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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칭찬 한 스푼 가능하시겠습니까?

어제 영혼까지 탈탈 털렸더라도..

by 파리외곽 한국여자

9시에 스케이트수업 11시에 댄스수업

엄마들과 아이들 모두 그룹, 수준, 평가 등으로 보이는 듯 안 보이는 듯 존재하는 ‘부류‘랄까 ’격차’랄까.. 뭔가 ‘끼리끼리’문화가 이 곳에도 있다. 난 이 그룹에 속해있지만 그래도 쟤네들이랑은 또 달라,하는 우월감을 유지하기 위해 75분간 아이들이지만 눈빛에서 상향등을 켠 듯 가열찬 욕망이 터져 나온다.

엄마들도 그 자릴 지키기 위해 서로 정보를 나누고 한걸음 더 앞으로 내 딛기 위해 긴장감을 최상으로 유지한다.

일단 이 적자생존의 스포츠 세상에서 나는 모든 것이 새로워서 요래조래 살펴보는 것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하련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다.


제이에게 월요일저녁인가 일요일저녁에 칭찬을 했다


“그래도 20년을 한 직장에서
그렇게 자리 지키며
같은 일 해내는 거
쉬운 일 아닌 거 안다.
얼마나 힘들었니.
힘든 시간 보내느라 고생이 많았다
그 인내면, 술도 끊을 수 있다고 본다”


그건 못할 거 같아
너 그래도 술에 대힌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구나.


퇴근 후 한병씩 사와서

지하에서 숨어서 마시는 혼술.

밥 먹을 때면 징징거리거나 야볼야볼 쥐이프쥐이프..

10년간 일 마치고 누구랑 즐겁게 술 마시는 것도 아니고 무슨 하수구 그 아래, 어두운 그곳을 요리조리 다니는 파리의 쥐들 마냥 지하실에서 혹은 어디 구석에서 술을 마시고 저녁 먹으러 올라와서 감정쓰레기통을 지마누라와 지딸내미로 지정하고 나대면 항상 더러운 꼴로 저녁시간이 막장 혹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런데 저 날 저 말을 들어서인지 뭔지는 몰라도 타이밍 적절하게 조용히 밥을 먹고는 그냥 이층으로 올라가서 잠을 자더라. 피곤하면 지랄하지 말고 그냥 자라,고 했던 말을 이렇게 실천해 주다니..

놀랍고 감사할 지경이디.


어제도 쓴 알코올이 저 몸을 취하지 못했고 제이는 취하지 않았다. 내게는 마치 악령이 저 몸을 취하고 막무가내로 한 인간을 그리고 한 가족을 뒤흔드는 듯, 혼자 숨어 마시는 저 쓴 술이 더럽게도 혐오스러웠다. 상대하는 나 또한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그 파괴력이 이제는 두렵고 피하고 싶은 끔찍한 존재이다. 그런데 저것이 어제도 쥐죽은 듯 조용했다.


어제는 공휴일이라, 조금 집에서 거리가 있지만 확 트인 곳에 가서 아이 놀이터에도 가고 배드민턴도 치고 오면서 제이가 홍합을 사서 저녁을 준비하고 싶대서 오케이는 하고 오는 길에 큰 수퍼에 들렀다. 요리용 vin blanc백 포도주를 또 들이마시고 저녁이 악몽으로 돌변할까 걱정도 됨직한데 어제는 그냥 이상하게 별 걱정이 없더라.


그렇게 어제도 괜찮았고 오늘도 점심까지 아무런 조짐이 없다. 어제 또 나는 배드민턴에도 진심 한도 초과로 어깨가 아프지만 마음은 꽤 평온한 상태다. 수요일은 재택이 아닌데 오늘 빙상장 나갈 때 잠에서 깨서 겨ㅣ단을 내려오는 그에게, 아직 샌드위치데이냐고 하니,

오늘.. 회사 가서 일하고 싶지 않았어

라는 대답이 이어졌다.

방어하는 모습이 역력하고 신경질적인 어투였지만, 난, 오히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재택을 하기로 결심한 모습이 더 건강하다고 판단했다. 그래, 그렇게 네 마음을 표현하라구 바보탱이야.


그래, 잘했어.

아마 지난밤 지하 보일러 앞에 옆에 앉아 이렇게 저렇게 고쳐보려고 애썼을 수도 있고, 화상회의에서까지 엄청 딱였을수도 있고.. 지난 ‘새엄마-지아빠-지엄마‘이슈에서 벗어나도 여전한 문제들 더미에서 계속 길을 잃고 헤매야하는 기괴한 팔자.


잠시 앉아 쉬면서 숨을 돌려야 하는 건 당연지사.


이 인간을 고쳐 사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10년 이상 걸렸지만.

나는 너를 고칠 수 없어.


이제, 내가 더 독립적인 인간이 되어 이 가정을 이끌던가 아니면 저 인간과 개별적으로 자립하는 길을 갈 것인가,

이 두 갈래길에서, 나 스스로 결심하고 결단하는 일만 남았다.


그 어떤 선택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보장도 기대하지 않는다.


일단 오늘은 아이 학교가 없고

오전 활동은 아이도 나도 잘 해냈다

만족한다. 감사한 일이다.


오후에도 아이와 잠시 나가야겠다

보일러가 돌아가지 않는 집엔 온기가 없다는 이유로

밖에 나갔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면 온기가 있게되니까


그리고 제이는 혼자 남아 회사 일을 이어가겠고..


고양이도 온몸으로 찬 공기를 맞아내고 있다

밥과 우유를 기다리고

우리 손길이 닿으면 ronronnement 하면서..


네가 네 영혼을 보살피지 못하고

네 삶을 방치한다면,

구원자 따윈 없다.


내가 내 영혼을 보살피지 못하고

내 삶을 방치한다면,

구원자는 없다.




착각 / 현실


내 칭찬 → 금주 / 제이는 20년 습관 + 내면 동기로만 움직인다


내가 통제할 수 있다 / 타인 통제 불가 → 나만 지킬 수 있다



착각이 방어기제인 이유

‘내가 바꿀 수 있다’

→ 책임감으로 고통 연장

→ 10년간 “괜찮아질수도…” 반복

→ 번아웃


‘내 칭찬이 효과 있었다’

→ 희망 중독

→ 한 번 조용하면 “드디어!”

→ 다음 날 실망

→ 번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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