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티아스와 막심 리뷰
자비에 돌란. 그 이름만으로도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먹기에 충분했다. 스크린 속 배우가 두 손으로 화면을 열어젖혀 잊지 못할 충격을 선사한 영화가 있다. '마미'다. 모든 순간을 캡처하고 포스터로 만들어 방에 전부 붙여놓고 싶을 만큼 황홀한 영상미를 뿜어내던 영화를 기억한다. '로랜스 애니웨이'다. 자비에 돌란은 나에게 적잖은 영화적 충격을 주었던, 내용에서 백 퍼센트의 감동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 영상미에서 본전을 뽑아가는 믿고 보는 감독이다. 나는 이 감독 특유의 선곡 센스를 좋아했으며, 넘치는 대화와 넘치는 감정, 미학적으로 뛰어한 미장센 등을 신뢰했기에 기쁜 마음으로 그의 신작, '마티아스와 막심'시사회에 신청했다.
처음으로 가본 시사회, 리뷰를 써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면서 상영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중간중간 메모를 하면서 봐야 하나, 팬과 노트를 준비했어야 하는 걸까 고민했지만 이내 평소와 다름없는 느긋한 자세로 영화 관람에 돌입했다. 그리고 사실 영화가 단순한 구조였기에 따로 암기하듯 메모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물 흐르듯, 인물들의 마음을 따라가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사랑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누구나 사랑에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능숙한 사람은 그만의 방식대로 사랑의 단계를 밟는다. 반면 어떤 이는 자신의 감정을 인정조차 하지 않고 혼란에 빠져버린다. 대표적으로 오랜 친구사이에서 갑작스럽게 스파크가 튄 경우 이를 순간의 실수로 여기려 하거나, 심지어는 없었던 일인 양 행동하기도 한다. 그러다 마지막 순간에 서로 마음을 확인하는 건 청춘 로맨스의 클리셰다. 하지만 그게 동성친구 간에 일이라면,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하다.
'단지 친구 사이의 '마티아스'와 '막심'이 뜻밖의 키스 이후 마주한 세상, 그 시작을 담은 이 순간 뜨겁게 빛나는 우리들의 드라마'
영화는 불과 몇 주에 지나지 않는 짧은 시간대를 담고 있다. 마티아스와 막심이 영화감독 친구의 부탁을 받고 얼떨결에 키스 장면을 연기하는 날부터 막심이 출국하는 날까지. 주어진 시간은 짧은데 둘은 자꾸 엇나간다. 기본적으로 마티아스는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인물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자신에게 찾아온 이상 징후를 자꾸만 회피하기에 바쁘다. 순응한다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니까. 막심과의 키스 후 혼란한 마음은 그대로 겉으로 드러난다. 친구들에게 삐죽거리고, 막심에겐 도를 넘는 망언까지 하며 의도적으로 주변을 괴롭힌다. 나 지금 혼란스럽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은 그의 철없는 행동에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언제 까지 저러고 있을 건가 싶어 고구마 먹은 듯한 답답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몰입해서 보게 되는 것은 이 영화가 둘의 뜻밖의 키스라는 사건보다 그 사건이 몰고 온 파장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마티아스와 막심은 키스를 했다. 이건 분명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지는 하나의 사건이다. 하지만 돌란 감독은 그 순간에 페이드 아웃해버린다. 가족끼리 모여 동생이 완성한 영화를 볼 때도 둘의 키스 장면은 유리창에 비친 모습으로 흐릿하게 지나갈 뿐이다. 나는 감독이 행위 자체보다 그 행위가 몰고 온 파장이 얼마나 강렬한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오래 알고 지낸 동성친구와의 키스에서 우정 이상의 뜨거움을 느꼈다면, 그 전의 세상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 인간에겐 누구나 자신이 누구인지 결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영화를 보면서 물, 또는 푸른색으로 점점 물드는 마티아스에 집중해서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마티아스가 잠을 청한 친구네 방 침대는 물침대였다. 둘이 영화를 위해 키스 장면을 연기할 때 마티아스는 붉은색, 막심은 푸른색 옷을 입었다. 다음 날 새벽 마음의 격랑을 주체하지 못하고 푸른 강물에서 마구잡이로 헤엄치는 마티아스는 넘실대는 파랑 속에서 길을 잃는다. 막심의 환송 파티 날, 괜스레 막심을 못살게 굴던 마티아스는 파란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다. 그리고 이날 둘의 '진짜 키스'가 있다. 그 순간 빗줄기가 시원하게 퍼붓는다. 이전의 키스가 한없이 모호하게 묘사되었기에 후반부 키스신이 주는 감동은 배가 된다. 두 인물의 감정이 최고조로 끌어 오르는 순간이자, 목말랐던 관객들의 갈증에 시원한 빗줄기를 내리듯 감정의 폭포를 쏟아붓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물침대에서 강물, 빗방울로는 이어지는 물의 흐름은 꽤나 기발하다.
마티아스와 막심 외에도 둘의 마음을 진작에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친구들, 막심과 어머니의 애증관계, 뭔가를 눈치챈 듯한 마티아스의 여자 친구, 막심을 자기 아들처럼 챙기는 마티아스의 어머니까지 주변 인물들이 주는 미묘한 긴장감은 단조로울 수 있는 구성에 살을 더한다.
'어떤 우정은 청춘만큼 흔들리고 사랑보다 강렬하다'
자비에 돌란은 "온전히 나 자신이 되어 만든 나와 가장 닮은 영화다. 스스로 질문할 수 있기를... 내가 그랬던 것처럼"이라는 말을 남겼다. 영화는 마티아스와 막심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지만 나는 이 영화가 주는 울림은 둘의 사랑에서 그치는 게 아닌, 둘의 인생이 제2막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변화엔 용기가 필요하다. 삶에 한 번은 자신이 누구인지 결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둘의 경우 앞으로의 인생의 형태를 완전히 바꿔놓을 정체성의 확인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진정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할 때까지의 흔들리는 청춘을 담은 사랑의 시작, 변화의 시작에 대한 영화 '마티아스와 막심'이다.
한 제 / 마티아스와 막심
영 제 / Matthias & Maxime
감 독 / 자비에 돌란
주 연 / 자비에 돌란 & 가브리엘 달메이다 프레이타스
러 닝 타 임 / 120분
등 급 / 15세 이상 관람가
개 봉 / 2020년 7월 23일(목)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공식경쟁부문 초청작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