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서 무언가 얻고 싶다면
- 개요
본격적인 독서 행위에 있어서 독후감은 필수적이다. 문학의 경우 작품의 완성도와 주제의식을 곱씹으며 성찰하기 위해, 비문학의 경우 자신이 이해한 정보를 정리하고 받아들이기 위함이 목적이다.
독후감의 작성은 사실상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마음에 드는 책을 읽더라도 읽은 책이 왜 마음에 드는지, 작가의 서술 방식이 왜 마음에 들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면 수동적인 독서에 그칠 뿐이다.
당장 예시를 조금 바꿔서, 영화를 보거나 강의를 듣고, 내용은 어떠했고 어디가 인상적이었느냐,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어디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그건 전적으로 흥미 본위에 충실한 독서에 불과하다. 즉, 재미 외에 얻은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독서로는 일정 단계를 넘어설 수 없으며, 이렇게 습득한 지식은 공허하게 사고를 겉돌 뿐이다.
머릿속으로 지식과 감상, 성찰들을 묶어 한 갈래로 정리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독서 행위는 시간 죽이기에 불과하다. 사실, 어떤 책이든지 얼마든지 시간 죽이기를 위해서 읽어도 좋다. 하지만 즐거움을 넘어 독서로 성장하고 싶거나, 지식이든 경험이든 얻고 싶다면, 단순히 읽는 것 이상을 원한다면 결국에는 이러한 사색과 정리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습득한 지식과 감상들은 엄연히 성찰과 언어의 표현으로 가공될 필요가 있으며, 그 가공에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독후감의 작성이다. 독후 감상의 집합은 결국 기승전결이 존재하는 독후감으로 수렴진화하기 때문이다.
- 능동적인 독서
세상 만사 많은 일이 그렇듯이, 수동적이기만 한 태도로는 숙련의 한계가 있다. 타인의 사고를 읽는 독서라는 지극히 수동적인 행위에서 능동적인 태도란 텍스트의 재구성을 통한 이해를 의미한다. 즉, 내가 이해한 줄거리나 정보의 작동 원리를 공책에 자기 표현대로 써 보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방식으로 공을 들여 시간을 들여 이해하려는 독서는 단순한 완독을 넘어선 습득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이 자주 하는 필사 행위도 이러한 능동적 독서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필사에 그렇게까지 호의적인 의견은 없다. 작가의 문맥의 결을 넘어서 그 안의 뜻과 메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각과 저자의 텍스트를 연결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문학의 경우 본인이 작가 지망생이고, 해당 작가의 스타일을 모범으로 삼는다면 모를까, 그런 경우가 아니고서야 굳이 필사까지 하면서 맥락에 집착하기보다는 뜻을 머리 속으로 저자의 뜻을 가늠하며 자신의 생각을 적어 텍스트와 연결하는 편이 유익한 독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실, 일정 수준 이상의 독서에 있어서 자신의 의견은 매우 중요하다. 저자의 궤나 논지,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서술 방식이 흥미롭지 않아서 자기 의견이 나오지 않는 것은 대단히 흔하고, 또 이해할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자신이 이 저작물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흥미있게 느낀다면, 마땅히 자신의 의견을 끌어내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깔끔하게 자신이 이 저작물에 노력을 쏟을 관심이 없으며 스스로 준비가 덜 됐다고 시인할 필요가 있다.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자기 방식대로 쓰인 텍스트와 원본 저작물을 비교하면서 깊이 비교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잘못 이해한 부분, 맥락을 놓친 부분을 바로 이해하기 위한 재독 또한 필수적인 독서의 요소이다. 특히나 자신이 좋아했던 책일 수록 왜 좋아했는지, 이젠 어떤 식으로 생각이 바뀌어서 감상이 변했는지를 비교하는 것 또한 독서의 묘미이다.
- 독후감을 완성하기까지
독후감을 쓰는 일은 독서 초보자나 중급자에게도 쉬운 습관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를 똑바로 대답할 수 없는 경우는 굉장히 흔한 경우이고, 훈련이 부족하면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현하지 못하거나, 생각은 있는데 표현하는 데 익숙지 않아 독후감의 작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
독후감의 작성에 있어서, 대상의 속성의 본질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단순화 작업이 필요하다.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 별거 없다. 자신의 의견을 질문으로 난타해 텍스트의 본질적인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독서에서 '왜?'라는 질문은 능동적인 독서의 시작이자 끝이다.
예를 들어, 가장 흔한 독후 감상은 '작가의 필체가 유려하다.' 등의 필력을 찬양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정확히 '작가의 필력이 좋았는데,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른다.' 정도의 뜻이다. 왜냐하면 스스로에게 왜 작가의 필체가 아름답게 느껴졌는지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필력이 마음에 들었다면, 어느 부분이 어떻게 마음에 들었는지, 표현력이 어떠했는지, 텍스트의 어떠한 성격이 좋았는지 더 나은 감상을 원한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집요한 질문만으로도 금방 자신의 서술 방식 취향과 중시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독서를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왜?'로 도배하는 것이 독후감의 가치의 전부인 것은 아니다. 독서라는 사고의 선택적 행위에 있어서, 결론을 내리는 능력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독서는 판단하기 쉽지 않은 세상사와 다르게 그 범위가 한정된 하나의 의견이다. 즉, 결론이 어떻게든 정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독후감의 작성에 있어서 '나는 저작자의 의견이 ~~라고 생각한다.' 라고 결론짓는 행위는 어느 정도 용인된다. 그러지 않고서 모든 것에 의문을 품어버리면 텍스트에서 멀어져 자폐적인 의문에 갇힐 뿐이기 때문이다.
능동적인 독서라는 것도 많은 행위들처럼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를 훈련하는 행위이다. 지금의 감상 또한 결론이 났더라도 앞으로의 재독으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지금의 결론은 ~~하다'라는 마무리 없이 독후감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능동적 독서의 독후감에서 결론은 완성이 아니라 지금으로서의 최선의 대답으로 간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때때로는 정말 참패해 이번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인정해야하는 때도 있다. 책을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그 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평생 재독에 도전하면 된다. 인생이 그 정도로 짧진 않으니 모든 책을 한 번 읽고 끝장낼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자격지심에 빠질 필요도 없다. 아직 난이도가 맞지 않았거나 흥미가 부족했을 뿐이다. 기회는 많다. 정 지금 뭐라도 이해하고 싶다면 끈기 있게 재독하자. 그래도 이해 못하겠다면 타인의 독후감과 해석을 길라잡이 삼아 다시 읽는다. 독서도 운동처럼 엄연히 단련 수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 정도로 노력했는데 이해 못할 책은 사전 지식이나 막대한 독서 경력을 요구하는 책 밖에 없다.
독후감을 쓸 때, 처음부터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말자. 언제나 생각에 비해 표현은 빈약하고 핵심을 짚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 또한 쓸 수록 는다. 결국 독서가 그랬듯이, 독후감 또한 꾸준한 사고와 글쓰기 경험의 축적으로 성장한다. 정 할 말과 핵심적인 부분을 맞출 수 없으면 책에서 좋아했던 부분들, 흥미로운 부분들이 어디였는지 술회라도 해보자. 그렇게 독후감을 시작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독후감을 완성하면 브런치, SNS, 알라딘, 교보문고, 인터넷 커뮤니티, 블로그 등에 올리자. 자신의 악전고투 끝에 창출한 결론이 그저 책 장 한가운데에서 썩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독후감을 쓸 동기부여가 부족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후감으로 몇 시간 씩 이것저것 궁리할 정도면 나름 양심 있는 과시라고도 생각한다. 하다 못해 '이 책이 나랑 너무 안 맞아서 여기서 하차하련다.' 라는 감상조차 '앞선 독서 동지는 이런 마음에 들지 않는 점에도 불구하고 나름 분전했구나' 정도의 동기부여는 남겨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이해가 잘 안 된다고 저작물을 비난하는 행위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지양하길 바란다.
주제 의식이나 의견이 잘못된 저작물이라고 생각한다면 '~~한 점은 작가의 의견이 편협하다고 생각한다' 혹은, '나는 저자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라고 자기 의견을 밝히며 비판하는 것이 옳지, 이러한 장르 자체를 싸잡아 틀렸다던지, 내게 이해가 안 되니 쓸모없는 책이다 라는 비난에 가까운 확언은 금물이다. 하다못해 '나는 그 책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이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엄연히 독후감의 공유라는 의사소통은 현실이다. 현실에선 결론이 아닌 타인과 토론을 통한 의견 교환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나의 투쟁' 같은 책을 읽어도 가치가 없다라고 속단할 수는 없는 게 독서지만, 세상에 정말 악의어린 목적으로 쓰인 책들도 절대 적지 않다. 정치적 선동을 목적으로 쓰인 책들의 대부분이 이런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실 이런 종류의 정치적 화제성이 지나치게 강한 책들은 조금 지양하는 것도 나쁜 태도는 아니다.
애초에 비판을 넘어선 비난을 일삼는 책은 하나의 논리로서 사실상 별다른 가치가 없다. 이러한 글의 분노는 선동 외에 아무 것도 야기하지 않는다. 분노를 유발해 이성적 면역력을 약화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일 뿐, 다른 목적이나 완결성은 대단히 빈약하다.
문제는 이러한 선동적인 저자들 또한 어디까지가 비판이고 어디부터가 비난인지 교묘하게 숨기기 때문에, 지나치게 자극적인 주제의 글은 지양하는 편이 이롭다. 아니면 어떤 책을 읽던지, 철저히 자기에게 필요한 부분만 챙겨가는 태도도 지향할만 하다.
- 마치며
필자 또한 독후감을 작성한지는 이제야 4년차에 불과하다. 당장 몇 년 전만 해도, 1000 페이지를 넘나드는 대하 장편 소설이나 묵직한 비문학은 이유 없이 독후감 작성 목록에서 배제하는 실책을 저지르곤 했다.
솔직히, 이 많은 페이지들 내내 생각하면서 읽기에는 다소 게을렀기 떄문이다. 하지만 어지간히 재미있거나 인상깊지 않은 이상 이러한 이야기들의 큰 맥락은 전부 증발했다. 큰 고기를 잡고서도 그냥 놔줘버린 셈이다.
독서를 올해로 8년간 이어가면서 독서와 학습의 경계가 대단히 모호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이러한 성향은 비문학의 경우가 더 강하다. 문학의 경우 그나마 학습을 어느 정도 배제하더라도 줄거리를 읽는 재미로 감상할 수도 있지만, 비문학의 경우 정보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말 공부가 필요함을 실감했다. 여러모로 어린 시절에 학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점을 아쉽게 여기고는 있지만, 별 수 없다.
본격적으로 독서에서 흥미를 넘어선 가치를 갖고 싶다면 당장 읽었던 책들의 독후감이라도 써보자, 자신이 이 책을 왜 좋아했는지, 어떤 부분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의견을 내는 것 부터가 독후감의 시작이다. 첫 시작은 절대 쉽지 않지만, 의미있고, 언젠가는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