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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커엄마 Feb 10. 2023

"왜 '슬의생'을 좋아하세요?"

트라우마 극복기 1

얼마 전, 의사 선생님들과 가볍게 식사하며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분야든, 전문가를 만나면 궁금한 게 참 많습니다. 특히나 '병원'이라는 곳은 제게 특별한 곳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종달새처럼 쉴 새 없이 참 많은 질문을 드렸습니다. 


왜 의사를 꿈꾸게 됐는지? 어떻게 공부했는지(매우 궁금)? 막상 의사가 되어보니 어떤지? 어떤 점이 제일 보람되는지 등등. 자리에 계신 선생님이 여러 명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질문 세례를 받던 선생님이 "저 지금 면접 보는 거 아니죠?"라고 하실 정도였거든요. 


그리고 그 질문의 배경에는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있었습니다. 정말 '슬의생' 같은 선생님들이 존재하는지, 냉철한 모습 뒤에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인간미도 존재하는 것인지. 그러면서 물으시더군요. 


"왜 '슬의생'을 좋아하세요?" 


출처 : TVN 홈페이지


의사들의 '특별한 우리들의 평범한 매일'을 써 내려가는 드라마가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드라마 속 선생님들이 현실에서도 존재한다면요, 평범하지 않았던 저의 교통사고와 병원 생활도 이제는 고통의 빛이 바래 '평범'해질 것 같고, 어떻게 보면 때로는 '행복'하기도 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드라마를 보면서 그런 상상을 했고, 병원에 대한 저의 트라우마를 극복해 보는 시간이기도 해서. 그래서 '슬의생'을 좋아하고, 시즌3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7살 때,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들판이 누렇게 물들어가고 가을바람에 벼들이 서로의 몸을 비비며 고개를 숙이고 익어가던 때, 뾰족한 밤톨이 익어가고, 솔방울이 마르기 시작해 땅으로 떨어질 준비를 하던 때. 산이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하고, 산너머 지는 노랗고 붉은 노을이 너무도 고와 어린아이마저도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는 가을의 길목이던 날! 추석 즈음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스산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귀찮게 하지 말고 저기 가서 혼자 놀고 있어."

어른들은 큰집에 모여 명절 준비를 하기에 바빴습니다. 시골에서 7살 꼬맹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자연과 어울리는 것뿐이었죠. 우리 오빠도, 사촌 오빠도 모두 학교에 갔습니다. 동네에 꼬맹이라고는 저밖에 없었습니다. 하릴없이 집 앞에 홀로 앉아 돌멩이를 갖고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죠. 


"여기~패스! 패스!!"

"꺄아악. 하하하"


큰집댁 바로 앞에는 중·고등학교가 있었습니다. 켜켜이 쌓아 올린 높은 담벼락 너머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아마도 축구를 하는 것 같은 오빠들의 외침과, 아마도 이를 구경하며 소리를 지르는 언니들의 웃음소리였겠죠. 청명한 가을 하늘을 가득 메웠습니다. 땀을 식혀주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기라도 하는 듯, 적당히 불어오는 가을바람마저 운동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하나의 미장센같았습니다. 듣다 보니 샘이 났습니다. '나는 이렇게 심심한데, 언니 오빠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 거야?'


국민학교(이제는 초등)도 아니고, 중·고등학교는 '커~다란' 언니, 오빠들만 가는 곳, 7살 꼬맹이에게는 아직은 두려운 미지의 공간이었습니다만, 그날따라 용기가 났습니다. '나는 비록 7살이지만, 한 번 가서 구경할 수는 있잖아?' 무엇에라도 홀린 듯 스윽 일어나 길을 건너게 됐습니다. 


저 멀리서 파란색 1톤 트럭 한 대가 보입니다. 영화 <여고괴담>에서 최강희 배우의 복도씬의 느낌이라고 하면 감이 오실까요. 트럭은 매우 빠르게 달려왔습니다. 제 기억 속엔 슬로 모션처럼 매우 느리게 다가오는 모습으로 또렷하게 남아있지만요. 


쿵. 


쿵. 


쿵.



"퍽"


"끼이이익."


7살의 어린아이는 1톤 트럭에 치이고, 바퀴에 끼어 끌려갔습니다. 얼마나 끌려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운전대를 잡았던 아저씨는 "아이가 치인 줄 몰랐다."라고 횡설수설했다고 했습니다. 무면허에, 만취운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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