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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EW H Nov 24. 2021

"이 디자인은 원래..." 헤리티지 포니의 놀라운 사실

100년에 가까운 전기차 역사
90년대 현대자동차 전기차 개발 스토리
헤리티지 시리즈 제작비화


지난 20일, 강남에 위치한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마스터 토크 #헤리티지’가 진행되었다. 이충구 前 현대차 사장, 하학수 현대차 내장디자인실장, 한장현 자동차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인 이번 행사에서는 전기차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 가장 관심을 받았던 내용은 바로 ‘현대자동차 EV 헤리티지’다. 90년대 EV 개발 담당자로부터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역사를 직접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흥미로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과연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을지, 이번 콘텐츠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100년에 가까운 전기자동차의 역사


권규혁 현대자동차 책임 매니저
& 한장현 자동차 칼럼니스트


자동차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전기자동차’라는 기술이 최근에 등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전기자동차는 무려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한때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슷한 수준의 인기를 자랑했다.


20세기 초 전기자동차

실제로 1900년, 미국에서 생산된 자동차 4,192대 가운데 1,575대는 전기자동차였다. 휘발유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생산대수가 936대라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전기자동차가 내연기관 자동차를 압도한 셈이다.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온 데에는 ‘미성숙한 내연기관 기술’의 영향이 컸다. 당시 내연기관은 출력이 낮고 운전하기 어려웠으며, 시동을 거는 것조차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요즘처럼 키를 이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쇠꼬챙이를 끼워 돌리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시의 내연기관 자동차는 매연과 소음에 취약했으며, 차량의 구조도 매우 복잡했다. 즉, 장거리 주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제외하면, 내연기관 자동차는 단점만 수두룩한 자동차였다.


토마스 에디슨과 에디슨 스토리지 배터리를 탑재한 1910 베일리 일렉트릭 빅토리아 페이튼

반면, 전기자동차는 간편한 시동과 편안한 운전을 자랑했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필수 부품인 ‘변속기’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충전 시간이 길고 주행거리가 짧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지만, 내연기관 자동차를 압도하기엔 충분했다.


세계 최초로 컨베이어 벨트를 사용한 대량생산 자동차 ‘포드 모델 T’)

하지만, 전기자동차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장거리 주행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내연기관 자동차가 주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충전을 거쳐야 하는 ‘전기자동차’나, 물이 끓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증기자동차’와 달리, 내연기관 자동차는 순식간에 주유를 마치고 주행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시간적인 측면을 고려했을 때, 가장 우수한 방식은 ‘내연기관 자동차’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같은 시기, 세계 최초로 컨베이어 벨트를 사용한 대량생산 자동차 ‘포드 모델 T’가 등장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전기자동차는 점점 밀려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내연기관 자동차가 세계 자동차 시장의 기준이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기자동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내연기관이 주류로 자리 잡은 이후에도 전기자동차는 틈새시장 공략을 위해 꾸준히 등장했다.

가장 대표적인 모델로는 1959년에 등장한 ‘헤니 킬로와트’를 꼽을 수 있다. 이 모델은 ‘르노 도핀’을 기반으로 제작된 소형 전기차로, 1960년 성능 개선 모델 기준 100km/h의 최고 속도와 100km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자랑했다. 다만 2년간 고작 47대만 판매돼,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일렉트로베어 II

1966년에는 2세대 콜베어를 기반으로 제작한 ‘일렉트로베어 II’라는 모델이 등장했다. 이 모델은 미국의 자동차 제조사 GM이 개발한 시험용 전기차로, ‘532V 은아연 배터리’를 탑재해 129km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확보했다.

커뮤타

곧이어 1967년에는 ‘커뮤타’라는 소형 전기차가 탄생했다. 영국 포드에서 콘셉트카로 제작한 이 모델은 최고출력 5마력을 내는 DC 모터와 납축 배터리를 장착해, 60km/h의 최고속도와 60km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갖추었다. 그러나 이 모델 역시 양산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아미트론

이외에도 아메리칸 모터스 컴퍼니(AMC)에서는 회생제동 기능을 적용한 콘셉트카 ‘아미트론’을 발표했으며, GM에서는 ‘프로그레스 오브 파워’라는 이벤트를 통해 전기차 기술을 포함한 다채로운 동력계 연구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BMW 1602e
80년대 전기자동차

이후 1970년대에 들어서자, 전기자동차는 제한적인 용도로 사용되며 다시금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뮌헨 올림픽에서 마라톤 선도차로 활용한 ‘BMW 1602e’를 손꼽을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80년대와 90년대까지 이어져, 다양한 전기자동차가 등장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199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ZEV(Zero Emisson Vehicle) 정책’을 발표하면서, 메이저 자동차 제조사까지 전기자동차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된다. GM의 ‘EV1’, 토요타의 ‘RAV4 EV’, 혼다의 ‘EV 플러스’ 등의 전기자동차가 연달아 공개된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90년대 현대자동차 전기차
개발 스토리


이충구 前 현대자동차 사장 &
이봉호 前 현대모비스 상무 & 이성범 前 전기차 개발 담당자


이충구 前 현대자동차 사장 & 이봉호 前 현대모비스 상무 & 이성범 前 전기차 개발 담당자)

1980년대, ‘포니 엑셀’을 통해 미국 시장에 이제 막 진출한 현대자동차는 한 가지 난관에 부딪혔다. 환경을 중요시하는 ‘캘리포니아’에서 새로운 배출가스 규제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현대자동차는 이 규정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현대자동차의 시험실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장비에서 고장이 발생해 규정 온도인 25°를 맞출 수 없다던가, 말썽을 일으키는 컴퓨터를 수리하기 위해 울산에서 서울까지 이동한다던가, 한마디로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는 이충구 前 현대자동차 사장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갖은 노력 끝에 배출가스 규제를 통과한 기쁨도 잠시, 현대자동차는 위에서 언급한 캘리포니아의 ‘ZEV(Zero Emisson Vehicle) 정책’을 마주하게 된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단계적으로 시행될 ‘ZEV(Zero Emisson Vehicle) 정책’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판매 모델의 2~10%를 무공해차로 채워야만 했다. 이에 현대자동차는 해결책으로 ‘전기자동차’를 지목했고, 1990년 1월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전기자동차 개발을 위해, 현대자동차는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다. ‘납축 배터리’는 물론, ‘니켈-메탈 하이드라이드 배터리’까지 적용하였으며, 나중에는 지게차에 사용되는 ‘중장비용 배터리’와 ‘산업용 모터’를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배터리를 탑재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내연기관 부품을 모두 걷어내도 배터리를 탑재할 공간이 마땅치 않자, 개발진은 센터 터널을 파내고 새로운 시트를 장착했다.

Y2 쏘나타를 기반으로 제작된 프로토타입

얼마 후, 개발진은 4대의 프로토타입을 완성해냈다. 1호 차와 3호 차는 ‘Y2 쏘나타’, 2호 차는 ‘엑셀’, 4호 차는 ‘스쿠프’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만들어본 전기자동차였기에 프로토타입은 종종 문제를 일으켰다. 모터와 배터리, 배선, 컨트롤러를 모두 연결했음에도 차가 움직이지 않는 일도 있었고, 배터리 전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불꽃이 크게 튀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개발진은 모든 부품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한다.

울산시청에 기증된 전기자동차

3년 후, 현대자동차는 울산시청에 전기자동차를 기증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비록 1회 충전 주행거리는 60km에 불과했으나, ‘무공해차’라는 상징성 덕분에 울산시청에서 공해 단속 용도로 활용되었다.

현대자동차의 첫 번째 수소연료전지차 '싼타페 FCEV'

한편, 수소연료전지 개발은 1998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미국은 빅3(포드, GM, 크라이슬러)의 준비 미비로 ‘ZEV(Zero Emisson Vehicle) 정책’이 사실상 무효화된 상태였다. 그 사이 도요타와 혼다가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이면서, 전 세계 친환경차 시장은 일본이 주도하게 된다.

이를 지켜본 현대자동차 개발진은 ZEV(Zero Emisson Vehicle)의 대안으로 ‘수소연료전지’를 선택한다. 하이브리드도 결국 내연기관이기에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기증된 싼타페 FCEV

이후 현대자동차는 ‘싼타페 FCEV’를 공개하며 수소연료전지차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이는 곧 세계 최초의 양산형 수소연료전지차 ‘투싼 FCEV’로 이어졌으며, 현대자동차는 수소연료전지차 시장의 선두주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토크쇼가 마무리에 다다를 때쯤, 이충구 前 현대자동차 사장은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 개발을 일찍 시작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말처럼, 위와 같은 노력과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아이오닉 5’와 ‘넥쏘’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헤리티지 시리즈 제작비화


하학수 현대자동차 내장디자인실장


하학수 현대자동차 내장디자인실장

토크쇼의 마지막 순서는 이번에 공개된 헤리티지 시리즈(포니, 1세대 그랜저)의 제작 비화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헤리티지 시리즈는 자동차 제조사의 역사를 다방면에서 경험할 수 있는 해외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고 한다.

헤리티지 시리즈 포니
헤리티지 시리즈 포니

먼저 하악수 실장의 개인적인 추억이 깃든 모델인 ‘포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더불어 1세대 포니는 국내에서 찾기 힘들었기 때문에 파나마에서 공수했다는 언급이 있었다.

먼저 익스테리어는 디테일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했다. 사이드미러는 디지털 방식으로 바꾸었으며, 뒷모습은 아이오닉 5처럼 파라메트릭 픽셀 패턴과 리어 램프 그래픽으로 마감했다고 했다. 반면, 인테리어에서는 ‘3 스포크 스티어링 휠’을 예로 들며, 현대적 재해석을 언급했다.

헤리티지 시리즈 그랜저
헤리티지 시리즈 그랜저
헤리티지 시리즈 그랜저

이어서 그랜저 전기차 콘셉트 제작 과정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앞뒤 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범퍼 반사판에 적용된 파라메트릭 픽셀 패턴에서 알 수 있듯, 익스테리어는 기존의 각진 디자인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고 했다.

아울러 인테리어는 사운드와 조명을 중심으로 새롭게 다듬었다고 했다. 실제로 그랜저 헤리티지 시리즈에는 18개의 스피커가 탑재되어 있으며, 천장과 도어트림, B 필러에는 음악에 따라 빛이 움직이는 브론즈 컬러 조명이 적용되어 있다.

한편, ‘포니’와 ‘1세대 그랜저의’ 뒤를 이를 새로운 헤리티지 시리즈에 대한 언급도 들을 수 있었다. 90년대의 상징인 ‘갤로퍼’는 ‘디지털 노마드’를 주제로 제작될 것이며, ‘스텔라’는 ‘인터스텔라’라는 테마를 통해 ‘메타버스’ 콘셉트를 적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전문가와 함께 진행된 행사답게, 이번 마스터 토크에서는 전기차와 관련된 다양한 헤리티지를 알아갈 수 있었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개발 스토리는 청중들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주제로 진행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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