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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수 May 13. 2020

당신이 나를 그리워해도 나는 그곳에 없어요

연락끊긴 그 사람의 이야기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세월과 상황에 따라 사람의 역할이 달라진다. 사춘기 소녀로 살던 시기가 있었고, 자기가 세상 똑똑한 줄 알던 이십 대가 있었고,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삼십 대와 주부가 된 사십 대. 그리고 그 사이 쌓게 된 온갖 거친 경험과 인생에 대한, 여전히 좁을지라도 과거보단 깊어진 나름의 판단도.


당신이 나를 그리워한다면 그것은 지금의 내가 아닌 그 시기의 나를 그리워하는 것이며, 그 시기의 나와 함께 있었던  당신의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당신이 꽃잎 같던 그때, 흰 티셔츠 하나만으로도 반짝이던 그때, 그때의 스스로가 그리운 것이다. 그 시기를 같이 겪은 나는 그저 증언의 역할을 하는 당신 등 뒤의 가로등일 뿐이다.

 
내가 정말 그립다면, 당신은 달려와야 한다. 세월만큼 쌓인 어색함을 치우고 뛰어와야 한다. 그러나 당신도, 나를 만나도 별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이미 시간은 지났고, 나도 당신도 그때와는 달라졌다는 것을 잘 안다.


과거가 그리운 이유는 그곳에 다시 갈 수 없다는 절대불변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은 모두 과거에 있다. 순진했던 우리도 현재가 아닌 과거에 있다.  더러워진 무거운 코트를 벗고, 아카시아 향이 흩날리는 그때로 갈 수가 없어서, 그래서 당신은 나를 찾는 것이다. 어떤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하여.


과거의 나는 당신을 사랑했지만, 지금의 나는 당신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당신은 어쩌면 과거의 한때를 기억해 내게 사과하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이제 남남이 되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것이 인생의 비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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