까지 했다고 합니다. 헬기는 못 탔습니다. 대신 막타워 같은 곳에 올라가 앞뒤로 줄을 잡고 고공에서 떨어지는 훈련을 했다고 하네요. 이밖에도 쪼그려 앉아 뛰기, 팔 벌려 뒤기, 총 들고 선착순 뛰기. 몇 년 전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서 보던 훈련들을 고등학생들이 했다고 보면 됩니다. 제 아무리 돌도 씹어먹을 이팔청춘이었 해도, 이 날만큼은 정신 못 차리고 코 골고 자기에 바빴습니다.


"앞으로오~ 갓! 뒤로오~ 돌앗! 발맞추어~갓!"

"핫! 둘!"

갑자기 귓가에 구령이 맴돕니다. 글을 써보겠다고 오빠의 추억을 소환했더니, 웬 걸, 운동장을 헤매던 제식 훈련의 망령마저 소환된 것 같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저 역시도 운동장을 돌며 제식훈련을 받았고, 몸 여기저기에 어설프게 붕대를 감으며 교련 실기 평가를 받은 어린양에 불과했습니다.


 오빠, 언니들은 <진짜 사나이>까진 아니어도 <진짜 소년병>이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훈련이 없어졌나 봅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97년도에 나온 기사 한 줄이 보입니다. 실화인 거 맞습니다. 지금은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훈련이었지만, 냉온탕을 오가는 남북관계 뉴스를 전할 때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수시로 떠올리곤 했습니다.


최근 뉴스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을 다루며 앳된 소년병의 모습을 전하고는 했습니다. 제대로 된 군사훈련 없이 사실상 최전선에서 총알받이 역할을 한 그들. 수십 년의 세월은 대체 느 곳에서 흐른 건가요. 우리나라도, 지구 반대편 저 먼 나라도 평화의 시계는 멈춰있는 듯합니다. 고장 난 시계는 언제쯤 초침을 움직이기 시작할까요. 추운 날, 힘겹게 겨우나기를 하고 있을 어소년병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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