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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커엄마 Feb 13. 2023

"아이의 다리를 잘라야겠습니다."

트라우마 극복기 2

찰싹. 찰싹.

"아가! 아가! 정신 차려!"


거칠고 투박한 손바닥이 온 얼굴에 사정없이 내려쳐집니다. 두개골까지 흔들리는 것 같은 강한 충격에 눈을 뜨지만, 이내 엄청난 고통이 휘몰아쳤습니다. "아아아아악" 있는 힘껏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칩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 허억. 허억."


패닉 상태에 빠진 것 같은 아저씨의 거친 숨도 연신 얼굴을 때립니다. 역한 술냄새가 코끝을 찔렀습니다.


다리에서는 피가 솟구쳤습니다. 갈기갈기 찢어진 근육 사이로 하얗게 빛나는 복사뼈가 눈에 들어옵니다. 1톤 트럭 바퀴에 깔려 제멋대로 찢긴 제 다리였습니다. 무슨 상황인지조차 감이 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아저씨는 저를 옆자리에 태우고는, 콘솔박스를 뒤져 기름때와 먼지가 덕지덕지 엉겨 붙은 걸레 한 장을 꺼냈습니다. 빨래는커녕, 물 한 번 적시지 않은 것 같은 더러운 걸레로 제 다리를 대충 감쌌습니다. 지혈을 위해서였겠죠. 더러운 기름때 사이로 붉게 핀 꽃이 빠르게 걸레를 물들입니다. 금세 축축해집니다. 더럽고, 불결하고, 무서웠습니다. 다리를 감싼 걸레를 벗겨 집어던졌습니다. "더러워. 싫어! 엉엉."


또다시 하얀 뼈가 드러나고, 또다시 피는 쉴 새 없이 솟구칩니다.  아저씨는 울부짖으며 병원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창문 사이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나무가 무섭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정신을 잃었습니다.


"여기요, 여기!"

"어머 세상에, 어떡해."


그다음 기억하는 장면은 병원입니다. 던져지다시피 의사들의 품에 안겼습니다. 마취라는 것도 했긴 했겠죠?지혈과 동시에 커다랗고 굵은 바늘로 다리가 꿰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늘이 살갗을 파고들 때마다 비명을 질렀습니다. 몸부림치는 7살 어린아이를 잡기 위해 성인 대여섯 명이 들러붙었습니다. 


병원은 맞지만, 응급실은 없었습니다. 진료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무실 정도 크기의 공간에서 대기용 의자에 눕혀졌고, 다급히 응급처치가 이루어졌습니다. 문밖은 구경하는 어른들로 북적였습니다. 웅성웅성. 그 이후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저는 기절을 했거나 아니면 마취약이 뒤늦게 의식을 잠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피를 5분만 더 흘렸어도, 아이는 죽었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눈을 떴습니다. 엄마는 울고 있었고, 의사 선생님은 제 상태를 보며 하늘이 도왔다고 얘기했습니다. 몸이 부서질 것만 같이 욱신거립니다. 새빨간 혈액 주머니와 수액이 주렁주렁 달렸고, 다리는 천장에 연결된 줄에 매달렸습니다. 원래의 굵기보다 두 배는 더 두꺼워진 듯, 두툼한 붕대에 감긴 모습이었습니다.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지만, 냉혹한 현실이었습니다. 수혈을 한 달가량 계속 받았습니다. 피를 너무 많이 쏟았고, 수혈팩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혈액형이 맞는 가족들이 총출동해 피를 뽑았지만, 여전히 피가 모자라 수술을 미뤄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하늘이 도왔던 게 맞았나 봅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대요. 추석맞이 음식을 하던 엄마는 밖에서 혼자 놀고 있을 제가 신경이 쓰였다고 합니다. 이쯤이면 심심하다고 집에 기어들어와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더랍니다. 아이는 조용하면 사고를 친다,라는 진리는 어김이 없었습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문밖을 나선 순간, 엄마는 혼절하셨다고 합니다. 도로 위에 혈이 낭자했고, 제가 신고 있던 신발은 짓이겨 피를 뒤집어쓴 채 나뒹굴고 있었으며, 저는 사라지고 없었으니까요.



"아저씨, 술냄새 나. 싫어! 저리 가!"


제가 정신을 잃기 전, 소리쳤다고 합니다. 음주운전이 맞았습니다. 아저씨는 경찰조사를 받고 바로 유치장으로 직행했습니다.


아저씨의 가족들은 매일같이 엄마를 찾아와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제발 합의해 달라, 자신도 또래 아이를 키운다, 아이 아빠가 감옥 가면 어떻게 사느냐. 음주운전에다 무면허였기에 처벌은 불가피했지만, 조금이라도 감형을 받기 위해서 피해자와의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모양입니다.


가해자와 '아는 사이'여서 더 슬프다고 해야 하나요. 당시 엄마아빠의 유일한 바람은 제가 깨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저것 재고 따질 정신도 없었고 그저 기도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겁니다. 다행히도 제가 죽지 않고 깨어났고, 엄마아빠는 하늘에 감사해하며  합의를 해주었다고 했습니다. 


죽지 않은 게 어디냐, 또래 자식이 있다니 그것도 마음이 쓰이고, 어땠든 처벌은 받게 되니 이쯤에서 합의해 주자, 싶으셨대요. 물론 나중에 후회하셨지만요.



아시다시피, 백령도는 육지에서 너무나 먼 시골이었습니다. 응급처치만 가능했을 뿐, 수술은 불가능했습니다. 만약 사고 당시, 제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면 헬기로 후송이 됐을 텐데, 아쉽게도(?) 그 정도는 아니었대요.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한 뒤, 수술을 받기 위해 배에 올랐습니다. 당시에는 쾌속선이 없었습니다. 백령도에서 인천까지, 지금은 4시간 남짓이면 충분하지만 그때만 해도 최소 10시간은 걸렸습니다. 이것도 날씨가 좋고 물결이 잔잔해야 가능한 시간입니다. 새벽에 배를 탔는데,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이 되어서야 인천부두에 도착했습니다. 부두에서 대기하고 있던 앰뷸런스를 타고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몸이 성했다면 그리 길지 않은 10시간이었지만, 제게는 최악의 10시간이었습니다. 간신히 응급처치만 해놓은 탓에, 혈액순환도 원할하지 않았던 탓에, 배에 있던 10시간 동안 상처는 곪고 썩기 시작한 겁니다. 이미 괴사하기 시작한 살과 근육을 되살릴 방법은 없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붕대를 풀었을 때, 지켜보던 의료진이 경악을 했을 정도로 제 다리는 엉망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이의 다리를 절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썩은 살을 도려낸다고 해도 남아있는 살이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응급 수술을 앞두고 의료진은 엄마아빠에게 브리핑을 했고, 사인을 종용했습니다. 엄마는 오열하다 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모든 이야기를 눈을 감은 채 듣고 있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왠지 눈을 뜨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꿈인 것 같았고, 꿈이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이었습니다. 엄마는 울부짖었고, 아빠는 주저앉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는 난처하지만 완강했습니다. 눈을 더 질끈 감았습니다. 이대로 눈을 뜨면 금방이라도 제 다리가 잘릴 것 같았습니다. 쓰러지는 엄마에게 사람들이 몰려들고, 저 역시도 정신줄을 놓아버렸습니다.


  '내 다리를 자른다고...? 내 다리가 없어진다고...? 내 다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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