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이형제: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展
'인간의 무의식, 저 어딘가로 초대합니다'라는 문구와 검은 배경, 공포스러운 퍼핏들의 사진은 단숨에 시선을 끈다. 한여름에 어울리는 오싹한 공포영화 포스터 같기도 한 [퀘이형제: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展]의 팜플랫이다.
누군가에게 퍼핏(꼭두각시)은 그 자체로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소재다. 팔다리가 줄에 매달려 사람이 조종하는 대로 이리저리 움직인다는 속성과, 부자연스럽고 기이한 움직임, 변화 없는 표정과 같은 요소는 공포영화에 퍽이나 어울린다. 저주받은 인형 '애나벨'이나 '사탄의 인형 처키'등 사람을 닮은 인형과 관련해서는 괴담도 많고, 우리 모두가 잠든 사이에 몰래 움직일 거라는 생각은 상상 속에서도 하기 싫다.
무의식은 또 어떠한가. 백과사전은 무의식을 자신과 주변 환경에 자각이 없는 상태, 즉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두뇌의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영역,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불합리의 영역이기에 우리는 궁금해하고 들여다보고 싶어 하면서도 쉽게 공포를 느낀다.
퀘이형제는 이러한 요소를 모두 끌어안으면서 한 단계 높은 경지로 나아간다. 정교함에 대한 집착과 예술적 헌신으로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창조한 것이다. 퀘이형제는 기존의 관습을 깨는 미학적 시도와 스톱모션 기법을 이용한 퍼핏 애니메이션으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계의 큰 업적을 남겼고,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감을 끌어내는 그로테스크함은 팀 버튼, 크리스토퍼 놀란 등 다수의 영화감독에게 영향을 주며 거장으로 자리 잡았다.
퀘이형제가 누구인가?
퀘이형제는 194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이들은 미국 필라델피아 예술대학과 영국 런던왕립예술대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이때 유럽의 시각언어(visual language)를 접하고 섬뜩하면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선입견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사유의 흐름과 무의식의 작용을 표현하는 초현실주의에 매료되었다.
이들은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면서도, 주말이나 학교 휴일엔 영화를 몰아 찍을 정도로 영화 제작에 열중이었다. 이들이 다른 초현실주의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초현실주의자들은 무의식적 충동과 우연에 의한 결과를 강조한 반면, 퀘이형제는 무의식과 우연을 강조하면서도 영화 제작 과정에 대한 실질적인 인식을 기반으로 작업했다는 점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미국에서 그래픽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상업적인 일을 주로 받았으며 신문사에서 그래픽 다자이너로, 수영장 안전요원으로, 식당에서 웨이터를 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럼에도 밤이면 예술적 소명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는데,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흰 종이 위에 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이것이 그들의 종이 작품 시리즈인 '블랙드로잉'이다.
블랙드로잉
블랙드로잉 시리즈는 대체로 어둡고 음울하다. 폭력과 불안, 성적인 요소가 섞여 있는데 퀘이형제는 이 작업을 통해 사람들의 감각을 불러일으키고자 의도했다. 여기엔 이들이 유럽에서 보고 느낀 것들이 많이 반영되었다. 홀로코스트의 역사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일상에서 마주했던 소소한 물건까지 제목이나 주제로 나타난다. 하지만 납작한 종이에 표현하는 이미지는 영화 제작을 맛봤던 이들에겐 부족했던 것 같다. 퀘이형제는 블랙드로잉 작업을 하면서 사운드의 부재에 갈증을 느끼고, 영화 작업에 대한 열망은 점차 커졌다.
도미토리움
퀘이형제는 영국왕립예술학교 시절 친구의 제안으로 유럽에서의 퍼핏 애니메이션 제작을 시작하게 된다. 이들도 퍼핏 애니메이션은 처음 접하는 장르였기에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혼란스러움도 컸다. 하지만 형제가 합을 맞춰 다양한 연출을 시도했고 그들만의 작업방식을 구축해 나갔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도미토리움'이다. 도미토리움은 '잠자는 곳' 또는 '묘소'를 뜻하는 단어로 영화의 배경 세트가 되는 미니어처 형태의 데코박스다.
퀘이형제의 관심이 전시장으로 오면서 관객들은 그들 영화에서 보았던 경이로운 세계를 전시물의 형태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퀘이형제는 이들의 도미토리움이 전시장에서 그저 과거 영화의 장면을 재현하는 방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관객의 시각적 체험을 극대화하여 고정된 감각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나아가게 하고자 의도했다.
도미토리움 속 퍼핏들과 소품, 배경의 아주 작은 부분 하나까지 퀘이형제의 집착적인 정교함과 섬세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퍼핏이 입고 있는 옷이나 소품들엔 예상치 못한 일상의 재료가 풍부하게 사용되어 굉장히 입체적인 느낌을 주는 동시에 고정되어 있는 퍼핏에서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한 육체적 감각까지 느끼게 한다. 바닥에 떨어진 새끼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민들레 홀시까지도 한 톨 한 톨 표현한 걸 보고 그 디테일에 소름이 돋았다. 쌍둥이 형제가 함께하는 작업이 시너지 효과를 낸 걸까, 이들에게 퀘테일(퀘이형제+디테일)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을 정도다.
퀘이형제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가 함께 상영되는 전시실에서 영화에서 살아 움직이는 퍼핏들과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도미토리움 속 퍼핏들이 같은 애들이라는 걸 상기하면 오싹한 느낌은 배가 된다. 영화에서 사운드를 중요하게 생각한 퀘이형제는 미리 사운드를 받고 그 리듬에 맞게 퍼핏들을 움직이고 연출했다고 한다. 덕분인지 영화 속 퍼핏들은 춤을 추듯 움직이면서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시각 체험의 극대화
퀘이형제는 확대경을 사용하여 도미토리움을 들여다보는 관객이 그 순간 도미토리움 속으로 끌려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전시장 초입에 전시된 확대경 렌즈에 무방비하게 눈을 댔다가 그곳에서 펼쳐진 경이로운 시각 체험에 깜작 놀랐고 말았다. 작은 박스 안에 더 작은 퍼핏들과 소품들은, 확대경을 거쳐 우리의 시각으로 들어오며 금방이라도 닿을 듯한 직접성을 가지며, 시선에 따라 함께 움직이면서 그 풍부한 질감과 디테일을 자랑한다.
확대경으로 들여다본 세계는 누군가의 끔찍한 악몽 같기도, 무의식에 잠재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는 것 같기도 하다. 작은 구멍을 들여다보는 행위가 주는 관음적인 느낌 때문에 더 외설적이고 퀘이형제가 영화에서 보여준 은밀한 시선에 공모하는 것 느낌도 든다.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공간, 어딘가 느껴지는 외설적인 분위기, 우울이나 절망, 또는 공포가 뒤섞여 오래 들여다 보기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확대됐을 때 더 빛을 발하는 광적인 디테일의 아름다움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며 계속 시선을 머무르게 한다.
올여름 예술의 전당에서 펼쳐지는 [퀘이형제:도미토리움의 초대展]에서 직접 그들의 작품을 마주하고 경이로운 무의식의 세계를 체험 해보길 바란다. OR코드를 이용해 이 전시에 특화된 시네마틱 오디오 도슨트를 들을 수 있으니 이어폰을 챙겨 더 생생하게 감상하면 좋겠다. 전시장의 어둡고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배경음악과 구연동화를 읽어주듯 깔리는 내레이션은 난해할 수 있는 작품들의 이해와 감상을 도와줄 것이다.
퀘이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展
전시기간
2020년 06월 27일(토) - 10월 04일(일)
*휴관일 : 매주 월요일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입장마감 : 오후 6시
전시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관람 요금
성인(만19세-64세) - 12,000원
청소년(만13세-18세) - 10,000원
어린이 (만36개월-12세) - 8,000원
주최
전주국제영화제 / 예술의전당
ART BLENDING
주관
ART BLENDING
협찬
DASAN ART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88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