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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데이 11월 11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오스카와일드였던가? + 와신상담

by 파리외곽 한국여자

오늘 화요일,

2025년 11월 11일,

프랑스에서는 휴전협정일로 공휴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집 딸내미 학교도 노는 날이네요


어제 월요일은

샌드위치데이 bridge day,

le pont 11 novembre 였습니다.


'토-일-월-화-수' 이렇게 휴가를 떠나는 이도 있다고 합니다만, 바로 지난 주 2주간의 투쌍방학 후 또 저런 호사를 누리는 그 소수가 우리 동네에 있을 지 모르겠네요, 하기사 우리 동네에게 잘 먹고 잘 살고 여유로운 집도 꽤 있내 눈에 안보인다고 없다고 할 수는 없죠.

당장에 학교 옆에 사는 토박이 Anna네만 봐도 Neuilly sur Seine 비싼 동네 사람 못지않게 품격있어 보이고, 진짜 거기는 양가 할아버지 애 아빠 애엄마 심지어 개도 순하고 평온한 미소를 장착하고 있는데요... 그 집이랑 친하게 지내려고 하는 엄마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갑자기 눈에 선하네요.


어쨌든, 어제 학교는 열렸었고 아이 픽업 때 큰 변화는 없어 보였습니다.


Aucun pont n'est donc prévu pour le 11 novembre. 교육부에서는 샌드위치 아니라고 하지만, 뉴스에서도 놀러가는 사람 얘기하고 또 자신이 살고있는 동네를 내가 너무 무시하는가해서 아이에게 물어보니 27명 중에서 7명이 안왔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네요.


D'après le calendrier scolaire de l'année 2025-2026, établi par le ministère de l'Éducation nationale, les écoliers, collégiens et lycéens ont cours le lundi 10 novembre. 수업은 있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여튼 어제는 학교를 안가도 크게 학교에서도 문제삼지 않는 건 확실합니다.


돈만 있으면 어디든 못가겠냐

돈만 많으면 어디가서도 잘 살지,

하던 누군가의 말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솔직히 나도 바캉스 때 바캉스 떠나고

샌드위치데이에도 놀러가고 그러고 싶은데..


이게 이렇게까지 어려운 일일줄..

참말로 난 몰랐었네..


질량 보존의 법칙..

적용되지 않는 것이 없구나..


내일, 수요일은 동네마다 다르지만 여기 파리외곽에서는 학교가지 않는 날입니다. 파리 에펠탑이 한 눈에 들어오는 쎄느강변 고층 아파트에 살던 주재원 남편을 둔 어떤 엄마 집에 놀러 가서 이런저런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 집 딸내미는 사립을 다니고 있는데, 수요일도 오전에 학교를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 대신 월화 목금, 학교를 3시경에 마치구요. 우리 동네는 수요일에 학교 안 가는 대신에 오후 4시 30분에 마치거든요.


어쨌든 오늘 화요일, 오늘 아침 저희는 여전히 집에 있습니다. 지난가을 방학 2주간도 집에 있었지요.

그래서 뭔가 할 일이 필요한데, 오늘 오후 어디 가서 어떻게 놀아야 할까요..


어제가 올겨울 들어 가장 춥고 비도 흩날리고 습한 날이었고, 오늘도 어제처럼 아침부터 안개가 끼고 음산하고 춥고 습해서 근처에 공원을 가서 뛰어놀 엄두도 나지 않네요.


그래서 '스케이트 연습을 하고 싶은 아이들은 어디 어디로 올 수 있고 일단 신청을 하라'라고 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빙상프로그램 담당자가 일요일 오후에 Whatapp에 설문식으로 올렸고,

8명이 Oui 위,를 바로 선택하더라고요.


저는 조금 망설여지더라고요,

시간은 11시에서 12시까지로 딱 좋았는데,

집에서 거리가 25킬로 정도로 그렇게 먼 것은 아니지만,

국도와 고속도로 그리고 파리외곽 순환로까지 끼고 있는 애매한 위치라,

현재 수동차를 운전해서 10킬로 미만의 곳만 사부작사부작 다니는 터에..

4~5단으로 가다가 다운 쉬프트할 때 덜컹거리다가 또 시동까지 꺼지고 그러면 어쩌나..

수요일에 어차피 오전에 스케이트수업 있는데..


제이도 휴일이기는 하지만 내가 운전을 시작하면서 맘을 좀 놓은 것 같더라고요,

가고 싶으면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은 자신은 안 가고 싶다는 거잖아요

뭐든 시원하게 자신의 의견을 답변하지 않는 이라 이제는 내가 알아서 해석하고 있거든요.


나도, 아니, 내가.

자율성을 더 더 더 더 회복해야 한다,

이게 맞죠.


그렇게 자율성 완전 회복이 되지 못한 나는,

다른 엄마 아빠들처럼 빠른 속도로 oui를 선택하지 않았고,

non농 이것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하지 않음'도 선택이었다는 것을 추후 알게 되지요.


어제저녁에 '8명 신청한 아이들은 confirmé 컨펌되었다'라는 톡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운전해서 한번 가봐? 말아 가봐 말아...' 하다가 대중교통을 확인해 보니 1시간 40분이 기본으로 확인됩니다. 도보 몇분, 버스 몇 번, 트램 매트로 외곽전철 등 각종 대중교통을 믹스해서 보여주는 데..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

OUI-NON 이 두 가지 간단한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8명이 위라고 했다면, 나를 포함해서 적어도 한두 명은 선택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아마 '어떻게 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데텍시옹 이 그룹에 확실히 몇 명이 있는 지도 모르겠네요.

알고 보면, 선택하지 않은 이는 나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 8시 30분.

딸내미가 쿵쿵 콩콩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때 나는 7시 50분에 잠을 깼지만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통역 가능 문의 카톡을 보고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고요, 동시에

'제때 제대로 선택하지 않음'도 현재 후회나 기쁨을 줄 수 있는 나름의 선택이었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끼며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통탄하고 있었습니다. 아까 오전 8시 20분에, 오늘만 다른 동네에서 하는 저 스케이트 수업에 운전해서 가기로 결심을 하고 OUI를 눌렀는데, 협회회장이 불가하다고 알려왔거든요.


추가금액이 발생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나도 oui를 눌렀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어쩌면 얄짤없는 결정에 속상할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도 저 두 감정이 전혀 들지 않고, 오히려

단호하고 우유부단하지 않은 모습에

'엄지 척'을 바로 누르고 있던 나.


'이랬다 저랬다, 이럴까 저럴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하지 않는

그녀의 거절 앞에서 나는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네.. 너무 감사해서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싶네요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그런 단호함 뒤에 썼다 지웠다 하던,

혹은 한 글자 한 글자, 1분 이상의 그 시간, 그 정성.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그냥 받아줄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그러지 않는 그 벽 앞에서

이제 두드리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으려구요.

‘trop tard. 너무 늦었다.‘라잖아요.


언행의 결과가 부메랑처럼 내게 다시 돌아온 것일뿐.

내가 선택한, 혹은 선택하지 않은 결과일뿐.

그녀도, 그도,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죠.

결국 출발점은 ‘나‘인걸요.


2025년 11월 11일 휴전협정일

8시 25분,

내가 조금 더 성숙해진 시간입니다.


10년 이상 바닥을 치고

11년째 되는 올해.. 연말..

조금씩 조금씩 수면 위로 상승하고 있는 나,

오늘도 그렇게 하나 배웠습니다.



제이가 지난 10월 24일인가 23일인가 금요일,

자기 새엄마와 아빠, 그리고 엄마를 방문하고/방문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집에 와서 열받아서 보일러 설정을 모두 건드리고는 술 깨고 나서는 자기는 보일러를 건드린 적이 없다는데..

그 이후로 보일러가 돌아가지 않고

거실 온도가 현재 15도 이하인데..

더구나 날이 습해서 더 춥고 음산하게 느껴집니다.


저기를 딸내미가 맨발로 내려가서 맨발로 앉아서 기침을 하면서

유튜브로 마인크래프트인가 뭔가 하는 영상을 보고 있을 것 같네요.

언능 내려가야 합니다.

라이에이터도 틀고, 커튼도 열고, 베타와 구피 그리고 코리도라스 밥도 주고..

오븐도 예열해서 크와쌍도 굽고

아이 초코우유도 만들어 데우고

내 홍차도 잘 우려서 우유로 곱고 부드럽게..

뭐라도 마셔야겠습니다

일단 아이방과 제방 라이에이터를 꺼야겠네요


벌써 9시 5분 전입니다.

오늘 하루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어딜 가든 안 가든

일단 내려가야 합니다.

아이 뭘 좀 먹여야 하니까..

밥. 먹고 생각하려고요..


밥...


밥도 밥이지만..

정신줄부터 단디 챙기자

숙제: 푹 쉬면서 가족의 정을 듬뿍 느끼며 즐거운 시간 보내기

férié : Armistice 1918


11월 11일 : 프랑스를 위해 전사한 모든 군인을 기리다.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매년 11월 11일, 프랑스인들은 전투에서 쓰러진 전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모입니다. 1918년 휴전 협정 기념에서 시작된 이 날은 20세기 동안 국가적 결속과 프랑스를 위해 죽은 모든 이들에 대한 기억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매년 11월 11일, 프랑스는 잠시 멈춥니다.


현재의 소란에서 벗어나 몇 시간 동안 과거를 되새기고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합니다. 수십만 명의 남성들, 오직 집단적 기억의 힘만이 그들에게 여전히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이들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11시(또는 그보다 일찍)에 종소리가 울리고, 36,000개의 전몰자 기념비 앞에서 깃발이 내려집니다. 1920년대에 세워진 이 기념비들 앞에는 선출직 공무원들, 퇴역 군인들, 그리고 학생들이 모입니다. 마을 중심에 자리한 이 기념비들에는 전선에서 전사한 모든 남성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11월 11일은 무엇보다 1918년 휴전 협정을 기념합니다. 그날, 연합군과 독일 장군들은 콩피에뉴 숲의 르통드 글라드(재협상 장소)에서 포슈 원수의 참모 열차에서 가져온 식당 차량으로 개조된 객차에서 만납니다. 정확히 오전 5시 15분에 휴전 협정이 서명됩니다. 11시에 휴전이 발효됩니다. 몇 년 후, 그 유명한 객차가 놓인 철도 선로 위에 기념관이 건설됩니다.4년 넘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 끝에 제1차 세계 대전의 대포 소리가 멈췄습니다. 이 협정은 프랑스와 그 동맹국들, 그리고 독일 간의 전투를 종결시켰습니다.


이 신화적인 날은 수십 년에 걸쳐 여러 변화를 겪었습니다. 1920년, 공화국은 대전 중 사망한 무명 용사에게 처음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2년 후, 10월 24일 법률에 따라 국가 기념일이자 공휴일이 됩니다.


1923년 11월 11일, 앙드레 마지노가 개선문 아래에서 매일 저녁 되살아나는 추모의 불꽃을 제막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1940년 11월 11일은 나치에 대한 강렬한 저항의 무대가 됩니다. 개선문 앞에서 수천 명이 모인 집회가 점령군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됩니다. 이는 오늘날 공개적인 저항의 첫 번째 행위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모든 프랑스 군인에 대한 경의로 1975년, 기념식은 프랑스를 위해 전사한 모든 군인으로 확대됩니다. 따라서 탈식민지 전쟁과 기타 다양한 분쟁의 전사자들이 포함됩니다. (1,000만 명의 사망자, 그중 프랑스 군인 140만 명 등)


2012년에는 해외 작전 중 사망한 군인들도 포함됩니다. 이는 국제 임무에서의 프랑스 참여를 상기시킵니다.

2018년 11월 11일, 개선문에서 대전 휴전 100주년 기념식이 열립니다. 이 행사에는 약 70개국 외국 정상들이 참석합니다.


11월 11일은 오늘과 내일의 시민들에게 1914-1918년 참호에서 태어난 기억의 의무가 국가 통합의 견고한 기둥으로 남아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이 결속과 추모의 날은 또한 불안정한 상황에서 현재와 미래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국가와 군대가 상호 신뢰의 유대를 강화할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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