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잃어버림

by 나루터


"지난 토요일, 나는 길을 잃었다. 지난 일요일, 나는 안경을 잃어버렸다. 어제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나는 정신을 잃었다.


나는 계속 무언가를 잃어 버리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잃는다. 가족, 친구, 직업, 돈, 명예, 건강 등. 그래도 괜찮을지 모른다. 이들 중 일부는 잃어 버려야 했기 때문에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잃더라도 잃어서는 안 되는것이 있지 않을까.”


미국에 있을 당시에 메모로 남겨놓은 글이다.


뉴델리역 근처 빠하르 간지에 도착을 하였다. 역으로 오가는 수 많은 여행객들이 잠시 머무는 장소이다. 자연스럽게 여행객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이 모여있다. 호텔, 상점, 식당 등 없는 것이 없다. 중고책, 잡화점, 화장품, 편의품 등등 왠만한 것은 거의 모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편리했다. 한 곳에 필요한 것들이 종합적으로 모여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곳 외, 다른 곳은 가볼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용기가 없었다기보다는, 안락함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어느 곳을 가다 길을 잃어버렸다.


복잡한 골목길을 헤매다가, 길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인도의 골목길은 악명이 높다. 대부분의 일본 길거리처럼, 바둑판같이 남과 북으로 쫘악 쫘악 정열되어 길을 찾기 쉬운 구조로 되어 있는 길은 인도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인도의 골목길은 대부분 꼬불꼬불 되어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특히, 전설보다 오래되었다는 바라나시와 같은 곳은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지도가 없던 터라, 직관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며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화를 내고 불평한다고 해도 달리지진 않기 때문이다. 일단 한번 들어왔으니 이 상황을 즐기자는 무데뽀 심뽀였을 것이다. ‘길 한번 잘못 든다고 뭐 크게 잘 못 되겠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큰 길로 나오면 되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길은 모두다 이어져 있기 때문.


그렇게 나는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따라서 걷고 걸었다. 그렇게 나는 나 스스로 길을 잃어 버리는데 일조한 것이었다. 길을 찾기는 커녕 길을 잃어버리는 것을 계속해서 방관했던 것이다.


그런데, 길을 잃어버리면 버릴수록, 중심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전개되어 갔다. 길을 잃어버릴수록, 오히려, 인도다운 모습으로 변해간 것이었다. 흥미로웠다.


‘잃어버릴수록 진짜가 나타나는가?’


‘여기가 진짜 인도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길에 위치한 작은 집집마다, 신을 섬기는 작은 사원들이 즐비했다. 관광객들이나 상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지역 사람들 같아 보였다. 인도 사람들이 정말로 어떻게 사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있던 잃어 버린 곳은 중심가에서 그렇게 먼 곳에 위치하지는 않았지만, 진짜 인도 현지인들이 사는 곳인 듯해 보였다.


어찌 이렇게 가까운 두 곳에서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일까?


고프만 (Goffman)의 프론트 (front) 스테이지와 백 (back) 스테이지가 떠올랐다.


프론트 스테이지는 연기자가 연기를 하는 곳이다.


백 스테이지는 연기를 하지 않는 곳이다.


연기자는 연기를 할 때, 자신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곤 한다. 연기를 맡은 배역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 감정, 본능, 가치 등을 포기하고 대부분 역할에 전념 한다. 그리고 주어진 역할이 항상 동일하지도 않다. 또한, 자신의 성격이나 성향과 비슷한 역할이 매번 주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대부분은, 시키는 데로 수요에 따라서 역할을 맡을 것이다.


하지만, 연기를 하지 않을 때는, 그럴 필요가 없다. 본인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고 표출할 수 있다. 문제는, 프론트 스테이지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백 스테이지에서 조차 그 역할을 계속 이어 나가는 것이다. 백 스테이지는 자신 본인의 진정한 무대다. 그러므로, 연기를 할 필요가 없는 장소이기도 한다.


관광지는 상인들이 즐비하다. 관광객들에게 제품을 판매해야 하는 장소다.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선, 고객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있다.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존경쟁이 현저히 줄어 들게 된다. 그러므로, 종종 자신뿐만이 아니라 고객까지도 속이기도 한다. 잠깐의 이익에 눈이 멀어, 거짓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자신 본연의 모습을 숨기고 다른 사람까지 속이는 것. 본질적으로 연기자와 관광지의 악랄한 상인이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모든 상인이 그러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관광지가 아닌 곳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안락함에 빠져, ‘진짜 인도’를 경험하지 못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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