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후배가 결혼을 했다. 하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1, 2 미터 간격으로 앉아 식을 보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버진로드를 퇴장하는 때, 그만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하객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환하게 웃는 후배의 모습이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왜 결혼식에서는 눈물이 나는 걸까? 부모님께 절을 할 때, 퇴장을 할 때 그렇게들 운다. 시댁으로 시집을 "가기"때문이란 말은 딱 맞는 답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울 테니까.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빠의 직장동료분들이 조문을 오셨다. 3일 장을 치르고 집에서 관이 나갔고 상여를 멘 사람들이 곡을 하면 뒤따르는 고모들과 엄마, 작은 엄마가 심히 울었다. 할머니도 제법 시집살이를 시키셨는데 왜 며느리들은 그렇게 울었을까?
그 자리에는 아버지의 직장 동료뿐 아니라 아내분도 있었는데, 수십 년 전의 기억임에도 강하게 남아있는 한 장면이 있다. 아버지의 동료 부인인 그 아주머니가 펑펑 울고 있는 거였다. 그 아줌마는 고모들만큼 흐느끼고 있었다. 턱밑으로 뚝뚝 눈물을 떨어뜨리며 역시나 울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주고는 같이 엉엉 울었다. 초상을 다 치르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그 아줌마는 왜 남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렇게 울어? 엄마는 답했다. 다 비슷하게 사니까, 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겠지.
그러고 보면 나도 결혼 전에는 다른 사람의 결혼식에 별 감흥이 없었던 듯하다. 결혼을 하고 살다 보니 달라졌던 것 같기도. 그러나 이는 나의 경우고, 비혼인 어린 여자들이 식장에서 눈가를 찍는 장면은 흔하게 보았다. 그들에겐 그런 경험이 없는데도.
나는 퇴장을 하는 후배를 보며 인생을 생각했다. 산모가 느끼는 고통은 태아가 엄마의 몸 밖으로 나가는 고통에 비하면 1/10이라고 했던가. 태어남 자체가 고통의 통과 의식인 인간. 자라면서는 자라는 뼈가 통증을 견디지 못해 성장통을 겪고 아기 때 폭발하는 뇌의 격변만큼이나 만만치 않은 2차 뇌세포 폭발-사춘기를 겪고, 그렇게 힘들게 자라 고작 스물몇, 아름다운 나이가 되면, 그 즉시 늙기 시작한다. 늙는 과정은 또 어떤가. 노인은 당연히 노인인 것처럼 여기지만, 그 나이도 그분에겐 처음인 나이다. 70년을 살면 50년을 새롭게 늙는 것이고 90년을 살면 70년을 매 순간 처음 늙는 것이다. 노화는 일시정지, 멈춤이 없다. 처음 겪는 몸의 변화, 지인들의 죽음, 낯선 통증. 인간은 죽을 때 조차도 죽음이라는 난생처음 겼는 의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외 없이 모두 몽땅.
결혼은 인류에게 책임과 늙음을 시작하게 했다. 몸이 자라고 힘을 좀 쓴다 싶으면 바로 아이에서 부모로 역할이 바뀌었다. 모두가 그렇게 살지,라고 위로해도 그 일은 내 삶에 처음 벌어지는 일이다. 그래서 결혼식은 두려운 통과 의식이다. 더 이상 투정 부릴 수 없는 옴짝달싹하지 못할 어른으로서의 입장. 삶의 무게와 온갖 책임이 뒤따르는 복잡함의 시작. 어쩌면 우리가 결혼식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인류의 역사에 새겨진 삶의 고단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배에 올랐으니 이제 항해를 시작할 텐데, 풍랑을 맞으면 어쩌나, 배가 부실하면 어쩌나, 그 길을 가지 않은 사람이라도 느낄 수 있는 진지한 무게가 있다.
십 년 전 내 결혼식에서 나는 해맑게 웃었다. 울고 싶지 않았다. 장인 장모님에게 절하는 사위, 울고 있는 딸, 그 흔한 투샷은 만들기 싫었다. 씩씩하게 식을 올리고 씩씩하게 결혼생활을 시작했었다. 그리고 때때로, 전투 같은 날들을 보내기도 했다.
요즘 부부의 세계가 화제다. 그 드라마에 사람들이 흥미로워하는 지점은 불륜하는 남편도 이혼하는 아내도 아니다. 결혼의 무게. 이혼해도 끊어지지 않는 질긴 무엇, 자식을 키우며 겪는 고통, 참고 또 참는 연일(連日)에 대한 공감이다.
더불어. 인생에는 기쁨과 고통이 번갈아 찾아온다. 안타깝게도 기쁨은 쉽게 휘발되고 별거 아닌 상태로 돌아가지만 고통은 그렇지 않다. 기쁨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아도 실제로 터지지 않지만 고통으로 질식할 것 같은 때엔 한 순간에 돌연사해버린다. 말로는 쉬운 감사하기, 이 간단한 태도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 모두가 잘 이해하고 있다.
결혼식에서의 눈물은 공감, 삶의 무게에 대한 공감, 좋은 날 보다 원래 지치는 날이 많은 인생을 겪는 동료에 대한 남모를 응원이다.
결혼식을 끝내고 근처 김치찌개 집으로 갔다. 남편과 함께 두루치기를 먹으며 일상의 대화를 나누었다. 업무전화를 받은 남편은 식당 밖에서 한참을 통화했고, 식사가 끝난 나는 핸드폰을 보며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무료하게 기다렸다. 집에 돌아와서는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잠시 쉬고 저녁을 먹었다. 결혼식의 여운은 그 이상한 감정의 본질은 이미 삶에 있기에, 눈물을 흘리고 난 후라도 마치 울지 않았던 사람처럼 일상으로 돌아갔다.
후배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아기를 갖고 싶어 하니 별일 없이 임신과 출산을 했으면 좋겠다. 시댁이 자애로워 후배를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편이 아내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악재 없이 무난하고 무탈하게 늙었으면 좋겠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