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제니친의 장편소설
개요, 솔제니친과 나
문학을 좋아한다면, 특히, 러시아 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한 번쯤 들어봤을만한 소설이다. 나는 솔제니친을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 처음 접했는데, 간결면서도 핵심을 짚는 스타일과 정직함을 예찬하는 메세지를 상당히 좋아했다.
내게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꾸준히 읽고 싶은 소설로 남아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종종 찾는 소설이었다. 대학생 시절과 현역병 시절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상당히 침체된 시절을 보내던 시기 내내 가장 많이 읽은 소설 중 하나가 <수용소의 하루>였으니 솔제니친이란 작가를 향한 나의 호감은 이미 예정된 바였다.
나는 이 책을 어지간히 좋아한 나머지 일병 시절 현장감을 살려 읽고 싶어서 휴가 도중에 집에서 가져왔다. 확실히, 현역병으로서 강제 수용의 아픔(?)을 실감하고 있으니 감상도 변했다. 군생활을 보내며 나는 지난번과 다르게 이 이야기가 하고 싶은 말이 정직함 뿐만이 아니라 단체 생활 속 모순과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지혜와 융통성, 인간성을 유지하려는 의욕을 예찬하는 소설로 파악했다. 내게 <수용소의 하루>는 나이를 먹을 수록 유용하고 재미있는 친구로 남았다.
다소 희한한 점이 있다면, 보통 마음에 드는 작가를 찾으면 다른 작품을 찾아 읽는 편인데, 솔제니친의 저작은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머지 저작이 이상하리만치 흥미를 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솔제니친의 역작인 <수용소 군도>나 <붉은 수레바퀴> 모두 비문학이라는 점, 고발적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큰 흥미를 가지지 못했다. 당시 논픽션은 내게 그렇게까지 흥미롭게 여겨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남은 선택지인 <암 병동>도 소재 면에서 딱히 내 관심을 끄는 소설은 아니었다. 솔제니친을 처음 접한 시절에는 나는 건강과 죽음이라는 소재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 때 너무 어렸기 때문에, 문학 속에서 자신을 닮은 생각들을 발견하는 것 외에 흥미가 없었다. 때문에, 아직 내가 겪어보지도 않은 건강의 상실에 대해서 관심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6년이라는 짧지 않은 공백기를 보내다가, 커뮤니티에서 <암 병동>의 한 장면을 읽을 기회를 마주쳤다. 젊은 나이에 유방암에 걸려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가슴을 도려내야만 하는 소녀의 이야기가 꽤 인상 깊어서 즉시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보기로 결정했다.
한편으로는, 이제는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우울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겪은 건강의 상실이라는 테마도 나 자신을 이루는 하나의 근간이 됐기 때문이었다.
나의 투병을 암 환자의 사투에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죽어가는 환자들의 삶을 향한 갈망을 더 알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운명적인 육체의 쇠락 앞에서 행동하는 인간의 심정을 이해하고 싶어졌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솔제니친의 생애와 소련의 흥망성쇠
평소처럼 짧게 솔제니친이라는 작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소비에트의 격동사를 견뎌낸 베테랑 작가 솔제니친은 세계대전, 전체주의를 향한 저항과 강제 수용, 암 투병, 추방과 망명으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냈다.
몰락한 지주 가문에서 태어난 솔제니친은 청년 시절 대조국전쟁에 참전해 격전을 치루면서도 광기어린 시대를 풍자하는 글을 쓰면서 문인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솔제니친은 당시 소련의 절대권력자인 스탈린을 향한 의구심을 나타내는 편지가 검열당국에 발각돼 강제 수용소(굴라크)에 투옥되었다.
지식인 수용소와 탄광 격오지를 오가며 수용 생활을 이어나간 솔제니친은 수용소 안에서 스탈린이 서거하면서 일인 독재 체제의 종식을 전해받으나, 고환암 증세가 심각해지면서 민간 병원에 입원한다. 이 시절에서 큰 모티브를 얻은 것이 <암 병동>이다.
세계 대전과 강제 수용, 암을 견뎌낸 솔제니친은 반 독재, 반 스탈린을 지지하는 흐루쇼프 서기장 시대의 도래에 따라 사면받은 솔제니친은 오지에서 교사 생활을 이어나가면서 자신이 그동안 겪은 수난을 토대로 <수용소의 하루>와 <암 병동>을 발표해 작가 자리에 등단한다.
하지만, 솔제니친의 파격적인 폭로는 전체주의적인 소련 사회의 가장 큰 맹점을 지적하는 셈이었고, 소련 정부는 결국 솔제니친의 작가 활동을 제지하기 시작한다. 한편, 서방 세계는 소련 사회의 잔인한 실체를 용감하게 폭로한 공로로 솔제니친을 1970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추대한다.
솔제니친은 수용소의 처참한 현실을 고발하는 <수용소 군도>를 해외에 반출했고, 소련 정부는 그를 국가 반역자로 지목하여 추방한다. 솔제니친은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이어가고,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집도한 국가 개혁, 개방을 견뎌내지 못한 소련이 붕괴한 94년도까지 무국적자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망명 생활에서 러시아 혁명사를 정리한 <붉은 수레바퀴>를 집필했다.
고국으로 귀국한 솔제니친은 마침내 자유가 도래한 러시아 공화국의 출범을 주의 깊게 바라보지만, 곧이어 벌어진 러시아 공화국의 사회, 경제적 실패를 비판하여 옐친 정부의 훈장 수여를 거부한다. 여전히 비판적이었던 솔제니친은 옐친 대통령의 후임자인 푸틴 대통령의 애국주의적 정치 노선을 지지했고, 2008년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줄거리
<암 병동>의 줄거리는 암환자로 판명되어 하루아침에 소련의 고위 관료에서 시한부 환자로 전락한 파벨 루사노프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소련 사회 내의 의료 복지 시설이 부족한 관계로 저 멀리 중앙아시아까지 유배된 파벨은 온갖 장소와 계층에서 흘러들어온 암환자들을 만나는데, 여기서 관료 파벨과 대립하는 이가 바로 회복세에 들어선 죄수 코스토글로토프다.
험악한 인상에 왕성한 호기심의 소유자인 코스토글로토프는 목전까지 치밀었던 죽음에서 벗어나 건강을 차츰 복구해가면서 수용소에서 벗어난 자신이 이젠 단순히 내일을 사는 것뿐이 아니라 사랑과 행복을 얻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코스토글로토프 뿐이 아니라, 여러 계층과 직업, 각국에서 오지로 입원당한 13병동의 인물들 또한 상당히 흥미롭다. 상술했던 파벨 뿐만이 아니라, 평생을 한량으로 살아가다가 죽음과 마주해 인생의 의미를 찾는 예프렘, 학생의 나이에 다리에서 발병한 암으로 입원한 시골 소년 죠마, 평생을 침묵하길 강요받아온 지식인 술로빈, 죽음 앞에서도 학문의 길을 걸으려는 꼿꼿한 젊은이 바짐 등등이 등장한다. 이들 모두 자기만의 이력을 가진 인물로서, 죽음과 회복 앞에서 희비가 교차하는 변화무쌍한 인간 군상을 그렸다.
또한 환자들의 생존을 위해서 격무에 시달리는 의료진의 일상과 고민도 노회한 방사선의과장 돈초바, 죄수 코스토글로토프의 말벗이 되어주는 마음씨 착한 의사 베라, 활달한 간호사 조야 등등, 의료진의 고뇌와 업무 상의 고충이 잘 드러난다.
소련 사회의 허점도 솔제니친은 정확하게 비판하는데, 국가에 의료 시설이 턱 없이 부족해 암 환자들이 집에서 죽어가야만 하는 상황이나, 통계적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가망 없는 환자들을 미리 퇴원시키는 병원의 운영 지침이 잘 드러난다. 또한 밀고와 불신이 팽배하던 스탈린 시대의 악몽, 침묵하기를 강요하는 사회, 처참한 수용소에서의 현실이 그려진다.
감상문
<암 병동>은 솔제니친의 이력상 체제비판적 소설로 읽히기 좋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소설의 가장 큰 주제는 역시 죽음 앞에 선 삶의 본질을 그렸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였다.
평생을 무례한 한량으로 살아온 예프렘이 내린 결론처럼,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랑에 있다고 선포하려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볼 수 있었다. 서로에 대한 관심이 영혼을 구원한다는 주제 의식은 다소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를 떠올리게 하지만, 정직을 크나큰 미덕으로 추구하는 솔제니친에게도 러시아 문학의 전통이라고도 볼 수 있는 박애적인 면모가 확실하게 탑제돼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또한, 건강을 회복하면서 건강한 삶 이상을 갈망하는 코스토글로토프를 통해 한 가지를 알게 되면 열 가지를 갖고 싶은 게걸스러운 삶의 성격과 비정한 운명과 시대를 향한 절망, 모든 가치를 퇴색시켜버리는 죽음의 성격을 그린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건강이 마모될 수록, 원하는 것이 작아지고 단순해진다. 하루살이 신세인 중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아픔을 덜어줄 약이나 요법이 전부였다. 파벨은 종양이 악화되면서 당원으로서의 명예의 무가치함을 이해하면서 마음 가는대로 성분이 불량한 밀수꾼과 어울려보면서 기쁨을 누린다.
비슷하게, 젊은 학자 바짐은 막 입원했을 때에는 학자로서 성과를 경신할 시간만을 요구하나, 점점 병세가 악화될 수록 꿈을 이룰 시간 대신 그저 단순하게 살아있을 건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아간다. 이 외에도, 환자들과 석방받은 죄수들은 대단한 명예가 아니라, 가난과 곤궁 속에서도 지금을 살아가는 데 흡족해한다.
죽음이 임박할 수록 인간은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마음 속 근심을 씻어내는 눈물, 아름답게 핀 벚꽃, 산보를 할 수 있는 여유, 말 잘듣는 의젓한 애견, 자신에게 관심이 많은 이야기꾼들마저도 사랑스럽고 행복을 주는 요소로 승화될 수 있다. 인간의 영혼은 어쩌면 그렇게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는 내내 쉽게 흡족할 수 없는 까닭도 어쩌면 이미 가진 것이 많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죽음에 비해서, 삶의 영위는 대단히 복잡스럽고 골치 아프다. 죽어가던 코스토글로토프는 처음에는 사는 것만을 원했다. 이어서는 건강이 회복되면서 여인들과의 사랑을 꿈꾸었다. 그러나 결말부에서 10년이 넘는 수용 생활에서 사면받은 이후로 자유를 되찾았다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하지만, 사면받은 자신은 정작 속세에 완전히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당혹스러운 사실과 마주해야만 했다. 결국, 코스트글로토프는 자신이 사랑을 나누기엔 아무 것도 내세울 수 없는 초라한 가난뱅이라는 사실과 직면해야만 했다.
죽음 앞에서 투쟁하던 시기에는 좌절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좌절은 곧 죽음에 직결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인간도 임박한 죽음 앞에서 순순히 자기 목숨을 헌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건강한 삶에서는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고, 실패 앞에서 좌절할 수도 있다. 그럴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10년만의 출소 이후, 삶의 복잡함과 건강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행사할 수 있는 명백한 악의에 데인 코스토글로토프는 의료진과 사랑을 나눈다는 동화같은 꿈을 접고 새 인생을 향해 나아가기로 다짐한다. 이러한 대목이 희망을 쫓아야만 하는, 삶의 복잡함을 그리는 장면이었다고도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러한 결말을 통해 작가가 단순히 삶의 어려움만을 그리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기차를 타고 새 인생의 장으로 향하는 코스토글로토프를 통해 전쟁과 강제 수용, 질병을 이겨내 새 삶에 적응하려는 생의 강인함을 그렸다고 생각한다.
<암 병동>에서 상당히 예상하지 못했던 점이 있다면, 의외로 성과 정체성을 향한 고뇌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런 부분은 죄수 코스토글로토프의 호르몬 치료에서 나타나는데, 지금 받는 호르몬 치료가 앞으로 코스토글로토프가 행할 사랑에 영향을 미칠 것을 걱정하는 장면에서 현재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미래의 행복할 가능성을 파괴해도 되는가, 호르몬의 변화로 나의 정체성은 어떻게 되는가 등의 고뇌가 드러난다.
이러한 대목은 고환암으로 남성성의 일부를 잃은 솔제니친 본인의 개인적인 고뇌가 살짝 묻어나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잔혹한 소련 사회의 실태를 그리는 장면들도 꽤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대전쟁과 독재, 불신이라는 병에 시달려온 소련 사람들의 아픔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나치와의 전쟁으로 고아가 된 국민들, 스탈린의 편집적인 공포 정치 아래에서 의미를 잃어버린 가족의 가치, 사회에 팽배한 밀고를 악용한 숙청, 철저한 감시로 감옥이 되어 가는 소련 사회 등등, 20세기 러시아가 겪어야만 했던 내, 외부적인 사건들의 무게감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줄거리 : 3.8 / 5.0 - 각 계층의 암 환자들의 희노애락을 통해 소비에트 사회와 생명의 본질을 그려냈다.
스타일 : 4.0 / 5.0 - 개인적으로 간결체를 선호하기 때문에, 간략하고 진솔하게 등장인물들이 처한 운명을 그려내는 솔제니친의 솜씨가 마음에 들었다.
심리묘사 : 3.5 / 5.0 - 죽음 앞에서 모든 가치를 잃어가는 인간 행태의 핵심을 명료하게 짚었다.
메시지 : 4.0/ 5.0 - 생을 향한 갈망과 생명의 원동력을 탐구하려는 주제 의식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취향반영점수 총점 : 4.2 / 5.0 - 명료한 스타일, 생명을 향한 갈망의 이해라는 주제의식까지 현재 나의 흥미에 있어서는 가장 흥미로운 소설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걸로 안타깝게도 솔제니친의 문학은 다 읽은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논픽션 뿐이라서 아쉬움이 남는다. 솔제니친만큼 정직한 작가를 또 찾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사실에 아쉬움이 남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아마도 <암 병동> 또한, 다시 재독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질 것 같다. 워낙 마음에 든 소설이라서 한 번만 읽고 내다 버리기엔 아깝기 때문이다.