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소설
개요, 니코스 카잔자키스와 나
현대 그리스 소설가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로 오늘날까지 전 세계적 인기와 명성을 누리는 작가 중 하나이다. 특히, 그의 모국어인 그리스어 화자가 20세기에는 겨우 500만명 미만이었던 것을 고려해보면,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인지도와 인기는 가히 독보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내가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대표작인 <그리스인 조르바>를 내가 접한 것은 대학교 1학년 후반이었다. 아마 내 기억상, 이맘때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원역을 발간했고, 당시 아직도 독서 초보자 티를 완전히 벗지 못했던 내가 봐도 <그리스인 조르바>는 범상치 않은 소설이며, 하나 장만해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 신속하게 구매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그리스인 조르바>는 나의 길지 않은 독서 인생에서 큰 변화를 몰고 왔다. 고등학교 2학년 당시 <데미안>을 읽고 문학 탐구를 취미로 삼기로 결정한 이래로, 이만한 파문을 불러온 작품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나는 이 책을 한 번 읽는 걸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서 연달아 세 번, 거의 다섯 번까지 읽었다. 여태껏 이 정도로 푹 빠진 작품은 기껏해야 헤세의 <황야의 이리>정도였다.
당시 이제 막 19살이던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에 홀딱 빠졌다. 아무래도 시기가 적당했다는 생각이 이제 와선 좀 든다. 갑갑한 기숙생활에 지친 나에게 자유로운 조르바, 청량한 크레타 섬의 묘사는 인생의 낙관을 잠시나마 복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나는 카잔자키스의 다른 소설들도 알고 싶어서 소설을 2회차까지 읽어보고 사방팔방으로 도서관을 뒤져보았다. 그런데, 예상한 것과 다르게, 작가의 다른 소설들은 대부분 조르바와 같은 활력이 빠져 지나치게 관념에 치중해 진중하다는 사실에 나는 다소 실망했다. 카잔자키스의 다른 소설들은 아직 내가 읽기엔 너무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
이 당시 문학 속에서 성찰 대신 인생의 해답을 쫓던 내게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종교관, 민족, 이념, 정치사상을 드러내는 <최후의 유혹>이나, <전쟁과 신부>는 아무래도 영 자신에게 흥미를 끄는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하지 못하고 아쉽게 떠나가려는 와중, 나는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소설 중 당시 내 독서 딱 맞는 소설을 발견했다. 크레타 섬의 명예 의식과 투쟁사를 그린 작품인 <미할리스 대장>이 바로 그 소설이었다.
곧이어 19년도에 이르러 튀르키예의 인문환경에 큰 흥미를 갖게 됨에 따라서, 터키인과 그리스인의 투쟁사를 그린 <미할리스 대장>은 더더욱 읽어보고 싶은 소설로 남았다. 문제는 이 소설이 모조리 절판 난 소설이었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동네 도서관에서는 찾을 수 없었고, 서울의 국립중앙도서관이라도 가야 할 판이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복잡한 과정도 수행하기 싫어서 내가 사는 인천 안에서라도 책을 찾아보았지만, <미할리스 대장>은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미할리스 대장>을 제때 읽지 못한 채 시간만 보냈다. 어느새 군대도 전역했고, 대학교도 졸업했다. 지난 3월, 나는 동인천의 헌책방 거리를 방문해 고서점 안을 둘러보다 한 구석에 꽂힌 <미칼레스 대장>을 발견했다. 몇 년 전에는 그토록 읽고 싶었던 소설이 거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지금 툭 튀어나온 것이었다.
나는 절판된 <미칼레스 대장>이 당연히 비쌀 것이라 예측해 4만원까지는 낼 생각이었지만, 4500원에 몇 년간 읽기를 고대했던 소설을 얻었다.
빌려온 소설을 전부 읽자마자 <미칼레스 대장>을 펼쳐보았다. 거의 5~6년만에 꺼낸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소설 속 크레타를 재회하면서, 내가 얼마나 이 작가를 좋아했는지 새삼 실감이 났다. 그렇게 먼 과거도 아닌데도, 추억 속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기분이었다.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작품 세계
크레타의 작가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큰 주제의식은 역시 투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니체 철학과 불교 사상까지 두루 영향을 받은 카잔자키스는 세계 각지의 아웃사이더들의 내적, 외적인 투쟁들을 옹호하며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발전시켰다.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작품 속에서는 행동하는 인간에 대한 영웅적 찬미가 주된 소재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관념과 맥락,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나 현재에 충실한 '조르바'나 크레타의 명예로운 용사 '미칼레스'같은 인물들을 통해 현세에 자신의 의지를 반드시 실현시키고야 마는 사나이들의 거침없는 세계를 묘사해왔다.
카잔자키스의 소설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크레타라는 배경이다. 크레타인의 독립과 자유를 향한 항쟁은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근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도 화자 카잔자키스는 활달하고 매사에 긍정적인 그리스 민족의 성품과 죽음, 하느님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당돌한 크레타의 명예 의식과 열의를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크레타 섬의 역사와 소설의 배경
이스탄불과 함께, 내가 제일 가보고 싶은 장소인 크레타 섬은 관광지로 명성이 높다. 국내 여행자들이 산토리니를 그리스의 대표적인 여행지로 떠올리는데, 크레타 섬 또한 그에 못지 않는 아름다운 전경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젠 아름답게만 보이는 크레타 섬은 지중해의 주요 거점이었기 때문에 해양으로 진출하는 거대 제국들의 간섭을 줄곧 받아왔다.
크레타 섬은 도합 800년에 육박하는 식민 지배와 지중해 해적의 습격으로 파란만장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크레타의 식민 지배의 역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정교회 세계에 편입된 크레타 섬은 기원후 826년에 아랍 해적에게 1세기간 점령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크레타를 탈환한 동로마가 1204년 4차 십자군에 의해 한 차례 멸망당함에 따라, 크레타 섬은 베네치아 공화국이 400년간 점유한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슬람 세력의 약탈에 대비하여 섬을 요새화시켰다.
한편, 동로마를 멸망시킨 아나톨리아 반도의 오스만 제국은 17세기에도 꾸준히 팽창하여 베네치아와의 대결한 끝에 크레타 섬을 점령한다. 이젠 술탄의 지배를 받는 크레타 섬은 200년간 제국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됐다.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술탄의 정교도 신민으로 취급받던 크레타 인은 18세기 후반에 발명된 민족주의의 도래에 따라, 자신들이 단순한 정교도가 아니라 크레타 민족이라는 사실을 각성하며 튀르크인의 지배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1821년 그리스 전역에서 대대적인 봉기가 일어나자 술탄은 군대를 파견해 그리스인들을 학살하는 방식으로 봉기를 진압한다.
근대화되지 못한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서구 열강이 개입하며 그리스는 1831년 독립에 성공하지만, 크레타 섬의 독립은 아직 보장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1898년에 열강들이 자치권 보장에 관여할 때까지 크레타는 오스만 술탄의 직접 통치 아래에서 신음해야만 했다.
소설 <미할리스 대장>도, 올 것 같으면서도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 자유를 기다리는 1880년대를 그리고 있다. 이전의 치열했던 봉기들로 서로 적대하는 무슬림 마을과 정교도 마을, 복수를 꿈꾸는 튀르크인과 자유를 갈망하는 크레타인의 열정이 잘 드러난다.
줄거리와 소설의 특징
<미할리스 대장>의 줄거리는 무슬림과 정교도가 반씩 나눠 가진 크레타 섬의 마을인 '메갈로카스트로'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리고 있다. 카잔자키스가 그리는 정교도 마을의 묘사는 대단히 생동감 넘치는데, 쾌활한 섬사람 사이의 온정과 활기, 크레타 사나이들의 명예와 자부심, 수 십년간의 혈투로 독이 오른 튀르크 마을과의 위험한 동거 생활이 잘 묘사돼 있다.
<미할리스 대장>에서, 주된 줄거리는 민족 간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의형제를 맺은 튀르크 장관 '누리'와 크레타 최고의 용사 '미칼레스 대장'의 갈등에서 시작한다. 아버지의 원수인 미칼레스 가문을 표용한 튀르크인 누리는 자기 의형제에게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인 '하눔 에미네'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도시 여자에게 첫눈에 반해버린 미칼레스 대장은 분노하여 의형제가 건네는 술잔을 그만 부숴버리고, 모욕받은 누리는 크게 당황한다. 한편, '터키의 사자'인 남편을 상회하는 미칼레스 대장의 힘과 명성에 매료된 에미네는 그리스의 팔리카르(맥락상 명예로운 남성 내지는 용사를 뜻한다)와 연애하길 고대하기 시작하시작해 모욕당한 누리는 잊고 지내려 애쓰던 복수심을 드러내기 시작한다는 것이 주된 줄거리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로 요약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사랑의 도래에 미칼레스 대장은 자신을 얽매는 튀르크인들, 의형제 누리와의 정, 첫 눈에 반해 자신에게 집착을 가져다 준 에미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크레타 전역을 떠돌고, 튀르크 마을의 보복으로 그리스 마을은 또다시 봉기할 기회를 노린다는 것이 큰 줄거리이다.
감상문
개인적으로, <미할리스 대장>에서 작가가 가장 공들였다고 느끼는 부분은 역시 크레타 마을인 메갈로카스트로의 전경과 분위기, 주민들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태어난 시절인 1880년대 크레타 섬의 정, 활기와 명예 문화를 확실하게 묘사했다. 메갈로카스트로에 거주하는 등장 인물이 이렇게 많은데도 모든 등장인물의 생동감과 개성이 확고해 다들 어느 정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카잔자키스의 인간 군상의 묘사는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그리스 마을의 동네 바보인 얀니스 아저씨나, 성자의 꿈을 꾸는 튀르크 마을의 동네 바보 에펜디나부터 시작해서, 양 마을을 오가는 가난한 튀르크 노인 알리 아가, 독립투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구멍가게나 지키는 데메트로스와 활달한 페넬로페 부부, 마을의 멋쟁이 풀륙시기스 대장, 명예로운 대장 가문으로 유명한 미칼레스 대장 집안의 문약한 막내 티튜로스 등등, 개성적이고 자신만의 성격이 확고한 인물들이 한 가득 등장한다.
다소 기록 문학과 같은 인상이 남는데, 그 까닭은 당시 크레타의 문화와 풍경을 묘사하는데 작품의 큰 비중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용기와 남자다움을 중시하는 크레타 섬의 문화도 잘 그려져 있다. 딸이 나이가 차면 집 안에서만 키우면서 아버지와 겸상하지 못하게 하거나, 해적의 침범이나 튀르크 마을과의 싸움에 대비해 각 대장들이 전시에 지휘관으로 청년들을 지도하는 체계가 잘 나타나 있다.
크레타 섬의 명예 의식 또한 작가가 섬세하게 묘사한 부분이다. 작중에서 묘사된 크레타 사내들은 종교에 관계 없이 자신의 명예와 자주성을 중시하여 모욕당했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결투하여 사생결단을 치룬다. 이러한 문화는 모욕당하면 마땅히 복수해야한다는 분위기를 형성해, 누리와 미칼레스의 갈등을 겉잡을 수 없이 키우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는 약간 알바니아의 소설가인 이스마일 카다레가 그리는 발칸 반도의 명예 의식과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명예 의식으로 크레타 주민의 성격인 용맹과 저항 의식을 나타냈다면, 작가는 마을을 지배하는 이웃들 사이의 과격한 우애와 놀기를 좋아하고 매사에 긍정적인 그리스 민족으로서의 성격 또한 묘사했다. 이러한 두 성격은 서로 맞물려 남자들 사이의 무모한 장난과 내기부터 시작해서, 장례식에서 밥을 실컷 먹고 힘이 돌자 함께 춤을 추어 흥으로 이별의 슬픔을 이겨내려는 문상객들과 같은 진풍경을 그려냈다.
무엇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크레타인들의 명예 의식이 자아내는 비정한 세상의 묘사가 일품이었다. 크레타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마땅히 모국 크레타의 자유를 위해 한 몸 바치려는 팔리카르들의 기개가 무시무시할 지경이었다. 노인들부터 막 성인이 되어가는 청년들까지, 크레타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남자답게 싸우다 죽길 피하지 않았다.
크레타의 힘만으로는 제국을 이길 수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항전을 이어나가는 미칼레스 대장의 모습을 통해 앞으로 도래할 자유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재물이 되길 자처하는 크레타인과 독립 의지가 얼마나 강렬한지 알 수 있었다.
또한, 문약한 티튜로스가 독립 전쟁을 치루면서 한 명의 용사로 변모하는 모습이나, 조카 코스마스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수학도 포기하고 전쟁에 참전하는 모습, 마을의 악사이자 대장의 술친구였던 벤두소스가 독립 전쟁에 참전하여 끝까지 미칼레스의 곁을 지키는 모습을 통해서 작가 카잔자키스가 글 속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크레타 혈통답게 현실 속에서 투쟁하는 팔리카르가 되고 싶은 작가의 열망도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엄연한 타자이고 압제자 술탄의 편인 튀르크인 마을에 대한 묘사도 독립 전쟁을 그리는 많은 작품들과 다르게 꽤 관대했다는 생각도 든다.
무에진처럼 이교도들을 얕잡아보고 적대하는 무슬림부터, 술탄의 뜻을 적당적당히 이행하려는 게으른 총독, 미칼레스 대장과 힘을 겨뤄보고 싶어하는 아랍인 역사 술레이만, 혈기에 취해 기독교인들을 박해해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려는 많은 튀르크 청년들 등 부정적인 인물상도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모든 튀르크인이 나쁘게 그려지진 않았다. 그리스 마을의 학살을 막기 위해 기꺼이 첩자 노릇까지 감수하는 친절한 노인 알리 아가, 이웃 간의 상잔을 막기 위해 무슬림들을 겁주는 정직한 바보 에펜디나 등, 당대의 적지 않은 튀르크인들도 피에 굶주린 괴물이 아니라, 자기 의지나 명령을 수행할 뿐인 평범한 사람들로 그려놓았다.
누리와 같은 명예를 아는 크레타 청년의 최후를 통해, 크레타에서 오스만 제국의 시대가 져물어 가고 있다는 묘사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튀르크인에 대한 호오와 관계 없이 다민족 제국이 군림하는 전근대가 끝나고, 민족 중심으로 재편될 현대가 금방 도래하리라는 묘사에 가깝다.
자유나 죽음이냐, 사랑이냐 명예냐를 두고 과감히 결단하는 크레타의 정열을 그린 멋진 작품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살짝 구식인 작품이란 생각도 아예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독서 경력이 길지 않았던 초기에는 이런 서사가 탄탄하고 직관적인 작품을 찾았겠지만, 지금은 멋있는 작품을 관람하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을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내 이전 독서 취향의 맹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물론 문학에서 서사와 재미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멋과 서사적 흥미만을 추구하는 나의 독서 편력이 지금 와서는 살짝 아쉽게 보였다. 역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던 18년도에 읽었다면, 재미있어서 2번은 더 읽었을 소설이라고도 생각된다. 여러모로 읽은 시기가 많이 늦어져서 아쉽다.
한편으로는 크레타의 문화적 풍토와 특징, 사람 냄새 나는 마을의 배경 묘사는 높게 평가하지만, 메세지 자체는 좀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문자 그대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인을 두고 분열하는 우정이라는 서사나, 이미지로는 매우 뛰어난 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정신적 자유, 정치와 역사로부터의 자유, 시간으로부터의 자유를 묘사하며 자유의 성격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작가의 시선은, <미할리스 대장>에서 자유는 비교적 단순해졌다고 생각한다. 대신, 대표작에 비해서 크레타 섬이라는 배경을 십분 활용하고 생동감을 불어넣는 데 공을 들였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줄거리 : 4.0 / 5.0 - 사랑, 우정의 분열, 흥미진진한 저항서사로 이야기의 전개가 쉴틈 없이 흥미진진했다.
배경묘사 : 4.5 / 5.0 - 사실상 <미할리스 대장>의 최고 장기라고 볼 수 있다. 생기와 열정이 넘치는 크레타 섬의 기질, 기후, 문화, 이력을 철저하게 구축하고 활용했다.
메세지 : 2.8 / 5.0 - 자유라는 주제의식에 대한 탐구는 비교적 평면적이여서 아쉬웠다.
취향반영점수 총점 : 4.0 - 시각적인 요소의 매력이 두드러지는 영화 같은 작품. 사실, 0.2점 정도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향수가 떠올라서 포함됐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한동안 카잔자키스의 소설은 읽지 않을 듯 싶다. <미할리스 대장>을 읽는다는 젊은 시절의 꿈(?)을 완수했기 때문이다. 나한테도 꿈을 이뤘다는 성취감을 음미할 시간이 필요할 모양이다.
다만, 자유의 성격을 이해하려는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메세지 자체는 아직도 궁금한 점이 많기 때문에, 자유에 대한 여러 관념들을 제공하는 새 소설들도 언젠가 다시 접할 생각이 있다. 하지만, 어떤 책을 읽을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카잔자키스의 소설들이 그렇게 흔하게 구할 수 있는 편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이야기를 전부 읽고 나니, 크레타 섬에 여행을 가고 싶다는 꿈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사실, <미할리스 대장>을 읽는 와중에 내년이나 내후년에 있을 이스탄불 여행에 크레타 행을 끼워넣을 수는 없을까 기대했는데, 지중해는 생각보다 훨씬 넓어서 아무래도 여행을 두 번에 나누어 가야될 듯 싶다.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대지진으로 크레타 섬의 전경이 망가지기 전에 찾아갈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