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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수 Jul 27. 2020

그가 간절하다

6월부터 한의원에 다닌다. 월, 화, 목, 금. 그리고  수요일은 한의원이 쉬는 날이라 가지 않는다. 매일 가다가 여행을 가느라, 일을 하느라 몇몇 번 가기를 걸렀다. 지난 주도 빠져서 월요일인 오늘은 엿새 만에 가는 날이 되었다.


침 맞는 순서가 되기를 기다리며 침상에 누웠다. 유명한 한의원이라 때때로 대기시간이 엄청 길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속으로 주기도문도 외우고 기도도 한다. 건강해지게 해 주세요.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게 해 주세요, 간절히 기도한다. 오늘 누워 기다리는 동안 혼자 속으로 뭘 할까, 생각하다가 뭘 할까 생각하는 자체가 긴장이, 간절함이 풀어진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누웠었는데 이젠 일과처럼 숙제처럼 하는구나, 싶다가 '간절함'이란 무엇인가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픈 기간 동안 몇 번 컨디션이 회복된 적이 있었다. 그때엔 케베스에 가서 케베스 스페셜도 했었고, 친정에 가서 사과 수확도 도왔다. 그때의 공통점은 미치게 독기를 품었었다는 것. 아프다 죽나 움직이다 죽나 그게 그거지 싶어 전투태세에 돌입했었다. 그러나 그런 의기가 오래가기는 어려운 일. 일이 주 혹은 한 달 정도 미쳐있다가 긴장이 풀리면 다시 악화되다 못해 더 나빠지곤 했다. 그래도 어쨌든 분명한 성과는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가는 바늘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가는 구멍에 통과시킬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땐 컨디션이든 일이든 무엇이든 성과가 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간절함은 바라는 것에만 발휘시켜 왔다는 걸 깨달았다.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앞에서 발휘된 간절함은 초능력을 발휘하게 했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은 몇 번쯤 있을 것이다. 지난 6월 한 달 동안 한의원이 제공하는 식이 다이어트를 할 때도 그랬는데, 그래서인지 공복감이 힘들지 않았고 삶은 감자도 두부도 고기처럼 맛있게 먹었다. 그러다 한의원에서 이젠 조금 다른 것도 드셔 보세요,라고 하고 아 몸이 정말 꽤 좋아졌네 싶은 후에 감자나 두부는 멀리멀리 멀어지고 말았다. 하고야 말테다,라는 마음이었을 땐 어렵지 않았는데, 해야 하네 라고 생각이 바뀌니 다시 시도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오늘 아침 한의원 침상에 누워있가 그 생각이 든 것이다. 간절함은 왜 소유에만 제한되지? 왜 사람을 대상으로 하진 못하는가, 하는. 쑥한 생각이.


물론 사람을 대상으로 간절함을 품어본 적도 있다. 사람이 에로스로 다가올 때 그랬다. 그러나 그 에로스적인 사랑조차 받고 싶다가 목적이지 그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결코 아니다. 아가페나 플라토닉은 사실 거의 불가능했지. 도대체 왜 사람을 대상으로는 왜 왜 왜 간절해지지 않았을까. 친구 한 사람, 옆집 아줌마 한 사람에겐 왜 그 간절함이 해당되지 않았을까. 그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언젠간 마음이 풀어졌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언젠간 처를 극복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왜 간절해지지 않았던 걸까.  


기독교에서는 사람 대하길 예수 대하듯 하라고 가르치고, 예수 대하듯 하다는 저마다 정의가 다르겠지만 이제와 보니 내게는 간절히 그 사람을 바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 사람도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포만의 세계에 그가 무사히 당도하기를, 평안과 안락의 세계에 정착하기를, 그래서 그 평화가 다시 발휘되어 또 다른 타인에게 흩어져 나가기를 바라는 것. 내게 있어 사람에 대한 간절함은 이것이었다. 그래서 시시비비가 중요하지 않고, 굽힘이 중요하지 않고, 때로는 비굴하게 보이거나  멍청하게 보일지라도 지금의 나를 넘어서고 싶은 것. 그것이 내가 탐내야 할 간절함이었다. 고개를 꺾고 허리를 꺾고 무릎을 꺾고 몸이 꺾이고 마음이 꺾여 상대가 치유에 이르는데 보탬이 되는 것. 감히 이것이었다.


관계는 가장 어려운 과제다. 관계가 수월한 사람은 없다. 나와의 관계마저도 어려운데 타인과의 관계가 수월할리 없다. 나는 관계가 어렵지 않다고 여겼었는데 그건 간절함이 전혀 포함되지 않는 관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어떻게 관계맺어야하는가、나에게 답은 이제 이것이다. 그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



최근 어떤 일이 마음을 많이 상하게 하였는데.

간절함을 묵상하다 치유가 되어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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