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차 친정에 다녀온 친지를 통해, 친정엄마로부터 먹거리를 전해 받았다. 남편이 좋아하는 토종닭, 내가 좋아하는 꽃 나물 등등에 곧 꽃이 피어 쇨 거라는 대파도 있었다. 양도 많아 오래 먹어야지 싶어 눈물 콧물 빼가며 썰어서 지퍼락 두 개에 꽉 차게 담았다. 썰던 중, 뿌리가 조금 남아있는 것이 있길래 혹시 싶어 포크 통에 꽂았다. 그게 두 시간 전. 방금 자러들어가려다가 대파는 어쩌고 있나 들여다보니 세상에 0.3센티는 자라 있었다. 순간 맘 속에 감동이 일었다. 생명은 이렇게 강하구나. 내게 그 생명이 있구나. 나는 강하구나.
그저께 케이블에서 캐스트 어웨이를 봤다. 척(톰 행크스)은 무인도에 표류한 뒤 4년 간 혼자 산다. 배구공 윌리만이 친구일 뿐 아무도 없다. 지친 척은 나무에 밧줄을 매달고 죽으려고 하나 나무가 약해 자살하지 못한다. 그때 척은 깨닫는다. 죽음마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척은 그제야 담담히 죽음을 대면하고 뗏목에 몸을 싣는다. 물도 없이 식량도 없이 800km를 떠내려간다. 뗏목에 몸을 뉘이고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는, 지나가는 고래에게도 관심 없는 수일의 시간을 보내던 중, (척이 먼저가 아닌) 지나가던 선박이 그를 구조한다. 내가 내 인생을 조정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데 걸린 시간이 무려 1500일. 모든 것을 내려놓기까지의 시간이 1500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오히려 살게 된 아이러니. 그래. 때로 생명은 죽음을 이긴다. 죽음마저 통제하려 하지 않을 때 삶이 힘을 발휘한다. 두려움을 이기면 생명이, 삶이 제 역할을 한다. 그 힘이 사람에게 있다.
온갖 나쁜 뉴스와 어지러운 시국과 세계 곳곳의 비극으로 꽃 하나 보는 게 허락되지 않는 봄이다. 인간의 잔인함과 이기심에 지친다면. 하루하루가 무겁고 길게 느껴진다면 내 안의 생명력에, 만물의 생명력에, 인간의 생명력에 잠시 위로를 받아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