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라떼와 뉴욕치즈케이크의 조화
조금 걸어서 카페에 왔다. 사실 집에서 더 가까운 카페에 먼저 들렀는데, 서로 경쟁하듯 커지는 사람들 소리와 커피 기계 소리가 너무 커서 그냥 바로 나왔다. 이런 곳은 오후의 한 때를 보내기에 적당하지 않다. 대신 20분 정도 더 걸어 외진 곳에 있는 복층 카페로 왔다. 평일 낮에 여기까지 오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비교적 한적하다.
좋아 보이는 자리가 여러 개 남아있을 때는 어김없이 한참을 고민한다. 오늘 같이 가방을 바리바리 싸온 날에는 더욱, 좋은 자리를 잘 골라 앉는 게 중요하다. 일종의 둥지를 틀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 카페의 두 면에는 큰 창이 나 있는데 한 쪽은 창밖으로 가로수가 보이고 다른 쪽은 동네 뒷산이 보인다. 산이 보이는 창가엔 콘센트가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오늘은 노트북을 챙겨 온 게 아니니 그건 흠이 아니었다. 비등비등하게 좋아 보이는 두 자리를 순서대로 서성이다 비교적 사람들 눈에 덜 띄는 산 쪽 창가 구석 자리로 결정했다. 테이블도 내가 좋아하는 네모 모양이고 의자의 쿠션감도 적절하다. 한적한 공간과 햇살, 편안한 자리. 이런 날은 기분이 좋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각 테이블에서 내가 앉을 수 있는 의자의 가능한 선택지 4개가 남았다. 먼저 앉은 의자보다 창 쪽 의자에 앉는 게 더 안정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엉덩이를 들썩이다 결국 살포시 창가 쪽 의자로 옮겨 봤다. 역시, 더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이다.
최선의 선택들로 도착한 곳에 만족하며 둥지를 튼다. 손닿기 편한 오른쪽엔 가방을, 왼쪽엔 필통을, 그 옆에는 챙겨온 책 두 권을 세팅했다. 이 완벽한 둥지에서 앞으로 몇 시간, 책을 읽고 과제를 할 거다. 든든하게 갖춰진 둥지는 그 곳에서 보낼 시간에 대한 가능성을 보장해준다. 적어도 갑자기 춥다거나, 의자가 불편하다거나, 필요한 걸 안 챙겨왔다는 등의 이유로 빨리 집으로 가고 싶어지는 충동을 방지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축적한 최상의 선택들 가운데 흠이 있다면 아이스라테와 치즈케이크를 함께 시킨 일이다. 카페에 가면 아이스라떼만 시킨다. 체인카페에서 가장 실패확률이 낮은 안전한 음료라고 언젠가부터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떼는 치즈케이크랑 궁합이 좋다. 언제나처럼 아이스 라떼를 주문하고 치즈케이크를 시키려하는데 진열장에 안보여서 다 팔렸냐고 물었다. (이 때 그냥 다를 케이크를 시켰어야 했다.) 있긴 한데. 아직 냉동상태라 15분 정도 녹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셨다. 상관없으니 그럼 아이스라떼랑 같이 준비해 달라고 했다. (이 때 더 명확하게 15분 후 케이크가 녹으면 그때 라떼도 같이 주세요 라고 말했어야 했다)
느긋하게 기다릴 심산으로 자리로 돌아가는 와중에 진동 벨이 울렸고, 얼음털을 단 치즈케이크가 아이스라떼와 같이 나왔다. 이래서는 아이스크림 케잌을 아이스라떼와 먹는 격이잖아! 한여름에도 이렇게 먹으면 추워서 이가 닥닥 거린다.
갓 냉동실에서 나온 치즈케이크가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을 정도가 되려면 정말 15분은 훨씬 더 기다려줘야 할 것 같았는데, 그 사이에 커피는 빠르게 밍밍해져갔다. 아무리 봐도 커피와 디저트를 함께 먹으며 최고로 안전한 맛 조합을 누리려던 나를 위해서 그 둘이 화해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라떼 먼저 다 마시고 후에 케이크만 따로 먹는다. 그치만 목이 막혀 케이크의 엉덩이 부분은 거의 남긴다. 그러는 내내 커피와 케이크 사이의 화해지점이 있을까 틈틈이 신경 쓰느라 책읽기와 과제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역시도 내 선택이다. 오늘 이곳에 앉아있는 것도 치즈케이크를 시킨 것도, 맛조합에 집착하느라 과제에 집중하지 못한 것도. 뻑뻑한 케이크를 삼키다 생각하건데, 역시 최상의 선택에 대한 집착은 정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애초에 정답은 없고 선택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목이 막힌다는 뜻밖의 변수로, 집에 가고 싶다는 충동이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