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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수 Aug 03. 2020

나를 통해 보이는 것들

신은 형태가 없다. 인간의 행위로 속성이 결정된다. 신의 뜻이라 행하는 행동이 그가 만든 신의 모습이다.

방금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다. 근데  앞자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중얼중얼 속삭이는 소리도 계속 난다. 한참을 듣다가 앞자리의 아주머니께 그게 뭐예요,라고 물어봤다. 듣기 나빠요? 하시더니 뭘 감춘다. 그리곤 안 할게요, 안 할게, 하신다. 이어서  계속 뭐라 뭐라 중얼거리신다. 가만히 들어보니 기도소리였다. 주여 주여 주여 주여,  어쩌고 어쩌고 해주씨옵쏘써! 이런 말들이었다. 손에 든 딸깍거리는 기계는 계수기, 카운트 기계였다. 숫자 셀 때 쓰는. 아주머니는 주여를 할 때마다 그 숫자를 세고 있던  거였다. 신박했다. 그 교회분 중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셨겠지. 우리 하루에 만 번씩 주를 부릅시다, 그 숫자를 세서 기록합시다,라고 했겠지.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에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쏙 빼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만 가져와 주문을 외듯, 주술을 걸 듯, 성황당에서 빌 듯, 치성을 드리 듯, 그런 모습으로 섬기고 있겠지. 밤마다 냉수 떠서 달에 빌던 그 모양과 뭐가 다를까.  취직시켜달라 돈 벌게 해 달라 우리 목사님 능력 주시라 우리 교회 사람 많이 오게 해 달라 건물 크게 짓게 해 달라. 달라 달라 달라 달라. 당신이 누구이든 상관없다, 머리를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

예수님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때문에 참 저급하고 이기적이고 사이코 같은 또라이가 돼버린 신. 한결같고 영원하다는 본질적 특성은 간데없고, 자식 결혼시켜줄 중매쟁이로, 회사의 이중장부를 안 들키게 해 주실 사기꾼으로, 복수하고 싶은 이를 처리해 줄 킬러로 고용하고 있다. 신을 십자가에서 멱살을 잡고 끌고 내려와 온갖 더러운 일을 시키며 더러운 음식을 먹이며 내 몸의 건강과 재물을 위해 노예처럼 부리고 있다. 물론 세속적인 소원을 비는 건 당연하지만 목적과 수단이 바뀌었다는 이야기.

그러다 문득 너의 신은 어떤 모습인가, 자문해본다. 나를 통해 보이는 신은 자비로운가, 까칠한가, 신경질적인가, 돌아이 같은가, 헛소리는 안 하나.
그렇다. 앞자리의 아주머니를 보고 내가 만든 신을 들여다본다. 나의 신이 너의 신보다 낫지 않니? 젠 체하는 신을 본다.

반대쪽 아주머니는 내리 전화통화를 하신다. 그런데 불편하지 않다. 목소리는 상냥하고 예의바름이 묻어있다. 언니, 이번에 어떻게 하실 거예요? 어머 세상에. 언니는 우리 최 씨 가문의 복이야. 하늘에서 주셨어. 언니는 참 이뻐요. 그래서 이번에 절에 가서 제사를 드릴까? 아유 언니 고마워라 언니 참 고마워요.

내 앞에 두 모습의 신이 있다. 분명한 것은 절에 다니시는 아주머니의 신이 더 멋있어 보인다는 것.

아이를 보고 부모를 짐작하고, 부모를 보고 상대가 배우자감인지 결정한다. 나를 통해 보이는 것은 내가 아니다. 나의 부모, 나의 신, 나의 세계, 나의 우주. 그래서 매너 있게 착하게 독한 소리 하지 말고 따듯하고 점잖게 살아보자고, 또 이렇게 잊어버릴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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